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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을 꿈꾼다(2)

- 달콤한 꿈을 찾는 그대에게, 한 잔 더(2)

by 블랙스톤

새로운 영상을 올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력서를 썼다.

계속 떨어졌고 나는 이제 그러려니 하면서 이력서 쓸 곳을 찾아 조금씩 수정해 가며 이력서를 보냈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 떨어지는 것조차 무덤덤해졌다.

처음에는 이력서 넣을 곳이 넘쳤는데 점점 지원할 곳이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많이 떨어졌다는 뜻이지만 그것조차 그냥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이러다 어쩌면 기대하는 것조차 무덤덤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붕 떴던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유튜브가 언제까지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이게 얼마나 생계유지에 도움이 될지 알 수도 없었다.

해프닝일지 덤일지 혹은 지속 가능한 복일지 알 수 없으니 기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기대하지 않으려 할수록 반대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알려졌을 때 면접을 볼 수 있다면 취직에 더 유리해질 텐데 말이다.


유튜브는 여전히 알아서 흘러가고 있었다.

새로운 물이 계속 유입되는지 자기들끼리 댓글에서 치고받으며 재미를 찾았다.

영어를 잘하는 유학파 강사들은 많이 있지만 의외로 콩글리시를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 포인트였다.

외국물을 먹은 사람은 콩글리시를 할 때도 어쩔 수 없이 혀가 굴러가는 부분이 있다고.

사실 나로서는 한국식 영어 발음인 콩글리시에 정확한 발음이 있다는 게 신기한 점이지만 어쨌든.

내 영상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각 발음을 딱딱 끊어서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사람이 필요할 땐 어떻게 외국인처럼 혀를 굴려 가며 발음할 수 있게 되었는지 신기해했다.


그들의 반응을 보고 다음에는 발음 교정에 대한 강의를 살짝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굳이 구독자들에게 발음 강의를 할 필요는 없지.

현실은 백수지만 관심을 갖는 이들이 유튜브에 생기자 내 정체성에 혼란이 살짝 온다.

분명히 한 줄의 이력 때문에 시작한 건데 오라는 서류 합격은 없고 엉뚱한 곳에서 합격 목걸이가 어른거리는 기분이다.


유튜브 영상이 회자되고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수록 현실의 내가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핸드폰을 들고 몇 번의 터치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내가 있지만 현실의 나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다.

이력서의 한 줄은 ‘유튜브 운영 중.’에서 ‘10만 유튜브 운영 중.’으로 바뀌었지만, 그 이력서를 제대로 읽어보는지도 의문이었다.

당연하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들도 어쨌든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유명세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이 내게 부정적이라도 이력서의 한 줄에 더해지거나 덜해지는 문장은 없을 테니까.

어찌 됐든 내게는 당장 취업이 더 필요했다.


‘10만 유튜브 운영 중’에서 ‘20만 유튜브 운영 중’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파른 상승폭을 보였다. 주식을 하는 친구는 다시 한마디를 남겼다.

이 정도면 작전주다. 하루가 다르게 상한가를 치네.

나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따로 뭘 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구독자의 숫자가 오른다.

뭔가 내가 보여준 것보다 엄청 뻥튀기되는 기분이라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현실에선 그냥 백수라고요. 이제 놀기 시작한 지 반년째에 접어든.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하루가 다르게 유튜브는 번창하고 있어서, 그래서 난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긴다.

이걸 백날 두들겨봐야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일정하게 두드리는 이 손끝의 느낌과 소리가 들려야 뭐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아 멈출 수가 없다.

그 연장선상으로 몇 개의 영상을 더 올렸다.

나 자신에게 뭐라도 하고 있으며 나는 노력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커리큘럼을 짠 것도 아니기에 방향도 통일되지 않은 그저 수다 영상이었다.

영어 원서를 읽는 ASMR을 하다가 영상 말미에 살짝 졸기도 하고 원어민 친구들과 보드 게임 모임을 하다가 계속 진 내가 화를 내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영어를 편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건 노는 걸 좋아하는 내가 원어민 친구들과 어울렸던 덕이라고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 영상 말미에 작은 목소리로 게임에서 계속 지고 화를 내면서 발음이 많이 좋아졌다고, 일단 많이 말하라고 하는데 화가 나면 말을 마구 뱉을 수 있기에 금방 교정이 되더라고 작은 팁도 속삭여주었다.


여전히 취업은 되지 않았다. 다행히 면접 몇 번이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내 조건에는 차이가 컸다.

나는 경력직을 강조했고 그들은 내가 유학파가 아니란 것에 주목했다.

유학파나 원어민 강사처럼 내 실력이 확실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십 년을 영어 강사로 살아왔음에도 한 줄의 이력은 내 발목에 감겨 있었나 보다.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계속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 영상들을 선택해 주었다.

알고리즘님을 숭배하는 영상을 올렸다.

영상의 말미에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데 왜 학원에서 나를 데려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약간의 홍보도 했다. 여전히 나는 구직 중이라고.

그냥 혼자 앉아 새로 산 인형에 유튜브 알고리즘을 줄여 유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영상이었다.

인형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영상의 조회수도 바짝 올라서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구독자가 쉽게 빠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취직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구직 중이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조율하는 순간에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믿을 구석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믿을 구석이 생기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 조급해졌던 시야가 넓어지고 나 혼자 있는 집과 도시 어딘가에 있을 회사 사이에 나무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도 보였다.

매번 집 근처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풀리기 시작하니 다른 것들도 덩달아 풀려나간다.

믿을 구석이 생기니 마음이 편해지고 어지간하면 웃으며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뭔가 와서 부딪혀도 이 정도 기스는 괜찮아요, 잘 보이지도 않네요, 그냥 가세요,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좋다는 남자에게 오랜만에 번호도 따여보고 괜히 설레는 문자를 몇 번 주고받기도 했다.

완전한 연애에 돌입하기 직전의 그 설레는 순간이 찾아왔을 땐 꿈이라면 깨지 말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구독자 50만을 넘어서고 조건이 맞는 학원에 인터뷰를 하러 갔다.

본의 아니게 백수 기간 동안 전업 유튜버로 활동했지만 아직도 카메라 앞에 앉은 내 모습이 어색했다.

게다가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첫 번째 학원에서의 그 느낌이 남아있었기에 괜찮은 조건이라면 취업을 해야겠다 싶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원장 선생님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 노력하셨다.

조건도 파격적이고 수업 일수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부 대체해도 된다고.

이전 학원과의 계약에서 배운 것이 있기에 이런 파격적인 조건에는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안다.

내가 조건에 대해 묻자 원장 선생님은 학원의 이름을 유튜브에서 가끔 언급해 주길 원한다고 했다.

이력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가끔 숟가락만 얹겠다는 건데 그게 내 밥그릇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즉석복권을 하나 샀다.

행운이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있기에, 지금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기에.

그냥 눈에 보이는 즉석복권을 하나 집어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긁어보았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1등에 당첨됐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즉석복권 하나를 더 집어 들어 확인해 본다.

또 1등. 그래서 나는 아주 덤덤해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처럼 모두가 덤덤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모두가 그저 길을 걷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꿈만 같은 현실.

어쩌면 이 현실이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아니 그건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이제야 느끼게 된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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