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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Sep 09. 2024

엉뚱한 결심

시작이 좋았다.

 2001년,  우리 가족은 엉뚱한 결정을 하나 하였다. "도시를 떠나보자."

묵은 숙변 같은 오랜 고민의 시간을 끝내고 마침내 결심을 하였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반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4학년, 1학년이었던  두 아이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며 이사를 가지 않겠단다. 특히 둘째 창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흑흑 거긴 친구도 없잖아요. 우리가 이사 가면 현이 형이랑 만날 수도 없는 거잖아요. 흑흑 저는 이사 가기 싫어요.”

우는 아이를 보자 마음이 짠했지만 한편으론 난감했다. 집은 이미 팔렸다. 우리는 한 달 안에 이사를 나가야 한다. 나는 어쩌자고 그 같은 약속을 해버렸단 말인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매매계약서를 쓰던 때로 돌아가서 “이사 기한을 한 달 드리면 될까요?” 묻던 사람에게 “아니 어떻게 한 달 만에 집을 구합니까? 두 달은 주셔야죠.”라고 당당하게 말할 텐데.

아이 둘을 낳고도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보니 한 달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짧은지 이제 알겠다.

한 달 안에 집도 구해야 하고 또 아이들 설득도 해야 하고, 짐 정리도 해야 한다.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방법은 하나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사 가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구슬리는 이야기를 하다가 덜컥 이렇게 말해버렸다.

“우리 거기서 1년만 살아보자. 엄마 아빠도 시골생활은 잘 몰라. 그래서 우리가 거기서 잘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우리랑 맞지 않아서 금방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1년 살아보고 더 살지 돌아올지는 그다음에 결정하는 걸로 하자. 어때?”

“야호”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담긴 눈으로 창이가 나를 바라본다. 동생이 서럽게 울자 침울하게 입을 삐죽이던 홍이도 나와 창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나는 비굴한 미소를 입가에 장착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했지? 강아지 키우게 해 줄게."

"정말요?"

“홍이는 어때? 좋지 않아?” 홍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이도 고개를 끄덕이는 제 형을 보고 있다가 “네.”하고 대답을 한다.

“그래, 그래, 이리 와” 나는 팔을 넓게 벌리고 두 아이를 품에 품었다. 품을 파고들며 남은 울음을 삼키던 창이가 고개를 들며 "근데 꼭 약속 지켜야 해요?"라며 손가락을 내민다. 우리 셋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두 번째 과제는 남편이 풀어야 한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남편이 좋은 집을 구해 줄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치?”

“응. 부지런히 찾아봐야지 어쩌겠어.” 그러면서 남편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편의 직업은 만화가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에 만평을 그리고 있다. 오후 2시까지 신문사 출근을 해서 헤드라인 기사에 맞는 만평을 그리고 퇴근을 했다. 출근시간이 긴 것은 아니었으나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이었다. 생계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지역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나는 이왕 이사 가는 거 좀 멀리 가고 싶은데. 안 되겠지?”

“그럼, 당장은 어려워.”

“그럼 당신은 어디쯤 생각하는데, 특별히 생각하는 지역이 있어?”

“특별히 생각한 곳은 없는데, 검단이나 통진쯤이면 어떨까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

“나도 특별히 생각한 곳은 없지만 나는 남쪽으로 가고 싶더라.”

“남쪽 어디?”

“용인 어때? 나는 왠지 그곳이 끌려.”

“용인은 너무 멀다” 남편이 말했다.

“그래 그럼 당신이 정해. 나야 뭐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까.”

“알았어. 그럼 내가 검단이랑 이쪽으로 해서 한번 알아볼게.”

“근데 말이야.”

“응. 뭐?”

나는 우리가 살게 될 시골집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천정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집은 정말 싫어. 옛날 집들은 밤마다 천장에서 운동회하고 난리였잖아. 으~ 생각만 해도 몸이 다 근질근질하는 거 같아.”

“나도 쥐는 싫어.” 남편이 말했다.

“그래? 당신도 쥐 싫어?” 내 말에 남편이 웃었다.

“쥐는 진짜 싫어. 그리고 구조는 아파트 구조여야 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랑 같거나 조금 더 좋아야 해. 근데 그런 집이 있을까?”

“모르지 찾아봐야지.”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 나는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어. 햇볕이 좋은 날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것이 나는 참 좋더라. 시골생활에서 그 정도는 해 주어야 하지 않아?” 내 말에 남편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의미가 아리송했지만 남편이 꼭 그런 집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아지도 키워야 돼.”

“강아지...? 강아지는 안 돼.” 남편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왜? 얘들 한데 강아지 키우겠다고 벌써 말해 버렸어.”

“나는 집안에서 강아지 키우고 뭐 이런 거 싫어. 생각만 해도 몸이 간지러워.” 복숭아털에도 피부가 발갛게 올라오는 남편이다. 남편은 세상 모든 털이 싫은 거 같다.

