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 릭셴버그 - <Imperial Courts>
<Imperial Courts>.
사진가 다나 릭셴버그.
추위가 한창이던 뉴욕의 1월, 눈이 녹으며 질척해진 길을 걸어 첼시의 어퍼쳐 갤러리를 찾았다. 갤러리 탐방 계획을 떠올린 뒤 처음으로 나선 기행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처음 맞아준 건 어퍼쳐 재단의 설립자들과 기부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자랑스러운 흰 벽이었다. 아무렴, 어퍼쳐라면 이 정도의 자신감은 가질 수 있겠지.
바로 옆으로 전시 공간이 이어졌다. 그 입구에 나란히 걸린 두 장의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은 앳된 소년이었다. 살짝 그림자가 진 아이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슬퍼 보였다. 그런데 옆의 사진은 뭐지? 제목으로 눈을 돌렸다. <토니 (Tony), 1993>. 이 아이의 이름이 토니인가 보구나. 오래전 사진이네. 그리고 왼쪽은……. 순간 마음이 너무 아려와 멈칫했다. 왼쪽은 <토니의 추모비 (Tony’s Memorial), 2010>. 소년의 옆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소년 자신의 추모비였다. 다시 한번 사진을 보았다. 불과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두 장의 프레임 사이로 십칠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네덜란드 사진가 다나 릭셴버그의 프로젝트 <임페리얼 코츠 (Imperial Courts)>는 LA 근교의 공공주택 단지 중 하나인 임페리얼 코츠와 그곳의 주민들을 찍은 것이다. 그녀가 처음 임페리얼 코츠를 찾은 건 1993년이었다. 직전 해에 일어났던 LA 폭동 이후의 이야기를 취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그녀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디어가 LA 외곽에 있는 가난한 동네들을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이미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폭동의 영향으로 흑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니 더럽고 어두운 뒷골목과 부서질 듯 낡은 건물은 선입견을 품은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이것 보아라, 이러니 폭동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릭셴버그만은 달랐다. 그녀는 그곳의 사람들 또한 자신과 똑같이 소박한 삶을 꿈꾸는 평범한 이들일 뿐임을 알았다. 그래서 임페리얼 코츠의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릭셴버그는 그때부터 이십여 년의 세월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이 프로젝트로 2017년 도이체-보르셰 사진재단상을 수상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백인, 여성, 게다가 외국에서 온 사진기자가 가난한 동네의 흑인들 사이로 섞여들기가 어찌 수월했을까. 그렇지만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당시 커뮤니티의 구심점이던 갱단 두목까지 찾아가 자기 생각을 전하고 작업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두목은 부하까지 붙여 그녀의 촬영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내가 준비하는 책에 이미지를 쓰고 싶다고 요청 메일을 보냈을 때다. 릭셴버그를 대표하는 그림 갤러리(Grimm Gallery)에선 이렇게 답을 주었다. 프로젝트를 잘 보아준 건 고맙지만 임페리얼 코츠의 주민들을 보호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 때문에 이미지 사용은 허락할 수 없다고. 이 답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작가의 진심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스치듯 지나가지 않고 사진가와 교감하고 있다고 느낀 것도 결국 그녀의 이런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전시장 초입에 나란히 걸린 두 장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에는 앳된 소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살짝 그림자가 진 아이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슬퍼 보였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진은 뭐지? 프레임 아래에 붙은 제목으로 눈을 돌렸다. <토니 (Tony), 1993>. 이 아이가 토니인가 보구나. 오래전의 사진이네. 그리고 오른쪽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은 <토니의 추모비 (Tony’s Memorial), 2010>. 소년의 옆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소년 자신의 추모비였다. 다시 한번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불과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두 장의 프레임 사이로 십칠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릭셴버그의 사진이 임페리얼 코츠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모여 살며 많은 이들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녀의 카메라 앞에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진가의 포트레이트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빈민가 거주민도,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유색인종도 아닌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사진가와 그리고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릭셴버그의 작업은 그렇게 임페리얼 코츠와 그곳 주민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장을 거닐며 다시 한번 찬찬히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어린아이였던 소녀는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로 자랐다. 아이를 안고 있던 엄마는 이제는 손주를 안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사이 꼬마 토니는 세상을 떠났다. 릭셴버그가 담은 사진 속 순간들을 따라 임페리얼 코츠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한 명 한 명의 작은 삶에 대한 기록이면서 이 삶들을 모아 그려낸 커뮤니티의 역사였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뉴욕사진갤러리 #뉴욕갤러리 #갤러리기행 #행복우물 #행복우물출판사 #출간전미리보기 #예술사진여행 #뉴욕여행 #뉴욕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