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12일 월요일
8월 한 여름에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겨울을 준비한다. 세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은 비닐하우스 안이다. 나무로 만든 작업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 앞에는 대형 선풍기 한대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차갑지 않다. 한숨을 몰아쉬는 한증막처럼 뜨겁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바람이나마 불어주어 숨은 쉴 수 있었다.
세 사람이 만들고 있는 것은 겨울 김장 때 쓸 순무를 키우는 작업이다. 순무는 내가 사는 지역의 특산품 중 하나다. 겨울철에 여는 김장시장에 무, 배추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순무다. 지역사람들은 물론이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순무를 사러 일부러 오곤 한다. 순무는 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뿌리 작물이라는 것을 빼고 나면 무와는 생김새나 맛 차이가 난다. 어떤 사람은 순무에서 인삼맛이 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릴 때 먹었던 배추뿌리 맛이 난다고도 했다. 무보다 단단하며 향이 진한 낯선 순무 맛에 처음에는 나도 잘 먹질 못했다. 순무를 먹게 된 것은 내가 직접 심고 키우면서부터였다. 정은 강하다. 행동도 바꾸어낸다.
나란히 선 세 사람이 하나의 모종판 트레이를 완성한다. 처음 사람이 트레이에 상토를 채우면 두 번째 사람이 구멍을 뚫고 순무 씨앗을 하나씩 넣어 옆 사람에게 넘긴다. 그러면 마지막 사람이 받아 씨앗 위에 흙을 덮어 옆 하우스로 옮긴다. 세 사람이 하나의 컨베이어 벨트에 연결되어 있는 듯 손발이 척척 맞는다. 정교한 작업이나 일은 단순하다.
이 일의 중심에는 오선생님이 있다. 그는 본래부터 농사를 짓던 사람은 아니었다. 도시에서 책을 만들던 그가 이곳 시골로 옮겨온 것은 꼭 IMF때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곳을 찾아 익숙한 곳을 떠나온 사람들은 다른 삶을 계획한다. 결단하고 용기를 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흐르지는 않는다. 공간이 바뀌어도 자본이 약한 사람들의 선택은 한정되어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지역 사회적 기업에서 '사회적 농업'팀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은 1960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정신질환자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 활동을 고민하다 창안하게 되었다. 노동하고 대가를 받고,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것은,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권리이며 의무이다. 사회적 농업은 보편적 '평등'의 권리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83개의 사회적 농장이 있고, 내가 사는 강화도에도 5곳이 있다. 그 중심에 강화지역 거점 농장으로 사회적 기업 '콩세알'의 오선생님이 있다.
오선생님의 지도아래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동료 두 명은 장애인센터에 적을 둔 사람들이다. 오선생님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겉모양으로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분은 월, 수, 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선생님과 함께 농사일을 한다.
흰서리가 내린 머리를 한 그들은 말없이 오선생님이 지시한 일을 수행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멀쩡해 보이는 그들이 의사로부터 받은 병명은 '조현병'이다. 조현(調絃)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다. 공황장애나 조현병 같은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원인은 모른 채 진단된 병이 한두 개가 아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나 이름뿐 아니라 한 두 번 가봤던 길이나 도시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여러 번 만나고도 이름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갔던 길을 기억하지 못해서 자칭 '길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공식적인 진단을 받지 않았을 뿐 우리는 모두 한 두 개쯤 헐거워진 나사로 사는 존재들 일지 모른다.
처음 본 그들이 때대로 나를 본다.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보다 얼른 눈을 내리깐다. 나도 그들을 살짝살짝 본다. 대형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에 우리들의 눈알 굴리는 소리가 묻힌다. 소리 나지 않게 웃는다.
작업장과 잇대어 있는 하우스에서 배추모가 자라고 있다. 삼 일 전 그들이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저 중 몇 개는 내 밭에 옮겨져 자라게 될 것이다. 반나절 일한 내 품삯이 그들 손에서 자라고 있다.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