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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운 바위풀 Oct 22. 2018

수줍은 고백

여름까지 지냈던 뉴욕의 아파트 단지는 더위가 찾아오는 6월 말 경이 되면 반딧불이들이 많이 몰려왔다. 어두워진 밤 산책을 나가면 연둣빛의 작은 램프들이 깜박이며 마치 분수처럼 솟아 오르는 풍경이 제법 예뻤는데, 어디 자연환경 좋은 데 가도 보기 힘들다는 반딧불이들을 이렇게 구경할 수 있다니 운이 좋았다.


나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반딧불이라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터라 우리는 봄부터 이미 여름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운동을 다녀오는데 연둣빛 불빛들이 솟구치는 걸 마주쳤다. ‘우와’.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가 이불속으로 들어가려던 아이들을 불렀다.


“주안아, 윤이야, 반딧불이 보러 가자!”


내복 바람으로 샌들만 신고 나온 아이들은 조그만 빛 덩이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신기한지 연신 뛰어다니며 신이 났다.


“주안아, 엄마가 이쪽에 반딧불이가 많대.”


“응? 엄마가 어떻게 알지? 아, 맞다. 엄마는 여기 혼자 있으면서 전부 엄마 꺼였지.”


일 년 먼저 뉴욕에 온 엄마와 떨어져 지냈던 것이 문득 생각난 모양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백을 한다.


“아빠, 그런데...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아빠가 좋았는데... 음, 미국에 오니까 엄마가 더 좋아.”


무언가 굉장히 미안한 듯한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서운해할까 봐 걱정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별 내색은 안 했지만 온 가족이 다 같이 보낸 뉴욕의 시간이 제게 참 좋았나 보다.


“그래, 아빠는 그래도 괜찮아. 아빠는 온 가족을 다 좋아하잖아.”



아빠와 아이들만 함께 서울에서 보냈던 일 년. 그리고 전업 아빠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보낸 시간이 이제 일 년 하고 이 개월. 그 시간 동안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이들의 아빠에 대한 의존도는 적지 않게 늘어났다. 아빠의 아이들에 대한 의존도 또한 마찬가지고. 그러다 보니 헤어짐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 이제 아빠와 잠시 떨어지게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 큰 아이는 부쩍 아빠를 찾는다.


“아빠, 나 한 번만 안아줘. 아... 아빠랑 자는 거 그리울 거야.”


결코 드러내 놓고 애정 표현을 하던 녀석이 아니었는데 아빠가 떠날 걱정 때문에 받는 제 속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아빠를 보고 싶을 때 언제나 전화할 수 있도록 태블릿에 직통 버튼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 몇 달 전에 지나가듯 큰 아이의 의중을 물은 적이 있었다.


“주안아, 혹시 아빠는 일을 하면서 서울에 있으면 어떨까?”


“응? 왜, 아빠 회사 가게?”


“아니, 그냥 생각해 보는 중이야.”


그렇게 운을 띄우고 며칠 뒤 아이가 지나가듯 말을 꺼냈었다. 


“아빠, 나는 아빠가 우리랑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어.”


질문을 한 나는 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아이 마음속에서는 그게 내심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아이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제 생각을 뱉어냈었다.



어제저녁,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한 가족 외식. 밥을 먹다가 큰 아이가 말을 꺼냈다.


“아, 아빠 가면 보고 싶을 텐데. 그리워서 어떡하지.”


별 일 아니라는 듯 툭 던지면서도 살짝 눈물이 글썽인다. 


“주안아, 아빠랑 자주 전화하고 얼굴 보자. 아빠가 주안이 너무 보고 싶으면 다시 올게.”


“그런데 주안아, 그럼 그동안 아빠 밉다고 했던 말 다 취소할 거야?”


갑자기 눈이 부쩍 커지더니 곤란한 기색이다.


“음… 언제부터 언제까지…?”


“음, 빵 살부터 여섯 살까지?”


살짝 고민하더니 쏟아져 나오는 말이란...


“취소, 취소, 취소, 취소, 취소…(무한 반복)”


… 숨 좀 쉬어가면서 하지 그러니,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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