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s>
시대의 단면을 기록하다 - 티나 바니
<Landscapes>.
몇 년 전, 서촌의 집에서 청계천 사무실까지 종종 걸어서 다니던 때가 있다. 당시 가방에 항상 카메라 한 대를 넣고 다녔다. 라이카의 바르낙, 러시아제 조르키, 올림푸스의 뮤, 혹은 후지의 X-Pro2. 물려 놓은 필름은 거의 늘 흑백이었고 디지털도 항상 흑백에 맞춰 놓았다. 길을 따라 걸으며 이른 아침과 초저녁의 종로, 광화문 풍경을 담았다. 빌딩 숲 사이를 채운 사람들, 새벽을 밝히던 보아의 콘서트 광고판, 광장으로 모여들던 촛불과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 있던 노숙 농성장. 일기와도 같은 그 시절 사진들은 한편으로는 작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했다. 프레임 속 시간의 흔적에서 그때의 서울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낡고 무거운 톤의 흑백사진 혹은 슬픔에 짓눌린 표정 같은 것들. 하지만 이는 미디어가 심어 준 선입견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한 번 ‘다큐멘트 (document)’라는 낱말을 곱씹어 보자. 이 말은 기록하는 ‘행위’를 가리킬 뿐 기록의 ‘대상’에 대한 어떠한 호불호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을 어떻게 담았든 간에 누군가의, 어딘가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면 곧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진가 티나 바니의 작품을 다큐멘터리라 하는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일정 부분 작가가 개입하기 때문에 네오-다큐멘터리라고도 하는 그녀의 사진은 가족과 친구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다. 외출을 준비하는 엄마와 여동생이나 일요일 아침 식탁에 모인 대가족의 풍경은 사진만 본다면 분명 그리 특별한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면 어째서 바니의 사진을 다큐멘터리라 하는 걸까?
그건 아마 그녀의 이미지가 간직한 시대성 때문이리라. 자못 평범해 보이는 사진 속 세상은 미국 동부에 사는 전통 있는 최상류층 커뮤니티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진가에게는 가장 익숙한 세계이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평생 상상조차 못 할 세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지 못 한다고 하여 그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곳은 분명히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단면 중 하나이다. 그리고 바니는 그 시대의 단면을 기록했다. 그녀가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는”, “어쩌면 미국에서 다시 볼 수 없을”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이다.
첼시의 카스민 갤러리를 찾은 건 바니의 새 전시 <Landscapes>를 보기 위해서였다. 늘 인물 중심의 작업을 선보였던 그녀가 바라본 풍경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첫인상은 쓸쓸함이었다. 낮은 채도의 톤 때문일까? 혹은 사람이 없는 풍광이 외로워 보여서 그랬을까? 늘 사람들로 가득하던 종전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이 주인공이 아닐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프레임을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의 하나였다. 멀리 보이는 고급 주택 단지와 잘 손질된 잔디밭과 퍼레이드 행렬의 인파가 프레임 안에서 동등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시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사진의 결이 주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이전의 인물 사진과는 사뭇 달랐는데 전체적인 장면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금세 태풍이 불어닥칠 듯한 선착장의 하늘과 포근한 아침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대가족의 식탁이 겹쳐 보였다. 어째서일까? 비밀은 사진 속 장소에 있었다. 바니의 ‘Landscapes’ 속 공간은 그녀가 늘 사진을 찍어온 상류층 커뮤니티의 동네였다. 그러니 인물과 풍경이라는 겉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그 아우라는 비슷하게 느껴진 것 아닐까? 공간이 내뿜는 아우라는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시대의 단면을 기록하고 있었다. 때로는 다가서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에 기대어, 때로는 멀리서 바라본 풍경에 기대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당신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말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혹시 낡고 무거운 톤의 흑백사진이나 슬프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 내 말이 맞는다면 이는 미디어가 심어준 선입견 때문이리라.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이러한 소재들을 찍은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한번 ‘다큐멘트 (document)’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자. 이 낱말은 ‘기록’하 는 행위를 가리킬 뿐 그 대상에 대한 어떠한 호불호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을 담았든 간에 한때의 그리고 무언가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면 곧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일기 같은 내 사진들도 그래서 서울의 다큐멘터리라 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사진이 간직하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처럼 보이는 사진 속 시간은 사실 그리 평범하지 않다. 그건 그 안의 사람들과 배경이 되는 장소 때문이다. 바니가 찍은 순간은 미국 동부에 모여 사는 전통적인 최상류층 커뮤니티의 모습이다. 그곳은 그 일원으로 나고 자란 사진가에게는 가장 익숙한 곳이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존재조차 알지 못할 세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지 못한다고 하여 그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녀의 사진들은 지금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간직하고 있다. 바니 또한 그래서 자신의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사라져 가고 있는 상류층의 생활방식”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한 것도 그런 의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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