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뎌진다는 그 한 발 물러섬에 익숙한 그대에게, 한 잔 더(5)
후우. 에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 가득한 여운을 몰아내듯이 아주 길게.
그 한숨에 실려 사내와 대공과 백성들의 감정이 떠밀려 내려간다.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에미는 조금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마스터의 이야기는 너무 호흡이 길고 무거웠다. 그만큼 강렬한 감정들이 느껴져 좋았지만 가끔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한참이나 헤매는 이들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도 마찬가지. 왜소한 안경잡이는 여전히 이야기의 여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내와 대공과 백성들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스터는 천천히 칵테일을 만들어 사내의 앞에 두었다. 에미는 잠시 망설이다가 주방 안으로 들어가 가볍게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를 만들었다.
서비스 안주가 나오는 사이에도 사내는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턱을 괴고 가만히 사내를 바라보았다.
왜소한 사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답답했는지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친 상태였다.
저 목 끝까지 채워진 단추도 몇 개 풀어주고 싶었지만 에미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 단추를 푸는 것은 저 사내의 몫이니까.
‘이바구’의 문을 열고 스스로 찾아온 손님이기에 마스터는 손님의 기억과 감정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변화를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뿐. 혹은 ‘이바구’의 기억을 보여줄 뿐.
주인과 손님은 ‘이바구’ 안에서 모두 평등한 거래 관계였다.
그것은 절대적인 규칙, 변화할 수 없는 본질.
에미는 일정했던 사내의 호흡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것에 집중하며 살짝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의 호흡이 흐트러질 때마다 토도독, 토도독.
어둠 속을 헤매는 이에게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불빛처럼 아련하게,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스스로 선택해서 다가올 수 있도록 조용하게 토도독.
마스터는 에미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짝 인상을 썼지만 이내 환하게 웃는 에미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젓고 잔을 닦기 시작했다.
사내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분명 숨을 쉬고 있었음에도 숨을 쉬지 않았던 것처럼. 숨 쉬는 것을 잊었던 것처럼. 지금의 몸으로 이제야 돌아온 것처럼.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앞에 놓인 칵테일을 보고 망설이다가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나서야 서비스 안주를 발견한 그는 슬쩍 주방의 에미를 향해 눈인사를 보냈다.
에미는 여전히 환한 미소로 그의 눈인사를 받아주었고 살짝 얼굴이 붉게 변한 그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안경잡이는 안주를 천천히 씹고 칵테일을 홀짝이고 홀 안의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이 자신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도록 마스터는 조용히 잔을 닦았고 에미는 눈을 감고서 작게 음악을 흥얼거렸다.
칵테일을 한 모금 남겨 놓고 바 위에 놓인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선을 긋듯이 바를 문질렀다.
그 의미 없는 몸짓과 함께 선이 하나 그어질 때마다 사내의 입이 씰룩였다.
하나의 음악이 끝나고 다음 음악이 시작될 때쯤 여전히 무거운 손짓으로 선을 그으며 사내가 말했다.
“어렸을 때, 저는 가난했어요. 분명 가난하다고 느꼈는데 지나고 보니 막상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중산층이라기엔 좀 허름했죠.
맞벌이하시던 부모님은 항상 집에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자주 집에 찾아왔죠.
저는 그게 좋았는데 엄마는 집 정리도 안 해놨는데 친구를 데려왔다며 참 싫어했어요. 그래서 언제 친구들이 올 거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줬는데도 엄마는 질색하더군요.
엄마가 싫어하니까 밖에서 놀거나 친구들을 몰래 데려오게 됐었죠.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엄마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던 거예요.
학부모 모임을 위해 학교로 올 때면 엄마는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옷을 사 입거나 주변에서 빌려 입고 학교를 찾아오곤 했죠.
그때의 엄마는 화장도 공들여서 해서인지 참 예뻤어요. 그래서 저는 등을 쫙 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죠.
우리 엄마 예쁘지? 너네 엄마보다 훨씬 예쁘지?
엄마는 남사스럽다고 하면서도 제 등을 쓰다듬어주시곤 했어요.
아빠는 항상 바빴어요. 작은 트럭을 타고 지방이든 서울이든 가리지 않고 일하러 다녔죠.
새벽이면 집을 나서고 제가 잠든 이후에나 집에 돌아왔어요. 주말이든 평일이든 아빠는 언제나 일하러 나갈 준비가 된 사람이었어요.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날이면 아빠는 전화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남의 트럭을 타고 일을 하러 갔어요.
그런 날은 학교에 가기 전에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었죠.
평소에 거의 보지 못하는 아빠였기에 그런 날은 더 신나고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아빠에게 더 보고 싶다고, 어디 가지 말라고 떼를 쓰진 않았어요.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만든 편지와 카네이션을 드리면 엄마는 울먹이고 아빠는 미안하다고만 했거든요.
