느린 일기 - 스무 살 이후의 내 삶은 한 줄 뿐이었다
2023년 3월 5일 일요일
마음처럼이나 맑음
퇴사하니 노느라 바쁘고 또 다른 일 찾느라 바쁘고 퇴사 이후에 서류 처리하는 것도 바쁘더라.
사실, 퇴사만 하면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고 싶었는데 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 어린 나이도 아닌지라 마흔 아저씨는 부지런해야 한다.
어쨌든 이제와서 일을 때려치우는 것이 무책임하게 보였는지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들은 전부 나의 내일을 걱정해주었다.
고마우면서도 왠지 다른 시선이 있는 것 같아 퇴직일을 정해놓은 상태에서도 계속 조금 싱숭생숭했다.
하지만 마지막 퇴근하는 날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고 크게 덥지 않았으며 크게 춥지도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한적했다. 길가 보도블럭 옆 관목에 기대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를 보았고 구립도서관 앞의 낮은 계단에는 어린이 둘이서 하나의 동화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바람에 관목이 흔들리는지,
기지개를 켜고 난 고양이가 몇 번이나 얼굴을 문지르는지,
아이들이 보고 있는 동화책의 이름은 무엇인지,
한없이 나른하게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해가 한참이나 남았다.
그래서 문 앞에서 밝은 하루를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다.
오늘에 쫓기다 내일을 걱정하며 잠들었다.
군 제대 이후 등록금을 벌며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스무 살 이후의 내 삶은 그렇게 한 줄 뿐이었다.
다시 내일의 걱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차피, 또, 결국, 흘러가게 되겠지.
친구들과 제주도에서 젊은 시절에
- 어찌됐든 결국 바다로, 끝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