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남순 Sep 14. 2024

가족의 시간

시골로 이사를 하고 난 뒤 나와 아이들은 가족 한 명이 생긴 것 같았다. 저녁을 함께 먹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던 남편이 저녁이 있는 가족의 일상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네 명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을 때 큰 아이가 말했다.

"우리가 도시에 살고 있었다면 지금 아버지는 여기 없었을 거예요."

아이의 말에 남편은 멋쩍게 웃고는 밭에서 뜯어와 방금 전에 무친 겉절이 하나를 집어 먹었다. 둘째도 "맞아요. 아버지가 같이 있으니까 참 좋아요" 라며 밝게 웃으며 제 아버지를 쳐다봤다.

남편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을 갖게 된 것은 나와 아이들이 시골생활에서 얻게 된 큰 변화 중 하나였다.     

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외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사 후에도 출근을 하고 사회활동도 계속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헤이 해 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 없이 보내는 밤이 많아지면 어떻게 하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물론 가끔은 대리운전을 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예외적인 몇 번에 불과했고 1시간 20분 걸리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했고, 일찍 돌아왔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자리를 뿌리치고 가족들 곁으로 돌아온 것은 대단한 의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그 시간을 돌아보니 우리가 시골생활에 정착하기까지 남편의 공이 컸다.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 수속을 마치고 학교를 다녔다.  4학년이었던 큰 아이 반 전체 학생수는 15명이었고 1학년이었던 작은 아이 반은 12명으로, 전교생이 백 명도 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두 아이는 아직 도시에 두고 온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 작은 아이는 단짝이었던 현이와 전화 통화를 하고 나면 아파트로 다시 가서 살고 싶다며 우울한 얼굴을 하곤 했다.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만 필요한 것은 아닌 듯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데 채워야 것들이 필요했다.


이사 온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 남편과 그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 얘들이 강아지 타령을 하는데 어떡해야 하지?"

"나는 강아지는 좀 그래."

"왜? 강아지한테 물렸어?"

"응. 강아지는 아니고 큰 개였어. 다리를 물려서 피가 철철 났었어."

"몇 살 때?"

"국민학교 다닐 때였어. 동네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물었는데, 떠돌이 개였던 것 같아."

"음... 그랬구나. 그럼 얘들한테 뭐라고 말하지?"

"마당에 닭장 있잖아. 내가 보니까 쓸만하더라고. 닭이나 한번 키워볼까?"

"닭? 몇 마리나?"

"두어 마리쯤?"

"그 정도라면... 나도 좋아. 얘들한테 물어보자."


뒷집 박이네 엄마가 알려준 오일장에 연다는 동물시장은 장 밖 구석에 있었다. 철창으로 된 케이지에는 큰 닭과 오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탐스러운 강아지들이 들어 있는 종이 박스 앞에서 주저앉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두 이아는 살이 올라 복슬복슬한 강아지를 보고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짓고선 개장수를 쳐다보았다. 통통하고 작은 몸집에 붉은색 조끼를 입고 있던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만져봐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큰 아이는 강아지 털을 손으로 쓸어주는데 반해 작은 아이는 강아지 한 마리를 신중하게 보고 난 뒤 그중 하나를 골라 번쩍 들어 올리더니 가슴에 안고서 등털을 작은 손으로 쓸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질 지경이다. 두 아이를 지켜보던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여기 병아리도 있고 오리도 있다. 어머, 토끼 좀 봐. 너무 귀여워." 과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홍이는 냉큼 내가 가리키는 작은 동물들에게 옮겨왔지만 창이는 미련이 남는지 강아지를 한참 더 어루만진 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왔다. 강아지에게 빼앗겼던 마음들이 금세 새끼동물들에게 도달했다. 손으로 쥐면 다칠 것 같은 여린 생명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박스 안에서 삐약거렸다. 그 틈을 놓칠세라 내가 얼른 말했다.

"너~무 귀엽지. 우리 병아리 살까?" 작은 아이가 강아지가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강아지 주인이며 병아리 오리의 주인이기도 했던 상인이 말했다. "병아리, 오리, 토끼를 한 우리에서 키우면 병이 없데요. 몇 마리씩 가져가서 키워보시죠."

상인의 말에 혹한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병아리랑 오리, 토끼 키워볼래?"

아빠의 말에 작은 아이가 물었다. "그럼 강아지는요?"

"강아지는 나중에 키우자. 혹시 강아지가 병아리를 물어 죽일지도 모르니까."

강아지가 물어 죽일 수도 있다는 아빠 말에 더 고집을 피우지 않았지만 작은 아이 얼굴에 불만이 남아 있다.

"그럼 몇 마리씩 할까?" 내가 작은 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댓 마리씩 가져다 키워보세요. 닭이야 키우다가 잡아먹기도 하고 알도 낳으니까." 상인이 말했다.

"그럼 병아리, 오리는 다섯 마리씩 주시고..."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토끼는... 한 마리만 할까?"     