“마당에서 키우면 되지 않아. 나도 동물을 집안에서 키우는 건 좀 그래. 밖에서는 괜찮지?”

“글쎄...” 탐탁지 않아 하는 남편을 보니 조금 불안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당장 닥친 일도 아니다. 해결 방법이 있겠지.

"그리고 말이야. 진짜 중요한 게 하나 있어."

"뭔데?"

"당신 외박하면 안 돼. 여기서처럼 당신이 술 마시고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얘들하고 시골집에서 무서워서 나는 못 살 거 같아. 진짜 중요해. 외박 안 할 수 있어?"

"알았어. 안 할게." 대답이 순순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응. 진짜" 남편이 대답했다.

"알겠어. 믿을게."

나는 아이들과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던 것처럼 남편과도 손가락 약속을 하며 혼잣말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집이 있을까...? 있었으면 좋겠다.” 원하는 시골집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새삼 걱정되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숨겨져 있던 여러 걱정이 눈앞에 나타나며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다.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 불안을 느꼈던지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뭐 고생하려고 시골로 가는 건가? 내가 잘 찾아볼게. 근데 그런 집은 어디서 찾지?

“부동산 가야 하는 거 아니야?”


3주 동안 남편은 매일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 며칠은 가족이 함께 다녔다. 가족이 함께 보았던 시골집들은 쥐가 나올 것 같은 집이었다. 실망하는 우리 표정을 보는 것이 불편했던지 남편이 나와 아이들은 집에 있으라고 말했다.

“힘드니까 당신하고 아이들은 집에 있어. 내가 좋은 집 찾으면 바로 연락할게.”

생각처럼 좋은 집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집을 못 구했을 경우를 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러다 정말 아이들과 길바닥에 나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 짐은 다 어쩌나? 걱정이 점점 자라고 있던 어느 오후, 전화가 왔다.

“따르르릉” 남편이다.

“여보, 지금 갈 테니까 아이들하고 준비하고 있어. 당신이 원하던 딱 그런 집이야. 당신이 맘에 들어할걸?” 자신감에 찬 남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 있다. 평소 남편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다. ‘도대체 어떤 집이길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현관문을 열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책과 장난감을 치우고 외출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나서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었다. 1시간이 조금 넘어서 남편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왔다. 나와 아이들은 벨소리를 듣기 전에 뛰어 나가 차에 올라탔다. 남편은 내내 그 집이 얼마나 좋은지, 분명 당신과 아이들도 좋아할 거라며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남편이 확신하는 집이 있는 곳은 지인들과 여러 번 놀러 갔고 또 어떤 계절에는 하룻밤 자고 온 적도 있던 섬이었다. 섬이라고는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서 섬이라는 생각을 잊을 때가 많다. 어떤 사람 중에는 연륙교를 타고 들어간 사실을 뒤늦게 알고선 “언제 우리가 다리를 건넌 거야? 나는 몰랐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연륙교가 생기고 난 뒤 그곳은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고 약 20분쯤 차를 더 타고 도착한 곳에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지도 모르는 집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 집은 동네 다른 집들 중에서 눈에 띄게 좋아 보였다. 검 붉은색 지붕에 흰색 벽채, 그리고 파란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은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집처럼 근사했다. 남편은 그 집이 미국식 전원주택으로 지은 집이라고 말해주었다. 집주인은 서울에 있는 모 대학 교수이며 그 교수는 역시 서울에 있는 강남에 있는 모아파트에 살고 있고 우리가 세 들어 살게 될 시골집은 세컨하우스로 가끔 이용하는 정도라고 했다. 집은 푸른 잔디가 잘 손질된 마당을 지나 돌로 쌓아 만든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돌계단 주변으로 철쭉이 자라고 있었고 집 앞에는 넓은 데크가 있었다. 데크와 연결된 넓은 거실 미닫이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을 가운데 두고 왼쪽으로 방 두 개가 나란히 있고 넓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방 맞은편 욕실에는 넓은 드레스 룸이 있었고 다른 방에도 화장실이 두 개 더 있었다. 거실 왼편으로 들어가는 주방은 넓은 창으로 마당 풍경이 훤히 보였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쌓아두는 팬트리가 있었다.      


집을 구경한 첫날 우리 가족은 만장일치로 이사를 결정을 했고, 그다음 주에 집주인을 만나 전세 계약서를 썼다. 집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주며 흔쾌하게 1년 계약을 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집주인은 싸게 전세를 내주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가끔 집 방문을 허락해 달라는 조건을 붙였다. 드라이브 나와서 마당에서 차 한 잔 마시겠다는데 그 정도라면 우리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번개 불에 콩 볶듯이 한 달 사이에 도시 집을 팔고  화장실이 세 개나 되는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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