놀이공원도 미안하고 여행도 미안하고 집에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다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게 참 좋지만 그것 때문에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건 싫더라고요.
그래서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냥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서로를 위한 배려였어요.
제가 조금 크고 나서 부모님은 제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곧 나아진다. 너는 걱정할 것 없다.
나중에 그때가 오면 가족끼리 산책도 하고 여행도 다니자.
가끔은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말해주기도 하셨죠.
저는 고생이랄 것도 없었어요.
그저 익숙해진 대로 학교에 갔다가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고, 주섬주섬 학원 갈 것 챙겨서 학원에 다녀오고, 엄마와 늦은 저녁을 먹고, 안방의 가족사진을 한 번 보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밥 먹고 학교에 가고.
저는 그렇게 크고 그렇게 자랐어요.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게 하면서요.
사실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죠.
친구들이 사춘기에 방황하는 것을 보며 내게는 저런 변화조차 없구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때의 저도 사춘기였던 것 같아요.
피곤에 지친 엄마와 가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아빠를 마주할 때마다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서, 몇 번이나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울어야 했거든요.
제 사춘기는 가족의 감정을 더 예민하게 안으로 받아들이는 거였나 봐요.
아빠의 손과 발에는 굳은살이 가득했고 가끔은 방에 앉아서 그 두꺼워진 굳은살을 파냈는데 손과 발에 구멍이 뻥 뚫리곤 했어요.
스스로 손과 발에 구멍을 뚫는 그 모습이,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가슴에 얹혀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죠.
엄마는 가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졸았어요.
엄마의 화장은 더 볼 수 없었고 어렸을 때 봤던 화려한 옷은 아빠의 양복과 함께 옷장 한편에 덩그러니 걸려 있었죠.
밥을 먹고 티브이에 나오는 예쁜 여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에는 예전의 그 아름다움이 남아있지 않았어요.
제 가슴에는 뻥 뚫린 아빠의 손발과 멍하니 앉은 엄마의 뒷모습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그 모습이 떠오르죠.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하면, 제게 더 좋은 걸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날은 결국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오지 않았어요.
엄마, 아빠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좋은 말이죠.
그래서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확인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찾지 못했어요.
학생 때는 학원에 가고 친구들과 놀고 숙제를 하고 나면 하루가 지나갔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과제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집에서 후회하고 시험 기간에 손톱 좀 물어뜯고 나니 사회로 나가야 할 시간이 가까이 왔거든요.
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알게 됐죠.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지만 저는 몸치거든요.
졸업을 준비하면서 스펙을 만들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고 외국어 학원도 등록했어요.
어느 날 학원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스펙을 쌓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제가 사양이 부족해 업그레이드 중인 컴퓨터처럼 느껴졌죠.
평생을 스펙 업그레이드만 하고 있는 고물 컴퓨터.
아등바등 겨우 턱걸이로 프로그램에 사양을 맞추고 버벅거리며 실행하는 그런 컴퓨터.
뭘 위해 그러고 있는 것인지 목적도 알 수 없어서 뭔가 속이 텅 비어 버린 것만 같았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 오래간만에 엄마와 아빠가 술 한잔을 하고 계셨어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엄마와 아빠가 보기 좋아서 웃음이 지어졌어요.
가슴이 따뜻해져서 그 앞에 앉아 어린 시절처럼 투정도 부리고 엄마의 손을 꼭 잡기도 했죠.
엄마와 아빠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바르게 자라주었다고. 못난 부모를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저는 그저 웃었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엄마는 또 울었고 아빠는 엄마를 달랬으며 저는 슬쩍 자리를 피했어요.
가슴은 따뜻하지만 뭔가가 허전해졌어요.
엄마와 아빠는 지쳤지만 항상 저를 보며 웃었어요. 그리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죠.
그래서 저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아직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마음을 먹은 적도 없었지만, 일단 시작된 걸음을 멈출 수는 없더라고요.
사회생활을 시작해 보니 부모님을 조금 알 것도 같았어요.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목표로 잡은 것들은 항상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장기적인 계획을 만들어 보아도 하루하루 발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 도저히 바닥을 살피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고개를 숙이고 묵묵하게 걷다가 이제 거의 다 왔겠지 싶어 고개를 들고 바라던 것을 살피면 가끔은 엉뚱한 곳으로 걷고 있기도 했어요.
참는 것은 쉬운 일이에요. 한걸음 물러서면 되죠.
호기심을 가지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단조로워져요. 그러면 참기 쉬워지죠.
사실 제가 외면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어요.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보려면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졌어야 했어요.
하지만 전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지 못했던 걸까요? 제가 호기심을 가지기에 세상은 너무 무서워 보였어요.