그러자 상인이 끼어들었다. "에이, 토끼도 두 마리하세요. 짝은 지어줘야 하니까."

"그럼 토끼도 두 마리 주세요."  그리고나서 남편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골계도 키워볼까?"

내가 상인에게 물었다. "오골계도 같이 키워도 될까요?" 상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같이 키워도 되고말고요. 오골계가 또 닭보다도 더 좋죠. 오골계를 잡으면 살도 까매요."

"어머, 그래요? 오골계도 알을 낳나요?" 내가 상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요. 알 낳지요." 상인이 말을 하며 허허 웃었다.

상인은 병아리 다섯 마리, 오리 다섯 마리, 오골계 다섯 마리, 그리고 토끼 두 마리를 상자에 담으며 말했다. "제가 마이신 몇 개 드릴 테니까 처음 몇 번은 사료에 섞어서 먹이세요. 그럼 죽지 않고 잘 살 거예요." 상인이 남편은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장님, 토끼는 굴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닭장에 관 있죠? 까만 관 두어 개만 넣어주세요. 그러면 토끼는 그 속에 들어가서 살게 될 거예요."     

상인은 상자에 병아리 다섯 마리와 아기오리 다섯 마리, 그리고 오골계 다섯 마리와 토끼 두 마리까지 무려 열일곱 마리나 되는 작은 생명들을 담아 주었다.

노랗고 하얗고 까맣고 회색인 여러 동물들이 상자 안에 담겨 있다. 이렇게 많은 동물들과 함께 돌아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면서도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동물이 담긴 상자를 서로 들겠다며 아웅다웅하였다. 제 아빠가 상자를 자동차 뒷 자석에 실어 주었다.


집에 돌아와 마당에 있던 닭장에 동물들을 풀어 주었다. 삐약삐약 꽥꽥... 작은 생명들이 엄마를 찾듯 커다란 닭장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듯하더니 어느 사이 저희들끼리 구역을 나누어 뭉쳐 있다. 토끼는 까만 비닐관 속에 들어가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어머, 얘들 대개 웃긴다. 종류가 같은 것들만 서로 뭉쳐 있어. 같은 닭인데도 오골계하고 병아리도 같이 있지 않네?" 내가 말했다.

"그러네, 희한하다." 남편이 닭장 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두 아이는 신이 나서 마당 주변을 뛰어다니며 손에 잡히는 대로 풀을 뜯어서 닭장 속에 던져 주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풀을 뜯어 닭장 속에 넣어주고 학교를 갔고 돌아와서는 가방도 풀지 않고 닭장부터 살폈다.

"어머니, 어머니!" 작은 아이가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왜?"

"당근 없어요?"

"당근 없는데. 왜?"

"토끼한테 주려고요. 저기 관 속에 토끼 있는 거 맞아요?"

"토끼가 안 보이지? 근데 거기 있어." 내가 말했다.

"당근 주면 토끼가 나올까요?" 작은 아이가 말했다.

"지금은 당근이 없으니까 저기 텃밭에 가서 배추 이파리 한 장씩 뜯어서 먹여봐. 뭘 제일 잘 먹는지 엄마도 잘 모르거든. 해보고 엄마한테도 알려줘."

"네." 작은 아이는 신이 나서 꽁지에 불 붙인 듯 밖으로 뛰어갔다.

"계단 내려갈 때 조심해에~~" 내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벌써 아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닭장에서 자라는 동물들에 마음을 붙이며 아이들은 점차 시골아이들이 되어갔다. 등하교를 함께 하는 형과 누나, 친구도 새로 사귀었다.  인도가 없는 길을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두 아이가  걱정되었는데  큰 아이들이 함께 다니게 되면서 나도 걱정을 놓게 되었다. 사귀는 친구들이 늘어갈수록 집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아이들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집 동물들도 자랐다. 동물들의 시간은 아이들의 시간보다 몇 배 빠르게 흘렀다.  

병아리는 자라면서 암탉과 수탉이 확연하게 다르게 변했다. 수컷은 암탉보다 몸집이 크고 이마에는 빨간 벼슬이 돋았으며 꽁지깃도 멋지게 자랐다. 털색도 윤이 나는 까만색으로 변했다. 눈은 세로로 길게 찢어져 날카롭게 번뜩였고 길고 튼튼한 발목과 발톱은 날카로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상인은 모든 동물들을 암컷 네 마리에 수컷 한 마리로 배치해서 우리에게 주었는데 실수가 있었던가 보다. 쌈닭으로 내놓아도 우승을 할 만큼 튼튼한 수탉이 두 마리였다. 오리와 오골계는 외관상 변화도 크지 않았고 눈에 띄는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나 수탉 두 마리는 그렇지 않았다. 수탉들의 짝짓기 계절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알지 못했던 닭들의 신세계로 초대되었다.


"어머, 어머, 암탉이 왜 저래? 재 병든 거 아니야?" 닭들을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당신 못 봤어?"

"뭘?"

"얘들이 짝짓기 할 때가 됐나 봐. 당신도 보게 될 거야."


