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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Sep 23. 2024

복구가 왔다

시골집으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갔을 때 도시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있는데 사정이 생겨 키우지 못하게 되었다며 가져다주겠다는 것이다.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두 아이들은 강아지 소리에  펄쩍펄쩍 뛰며 금방이라도 강아지를 품에 안게 된 것처럼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어서 좋아했다. 'NO'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며칠이 되지 않아 지인과 강아지 주인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강아지는 차를 타고 멀미를 했던지  웅크린 채  몸을 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빨을 드러내며 무섭게 으르렁 거렸다. 뾰쪽하게 드러난 이빨도 무서웠고 생각보다 털이 길었다. 긴 털에  뾰족뽀족한 도깨비풀 씨앗이  붙어버리면 가위로 잘라내야 할것 같았다. 게다가 흰색털이라니... 어쩐지 선뜻 내키지 않았다.     


오십 중반으로 보이는 강아지 주인은 눈치가 빨랐다. 내  망설임을 눈치 채고서 수선스럽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아휴, 우리도 남 주기 싫은데 아파트에서 키우기에는 너무 커버려서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얘들도 복구 보내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것을 내가 몰래 가져와버렸어요.”

그러더니 몸을 떨고 있는 강아지 털을 쓰다듬으며 “복구야, 이제부터 여기가 너희 집이야. 여기서 새 가족들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해? 알았지? 오구구구” 강아지를 쓰다듬다가 갑자기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강아지 이름은 복구고요, 얘가 5개월쯤 되었나...? 아무튼 아직 한 살은 안 됐어요. 얘 엄마가 시추라서 자라도 지금하고 별반 다르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더니 호호호호 웃으며 복구가 태어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벚꽃이 만개하던 봄에 저희가 얘 엄마를 데리고 자유공원으로” 그러더니 나를 행해서 “자유공원 아시죠? 인천에 있는.”

“네. 자유공원 저도 알아요.”

“거기 벚꽃이 많잖아요. 그래서 얘네 엄마랑 우리가 벚꽃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몸집 큰 개를 만나 그만... 호호호 그렇게 해서 얘가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복구 주인의 얘기를 종합하자면 자유공원에서 복구엄마와 무슨 종 이었는지는 까먹은 몸집이 큰 개가 서로 첫눈에 반해서 복구가 태어났다 말이다.

어머 재밌네요 어쩌네요 하며 맞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새 마당에는 복구와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지인과 개주인은 집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마당에만 있다가 황망히 떠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얼렁뚱땅 떠 앉다시피 복구와 한 식구가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창이는 강아지를 보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창아, 얘가 차를 타고 와서 힘든가 봐. 그러니까 가까이는 가지 마.”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복구에게 다가가는 창이를 황급히 말렸다.

“얘 이름은 복구래. 아직 한 살이 안 된 강아지래. 너도 이사 올 때 힘들었지? 지금 복구도 지네 집을 떠나와서 슬픈 거 같아. 잘못하면 너 물릴 수도 있어. 그러니까 복구가 적응할 때까지 우리가 좀 기다려야 될 거야.”

창이는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내 말을 잘 이해했다. 창이보다 두 시간 늦게 학교에서 돌아온 형에게 내가 했던 이야기를 해 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형도 조심해. 아직 새끼지만 물 수도 있어.”     

홍이는 제 기대와는 달랐던지 복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창이는 달랐다. 틈만 나면 복구가 묶여 있는 데크로 나가서 복구처럼 납작 엎드려 복구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은 천천히 얼굴을 익혀 나갔다. 창이는 ‘복구 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복구와 복구형은 단짝이 되어 잘 놀았다. 어느 날 복구형이 리코더를 불다가 급하게 나를 찾았다.

“어머니, 이리 와보세요. 복구가 노래 불러요. 자, 잘 보세요.” 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리코더를 불었다. 그러자 복구는 진짜 노래를 하는 거 아닌가. “우우우우~우우우~우~~~” 정말로 리코더 박자에 딱딱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보셨죠? 어머니도 보셨죠?” 창이는 복구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긴 털을 쓰다듬다가 안았다가 뒹굴었다가 난리도 아니다.

