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한 꿈을 찾는 그대에게, 한 잔 더(3)
버스정류장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첫 번째 원장님이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면서 썸남에게 고백했다. 답장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했고 나는 이 순간부터 애인이 생겼다.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애인에게 말했다.
애인은 바로 전화를 걸어 나에게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그의 목소리로 달콤한 이야기를 듣다가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이 순간을 꿈꿀 거라고.
그에게 하는지 나에게 하는지 모를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원장님이 침대에 앉아있었다. 엄청나게 야위어 언젠가부터 혼자서는 일어나 앉지도 못하던 분이셨는데. 그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는 살짝 살이 올라 있었다. 얼마 전까지 뼈만 앙상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원장님은 건강해 보이는 몸짓으로 나를 불러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 손을 마주 잡고 있자니 왠지 가슴에서부터 눈물이 차올라서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왠지 모르게 가득 찬 울음을 한참이나 끅끅거리며 쏟아냈다. 원장님은 그저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기다려주었다.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그 손길이 나를, 내 인생을, 앞으로의 나를 보듬어주는 것 같아서 한참이나 눈물을 쏟아냈다.
머리가 시원해질 정도로 울음을 내뱉으며 눈물을 쏟고 나서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원장님은 내가 이십 대에 만났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원장님은 한참이나 울어 퉁퉁 부은 눈을 가만히 매만져 주었다. 그 손길이 닿는 곳은 시원한 느낌이 들더니 금방 부기가 가라앉았다.
“너무 달콤한 꿈이네요.”
“원래 꿈은 달콤한 거란다.”
“저는 그 달콤한 꿈에서조차 망설이고 겁내고 있었던 거군요. 지나고 나니 그 시간이 좀 아까워요.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꿈을 꾸고 동경하는 그 순수한 순간을 엿보는 것만으로, 그 달콤함의 편린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다음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란다.”
“달콤한 꿈도 결국 욕심인가요?”
“숨을 쉬면서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었니?”
“맑은 공기를 마실 때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고 더 좋은 것들을 바라는 건 네가 꿈꾸는 것과 같은 거야. 누군가는 그 공기를 한 번 더 마시고 싶어서 아주 잠깐 머무를 수 있는 그 산을 계속 오르고 누군가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산 아래에서 술을 마시기도 해. 꿈은 누구나 꿀 수 있고 바랄 수 있지만 달콤한 꿈일지 혹은 그것이 달콤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는 네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거지.”
“달콤함만 보고 오르다가 넘어질까 봐 겁이 나요.”
원장님은 내 눈을 마주 보면서 빙그레 웃어주었다.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은 따뜻했다. 원장님의 웃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해도 원장님이 다 받아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지금은 달콤한 꿈이니까.
“한 번 뿐이라. 이게 내 인생이라. 오늘의 결정을 내일 후회할까 봐 겁이 나요. 그나마 쌓아 올린 이 순간을 벗어나서 새롭게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돼요.
차라리 잘 모르던 어린 시절에 꿈을 꿨다면 어땠을까요. 그때 치열하게 꿈을 꾸고 깨졌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제가 꾸는 달콤한 꿈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전 뭘 바라고 있는 걸까요.
월급을 비교하고 인생을 비교하고 부유함을 비교하고 태어난 환경을 비교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라 쳐도, 이제는 꿈까지 비교하게 되네요.
이 달콤한 꿈마저도 제가 진짜 바랐던 것들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제가 뭘 원하는지 제가 잘 모르겠다는 게 가장 무서워요.”
“하고 싶은 게 없다고 꿈이 없는 걸까.
나는 건강해지고 싶단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주변에 말해주고 싶어.
이 꿈은 내가 아파지고 나서 생겼단다. 그전에는 학원을 더 키우고 싶었고. 학원이 잘되면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어.
달콤한 꿈이란 건, 이가 썩어버릴 정도로 달콤한 게 아니라 쓰디쓴 약을 머금고 있는 듯한 지금 순간을 지날 수 있도록, 버틸 수 있도록, 네게 주어질, 네가 꿈꾸는 달콤한 보상이란다.
그러니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아도 돼.
인생은 한 번이고 우리는 항상 첫 번째를 살아가고 있어.
첫 번째는 언제나 서투르기 마련이지.
단 한 번이라는 압박감에 서두르지 않아도 돼.
얼마든지 서툴러도 좋고 거대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돼.
더 서투르게, 더 많은 꿈을 꾸렴. 여러 번 꿈꾸고 그 달콤함을 맛보렴. 달콤함에 취해도 좋아.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은 꿈이어도 좋겠지.
