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메이젤라스 - <Carnival Strippers>
사진가 수전 메이젤라스
인연의 힘으로 포착한 순간들.
이스트 빌리지의 댄지거 갤러리를 찾아가 만난 전시에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매그넘 사진가이기도 한 수전 메이젤라스가 1970년대에 찍은 <카니발 스트리퍼> 프로젝트였다. 그녀의 이미지에선 사진가와 댄서들이 함께 쌓아 올린 세월을 따라 깊어간 인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사진 속 그녀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오랜 품을 들인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거기에는 이미지를 보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있다.
“뭘 하면 되죠? 저 춤 좀 출 줄 알아요. 아주 잘 추죠. 스트립 댄스라면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건 괜찮아.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거야.”
꺼끌꺼끌한 흑백 사진 속 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공연단을 찾아온 첫날이었다.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레나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또렷했다. 종종 메이젤라스의 카메라 앞에 서 주었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약물 중독 문제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스트리퍼라고 했지만 때로는 몸까지 팔아야만 했던 그녀들의 삶은 고달팠으리라. 하버드 출신의 이십 대 사진가와 카니발의 댄서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사뭇 다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메이젤라스도 처음에는 그녀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몰랐던 것만 같다. 프로젝트 첫해에 찍은 자신의 사진들은 그저 쇼를 보러온 관객의 시선에 머물렀다고 한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해 시즌이 돌아오면 다시 공연단을 찾아가며 한 발짝씩 그녀들에게 가까워졌다. 한 해 한 해 함께하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댄서들도 조금씩 곁을 내주었다. 그리하여 메이젤라스가 한 명의 사진가가 아닌 친구가 되었을 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그녀들의 모습이 프레임에 들어왔다. 무대 뒤편, 거리낄 것 없이 맨몸을 드러낸 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던 순간은 그렇게 카메라에 담길 수 있었다.
함께 쌓아간 인연의 세월이 아니었다면 포착할 수 없었을 순간들, 그 안에 그녀와 그녀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메이젤라스의 프로젝트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것 또한 그래서가 아닐까.
그녀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던 메이젤라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댄서들 자신뿐만 아니라 공연단의 매니저들과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그녀들의 남자친구들, 그리고 쇼를 보러온 관객들까지 인터뷰했다. 그렇게 채집한 목소리는 이미지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그 안에는 프레임을 둘러싼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개중에는 종종 카메라 앞에 서 주었던 레나의 목소리도 있었다. 레나가 공연단을 찾아온 첫날이었다.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레나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긴장한 기색이 또렷했다.
메이젤라스가 포착한 스트리퍼들의 삶은 고단해 보였다. 트럭을 개조한 좁은 가설무대 위에선 호객 행위가 한창이었다. “자자, 여기까지는 맛보기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안으로 들어오세요!” 뒤따라 들어간 텐트 안은 들뜬 남자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희미한 전구 몇 알에 의지한 그들이 소리 질렀다. “더 보여 달라고, 더! 더!” 공연이 끝난 뒤엔 지친 몸을 침대에 던졌다. 메이젤라스의 카메라는 삶의 내밀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었다. 댄서들과 함께 쌓은 인연의 힘에 기대어서였다.
몇 달 뒤 한 강연에서 수전 메이젤라스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칠순이 넘은 노작가가 오랜 세월 발로 뛰며 쌓아 올린 생각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사진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이십 대의 그녀도 그랬을 것만 같았다. 조금 어설프지만 단단한 진심이 있었기에 댄서들의 마음 또한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와 그녀들의 이야기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울림을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댄지거 갤러리, 뉴욕.
2018.01.
Fuji X-Pro2 + Color Skopar.
#뉴욕 #뉴욕여행 #뉴욕사진갤러리 #사진갤러리 #행복우물 #출간전미리보기 #사진여행 #수전메이젤라스 #매그넘 #댄지거갤러리 #카니발스트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