저는 엄마와 아빠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두 분이서 서로를 다독여가며 힘든 시기를 견뎌왔음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죠.
저는 그 두 분보다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없었어요.
어쩌면 독하지 못한 제 잘못일 거예요.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자라 놓고서 더 이를 악물고 살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그저 궁금한 것을 참고, 더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그래야 이 현실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조금 안전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차근차근 나아가길 바랐어요.
그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지는 알지 못했죠.
뭔가 잘못된 걸 느꼈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엄마나 아빠만큼은 아니어도 저도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했는데요.
티브이나 책에서 말하듯이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주변을 둘러보고 원하는 것을 찾아보기에는 제게 하루는 너무나 짧고 벅차기만 한데요.
전 지금 제게 주어진 것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찬데 다들 계속 더 나아져야 한다고만 하네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어떻게 나아져야 하는 건지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네요. 이제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돌아보면 저는 방황하는 친구들 옆에서 앞만 보며 걸었어요. 한눈 판 적도 없었고 멈춘 적도 없었죠.
하지만 지금 저는 왜 이렇죠? 남들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어차피 오늘만 지나면 아니, 이 순간만 지나면 저는 또 이 ‘비교’를 포기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살아갈 테니까.
제가 자라면서 가장 많이 한 것이 포기와 체념이고 저는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라왔죠.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평온해질 수 있으니까요.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조금만, 나만, 참으면….”
안경잡이의 말은 점점 작아져 웅얼거림으로 바뀌었고 그 웅얼거림은 왠지 흐느낌처럼 그의 왜소한 어깨를 타고 흘렀다.
마스터는 닦던 잔을 내려두었고 에미는 턱을 괴었던 손을 내렸다.
음악은 사내의 흐느낌을 가리려는 듯 은은하면서도 웅장했고 그 사이에 숨은 흐느낌이 슬쩍 내비칠 때마다 에미는 입을 달싹였다.
포기에 익숙해지면 희망조차 품지 않는다.
에미의 입 안에서 슬쩍 굴러 나온 그 소리를 캐치한 마스터가 인상을 썼다. 에미는 얼른 입을 꾹 닫았다.
흐느낌과 음악 사이에 한참이나 웅크리고 앉았던 안경잡이는 왜소했던 어깨가 더 줄어든 듯한 모습으로 비척거리며 일어서서는 들어왔던 문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마스터는 바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기울였다.
힘겹게 걸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아주 신중하게, 그 두 눈에 온전하게, 눌러 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에미는 꾹 닫았던 입을 열었다. 마스터에게 혼날지도 모르지만 이 말은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야기는 끝을 보기 전에는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는 것이라 매력적인 것이지만 이번 이야기는 굳이 결말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아까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떠넘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에미는 어쩌면 사내가 들었을지도 모를, 마스터에게 혼날까 봐 얼른 주워 담고 싶었던 아까의 혼잣말을 조금 힘을 주어 다시 내뱉었다.
사내가 들을 수 있도록. 온전히 자신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그의 움츠러든 어깨너머로 소리가 닿도록.
"마스터. 저는 사실 저 손님이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했어요. 간절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크게 바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된 건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희망조차 품지 않는다.'라는 말은 저 손님과 어울리지 않네요.
포기조차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간절함이었어요.
엄마와 아빠만큼 성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잖아요? 아마 그 등을 보며 하루하루 걸어온 저 손님의 등은 점점 그들의 등을 닮아가고 있을 거예요.
조금 부러워졌어요. 마스터. 닮을 사람이 있다는 게. 그들의 자랑이라는 게. 저도 언젠가는 마스터의 자랑이 될 수 있겠죠?
손님은 잘하고 있네요. 고이 간직하고 있던 삶이 전혀 헛되지 않았어요. 오늘 손님은, 정말 충분히 멋있어요. 그런 걸 자랑하지 않으면 어떤 걸 자랑할 수 있겠어요?
그저 편린만 들은 저도 이렇게 부러워하는데요. 충분히 자랑스러워하고 자랑해 주세요. 모두가 저처럼 손님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혼잣말인 듯 마스터에게 건네는 말인 듯 시작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말처럼 그렇게 끝이 났다.
마스터는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저었고 그런 마스터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에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의 음악은 약간 경쾌해졌고 사내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소한 어깨를 따라 다시 한번 흐느낌이 흐르는 듯했다. 다만 이번에는 음악이 그 흐느낌을 가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경쾌하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듯했다.
그 경쾌한 비트에 흐느낌이 올라서서는 어깨가 슬쩍슬쩍 떨리는 것이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듯 보이기도 했다.
다시 새로운 음악으로 넘어갈 때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걸었다.
들어온 문으로 향하는 사내의 어깨에 흐느낌이 사라져서인지 그 어깨가 쭉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