키울수록 복구의 영특함이 드러났다. 겨울에 복구형이 귤을 먹다가 귤 하나를 복구 입에 쏘옥 넣어주었더니 받아서 냠냠 먹었다. 과일 먹는 개도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과일이라고 다 먹지는 않았다. 먹다가 던져주는 과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꼭 손으로 입에 넣어주어야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복구는 자전거와 레이싱도 할 줄 알았다. 그게 뭐 신기한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을 할 수도 있는 신기한 일이다. 영리하다는 진돗개도 하지 못한 것을 복구는 해냈다. 훈련 받지 않은 개가 속도를 빨리했다 늦추거나 자전거가 멈추어 섰을 때 멈추어 기다리는 것은 개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개들은  달리는 자전거와 간격이나 거리를 유지 하는 감각이 부족할 뿐 아니라 달리는 자전거에 대한 감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개들과  레이싱  자체가 어려웠다.  오로지 복구만이 가능했다. 여러 개들을 키워보니 그랬다.


그토록 영리한 복구였지만 한 가지 못 말리는 문제가 있었다. 복구의 바람기였다.    

시골집에서 키우는 개들은 모두 줄로 묶여 있다. 우리도 처음부터 마땅히 복구를 묶어서 키워야 했지만 몸집이 작은 복구를 묶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복구가 바람기 많은 개였던 것도 몰랐고 집 마당을 벗어나 온 동네에 씨앗을 퍼트리고 다닐 줄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동네 형 집에서 놀고 집에 온 창이가 "저기 복구 닮은 강아지가 있더라고요."라는 말을 했을 때도 그 강아지가 복구 새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복구는 얌전하고 영리한 개였으니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퉁명스러운 남자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어이, 그 집 개 좀 묶어놔욧"

"네...?"

"거 하얀 개 있죠? 쪼그만 거."

"네..."

"자꾸 우리 집에 와서 우리 개랑 어울려서... 아무튼 개 좀 묶어욧."

화가 많이 난 아저씨 얘기를 들으며 그제야 창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얼른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금방 묶을게요. 죄송합니다~"

"에잇." 딸깍. 전화가 끊겼다.

나는 밖으로 나가 복구를 불렀다.

"복구야, 복구 너 어딨 어?"


시골집에서 키우는 개들은 줄에 묶여 있다. 묶인 개들은 그 집을 방문하는 누군가가 찾아올 때 짖는다. 반갑다는 소린지 너는 누구냐고 묻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묶인 줄이 팽팽하도록 나와서 컹컹 거린다.  그 집의 수문장 격인 개들 대부분은 여름 삼 복을 넘지 못한다. 어떤 집에서는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라는 노골적인 이름으로 부르며 개를 키우는 집도 있다.

복구는 묶여 있던 동네 개들의 부러움을 샀을 테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원성을 샀다. 특히 봄이 지나 유월이 되었을 때 그들의 인내심은 폭발되었고 우리 집 전화벨은 바쁘게 울렸다.


읍내 철물점에 가서 목 끈을 사 왔다. 그리고 복구를 묶었다. 복구는 싫다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복구형은 복구 앞에 엎드려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했다.

"창이도 들어와 얼른. 이젠 안 돼. 쳐다보지 마." 싸늘하게 내가 말했다.

밤이 되어 나가 보니 복구가 엎드려 있다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들고 슬프게 낑낑거렸다.

"안 돼.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바람피우고 돌아다니래, 응?" 남편과 홍이 창이도 밖으로 나왔다. 모두 침울한 얼굴이다.

"다들 들어가서 자. 이번엔 진짜 안돼 정말로. 절대 풀어주면 안 된다. 알았지? 당신도?"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복구는 먹지를 않았다. 몸을 바닥에 붙이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창이나 남편이 나오면  불쌍하게 쳐다봤다. 식구들은 모두 침울했다. 나만 빼놓고. 나는 다시 엄포를 놓았다.

"절대로 복구가 불쌍하다고 속으면 안 돼. 알았지 이번에는 진짜야. 그러다 동네에서 복구 큰일 난다. 아저씨 진짜 화났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알겠지?"


우리 집 남자들은 마음이 너무 약하다. 삼일쯤 되었을 때였나...? 남편이 ‘도저히 불쌍해서 못 겠다’며 끈을 풀어 주어 버렸다. 내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유공원 로맨스로 태어난 강아지에게 카사노바의  DNA가 흐르고 있을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네 운명이다 복구야!!