다음엔 더 달콤한 꿈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행히도 꿈은 얼마든지 꾸어도 되니까. 아주 작은 것들에서 너무나도 큰 것까지. 비교된다면 비교하라지.
내가 건강을 꿈꾸는 것과 네가 건강을 꿈꾸는 건 너무도 다르듯이 모두의 꿈은 다른 거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만큼 많은 꿈이 있고 그 꿈들의 키는 모두 다르단다. 당연히 눈높이도 다를 수밖에.
그러니 괜찮아.
얼마든지 달콤하게 꿈을 꾸어도 괜찮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원장님의 말을 울음으로 가득 찼던 가슴에 담아두었다.
다시 울음으로 차오를 가슴의 그 가장 밑바닥에 ‘서툴러도 괜찮아’를 꾹꾹 눌러 담았다.
언제고 내가 정신없이 흔들릴 때도 쏟아지지 않도록, 나중에 텅 빈 나를 발견했을 때 그 안쪽에 한마디 위로가 남아있을 수 있도록.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뼈만 앙상한 원장님이 힘없이 미소를 짓더라도 내가 가진 가장 밑바닥의 ‘괜찮아’가 원장님께 비쳐 보일 수 있도록, 아주 단단하게 눌러 담았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원장님을 눈에 담고 나를 다독이는 그 손길을 한없이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곧 가장 친한 친구들이 생각났다.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고 툭툭 행동으로만 어색하게 전했던 마음들.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그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의 이 달콤한 꿈이 끝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원장님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곧 나를 쓰다듬는 이 순간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흩어질 것을 알 수 있다.
애써 집중하는 나를 느꼈는지 원장님은 예쁘게 웃으며 양손으로 내 볼을 꾹 눌렀다. 귀여워죽겠다는 몸짓이었는데 서른이 넘어 이런 몸짓과 마음을 받으니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얼마든지 어리광을 피워도 될 것만 같아서.
그래서 더 놓치기 싫어진다. 이 순간을. 이 느낌을. 이 감정을. 이 달콤한 꿈을.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일 것 같아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달콤한 꿈은 없어. 상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꿈꿀 수 있지. 누구나 크게 가져야 한다는 꿈들조차도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상상하지 못할 리 없잖니.
꼭 하나만 가질 필요도 없잖아? 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더 많이 상상하고 더 많이 꿈꾸렴. 그렇게 꿈꾸는 것 자체가 달콤함으로 너를 이끌 테니.
더 큰 꿈을 꾸라고 말하는 이들을 따라갈 필요는 없단다.
먼저 살아본 사람들은 자신이 걸었던 가장 안전한 길을 알려주려 하는 것뿐이야.
그 길이 네게도 가장 안전한 길일지는 알 수 없지.
세상 모두는 달콤한 꿈을 꾸려한단다. 씁쓸한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니.
저 멀리에 있는 달콤한 꿈만 보고 살아가다 보면 가끔 주변의 달콤함마저도 잊어버릴 때가 있어. 그럴 땐 가만히 네가 가진 것들을 살펴보렴.
누군가가 내민 달콤한 손길이 그곳에 있을 테니.
그것이 기억일지 추억일지 혹은 네 곁에 서 있을지 모르지만 고개를 돌려보지 않아 달콤한, 혹은 달콤했던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란다.
그러니 지금을 아쉬워하지 마. 괜찮으니까. 앞으론 더 괜찮아질 거니까.”
나는 볼이 꾹 눌린 상태로 웃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항상 감사할 겁니다. 보고 싶을 거예요. 그 누구보다도 내게 항상 따뜻했던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볼이 눌려 있었기에 제대로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더 환하고 아름답게 웃었고 그것만으로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더없이 아름다운 나의 선생님. 나도 환하게 따라 웃는다. 웃으려 했다. 볼이 눌려서 잘 안 될 뿐이지.
어, 그런데 저기요, 선생님. 이제 좀 아픈데요. 더 누르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굳이 이렇게 잠 안 깨워주셔도 제가 알아서 잘 깰게요. 마지막을 이렇게 깨우시면 앞에 해주신 좋은 말씀들이 좀 희석될 것 같지 않으신가요?
아, 아파요. 이 지랄 맞은 꿈은 전에 볼을 꼬집을 때도 아프더니만 이것도 생생하게 아프네요. 조금만 안 아프게 꿈에서 깨면 안 될까요?
왜 꼭 꿈은 어디서 떨어지거나 아프거나 놀래서 깨는지 모르겠네.
진짜 아파요. 선생님!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