남편의 예언대로 나는 곧 닭들의 짝짓기 세계를 보게 되었다. 봄날 보드라운 햇살이 응달진 곳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완연한 봄이 되었을때 수탉은 검게 윤나는 털을 고르고는 름한 걸음으로 잔디가 깔린 마당으로 나온다. 수탉은 왼 날개는 펼치고 오른쪽 날개는 가슴에 붙이고선 천천히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구애의 춤이다. 날개를 번갈아 펼치고 가슴에 붙이며 무릎을 꺾었다 펴며 춤을 추는데 흡사 승무를 보는 것 같았다. 수탉이 구애춤을 추는 동안에는 그 모습이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수탉이라는 사실도, 구애를 위한 춤이라는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무용수를 보는 것처럼 넋을 잃고 보게 되었다.

봄이 되면 수탉은 서너 차례 구애춤을 추었고, 그러고 나면 짝짓기를 시작했다. 세 마리의 암탉을 두고 수탉 두 마리가 피가 나도록 싸웠다. 벼슬이 찢기고, 빠진 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너무 처절하게 싸웠기 때문에 수탉 한 마리를 잡아 발목을 끈으로 묶어 문 앞에 매어두기도 했다. 묶었다 풀었다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최종적인 해결법으로 잡아 상에 올렸다. 남편은 그렇게 닭 사냥꾼이 되었다.


정적이 사라진 수탉은 마음껏 암탉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조금 처절했다. 날카로운 수탉의 발톱에 암탉의 털이 빠져나갔다. 털 빠진 암탉은 병든 닭처럼 보여 안쓰러웠다. 암탉은 이 삼일에 하나씩 알을 낳았다. 나는 곧 암탉이 알을 낳고 내는 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다. 힘없이 꼬꼬꼬꼬댁 하는 소리를 들을 땐 어떤 아픔이 느껴졌다. 아기를 낳아 본 사람만이 공감하며 느끼게 되는 통증이었다.  


열일곱 마리의 동물들을 키우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았고, 우리 가족은 점차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며 편안함을 느꼈다. 두 아이는 가장 가까이에서 동물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들의 눈으로 본 세계를 기록했다.     





창이의 일기


  오리의 웃음 소리  /3월 14일     

나는 TV를 보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탕을 빨고 있는대 거의다 없어졌다.

어머니는 그걸보고 웃으셨다. 그런데 갑자기 오리가

"깍깍깍까까"이렇게 웃은 것이었다. 나도 웃고 어머니도 웃었다.     

나는 친구들이 웃긴 말을 할때 오리도 웃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그냥 오리가 평소에 울부짖는 것 같다.

그래도 맨날 듣는 소리이고 거의 웃지 않는 목소리다.

그리고 오리는 "꽥꽥" 하는대 우리 오리만 "깍깍깍깍" 이런 소리를 낸다.

참으로 이상한 소리다.     


  식목일  /4월 5일 토요일

오늘은 식몰일 난 식목일이 좋다. 뭐 나무도 심으니까

이젠 마음이 바꿨다. 식물은 우리에게 공기를 주니까

나무는 풀보다. 공기를 더 많이 생산한다.(?)

그리고 수탉 두 마리가 암탉1마리 때문에 진 닭이 죽으면 난

기분이 우울해진다. 왜냐? 생명체는 우리기 때문이다.

식물도 그렇다. 나무를 함부로 베면 피가 튀니까 난

나무를 베지 않는다. 그리고 또 식물이 죽으면 난

모든 생명체는가 사라지는 듯하다. 그래서 난!

식물이나 생명체를 죽이지 않는다. 다시한번 생각해도

식물이나 생명체를 죽이지 않겠다.     


  수탉의 짝짓기  /4월 23일 금요일     

닭장속에는 암탉이~~~~~~~~~~ 오늘 저는 수탉이 암탉을 먹으려는줄 알았습니다.

바로 목을 쪼아댔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짝짓기를 시도하는군요.

그런데 오리도 함께 암탉을 때리자 저는 그때 닭장안에 들어가 오리,수탉을 공격했

습니다. 당연히 승자는 저!! 아 역시 제 실력은 못당하는군요. -.-^     

저는 처음에 수탉이 암탉 등뒤에 올라 공격하는줄 알아서 공격 했지만 아버지가알

이켜 주어서 저는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오늘 짝짓기를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토끼   /5월28일 수요일  

우리집에서 토끼 2마리가 탈출을 했다. 이름은 토순이와 겔러리 토 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달리기가 엄청 빠르다. 나도 쫓아갈수 없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토끼의 기지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거긴 낯선 곳이다.

겔러리 토는 엄청나게 빠르게 갔고 나는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에도 잡을 려고 했다. 하지만 토끼의 다리를 따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후 박이 형내에서 토끼 두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박이 형은 달리기가 빠르니까 하지만 토끼의 다리도 빠르다.

박이형과 토끼가 달리기 경주를 하면 누가 이길까?

궁금하다.     



 



                     

이전 01화 엉뚱한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