그런데 뜻밖에도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서 열렸다.

1년 계약으로 살기 시작했던 미국식 전원주택에서 2년 계약을 맺고 1년을 살고 있을 때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 계약기간이 1년이 더 남아 있지만 본인들이 사정이 생겨서 이사를 와야 하니 집을 빼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도 근처에 땅을 구입했기 때문에 잘되었다 싶었다. 우리 땅 근처로 간다면 우리도 더 좋을 것 같았다. 동네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복구에게도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멀지 않아 시골집을 구해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복구로 인해 동네사람과 일어났던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두 번째로 이사한 집은 이 지역 전통 가옥이었다. 대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전에 살던 집은 대문이나 담이 없어서 복구가 자유롭게 출입을 할 수 있었던 거다. 단독 주택에 처음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도 대문과 울타리가 없어 복구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행히 대문이 있는 두 번째 집에서는 복구가 동네를 돌아다닐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니 정확히는 동물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게 된 일이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예쁜 강아지가 한 마리 더 오게 되었다. 도시에 사는 지인이 데려왔는데 암컷이었다. 그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복구 색시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이름도 복실이라 지어주었다. 복구처럼 털이 길지만 않다면 어떤 강아지라도 좋았다. 얼굴이 조막만 하고 눈이 똥그란 복실이는 몸집이 작았다. 복구도 제 색시가 될 강아지인걸 알았던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개들이 새끼 욕심이 그렇게 많은 줄 누구 알았을꼬. 강아지들이 정신없이 불어났다. 강아지가 많이 태어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강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어느 날 마루 밑에서 태어나 마루라 불리던 4개월쯤 된 강아지가 토하고 설사를 하더니 축 늘어졌다. 조그만 강아지가 고무줄처럼 길어지는 것을 봤을 땐 믿기지 않았다. '축 늘어진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개들에게 잘 걸리는 파보 증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동물병원에서였다. 강아지가 3개월 되었을 예방 접종을 해 주어야 한다며 수의사는 굳이 병원에 데려오지 말고 집에서 예방접종 하라며  남편에게 강아지에게  주사 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그 뒤로 강아지가 태어나면 남편은 약을 사서 직접 주사를 놨다.


그렇게 햐도 죽는 강아지들은 있다. 동물이지만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못할 일이다.  어느 날 강아지들 케어를 도맡아 하던 남편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우리 강아지들 입양 보내고 복구만 키우기로 하자.”

나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아픈 강아지들을 돌보고 죽은 강아지들을 담당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아이들도 아빠의 결정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복구는 우리 곁에 남겨준다고 하니 그것만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강아지들을 병으로 보낸 경험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강아지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남편은 즉시 강아지를 분양하겠다는 공고문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온라인에 올렸다.


강아지 분양 합니다.   

  

혹시 강아지를 키우실 분이 있으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실물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새끼 때야 안 이쁜 게 있겠냐만은 옹알옹알 정말 이쁩니다.

실물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복실이>

복구의 어미가 공원에서 눈 맞아 태어났다는 복구 이복동생. 역시 애완견으로 키우던 사람이 데려다주었음. 암컷. 4살

지금까지 두 번 출산했음. 남은 자식은 오월이 하나.  들판의 죽은 새나 쥐들을 물고 와서 숨겨놓고 먹기도 해서 많이 혼나기도 했는데, 다른 개들에 비해 약해서 밥을 주면 제대로 찾아먹지도 못함. 눈치만 슬슬 살피는 비굴함(?)으로 인해 밉기도 하면서도 가엾기도 함.     


<오월이>

1살. 암컷. 복실이의 딸.

작년 오월에 태어났다고 해서 오월이라고 이름 붙였음. 암컷임에도 욕심이 많고, 활달함.

이번에 강아지 3마리 출산. (****오월이가 출산한 강아지 3마리를 키우실 분에게 나눠 드리고자 함)     


<몽실이>

1살. 암컷.

우리 집 개중에서는 덩치가 제일 큼. 밥도 제일 많이 먹음. 성질도 활달함.     


<강아지 3마리>

6월 5일 출생. --- 4마리 낳았으나 1마리는 죽고, 3마리가 남아있음. 아직 이름은 짓지 않았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직접 오셔서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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