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운 바위풀 May 17. 2021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어

전업 아빠의 육아 일기 #02.

아마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비슷했겠지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쉬웠던 건 아닙니다. 이 결정이 과연 맞을까? 언젠가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중에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끊이질 않았죠.


하지만 그 누가 미래를 단정 지어서 알 수 있겠어요. 오랜 고민 끝에 제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래, 어떻게 해야 “지금의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지만 생각하자. 그렇게 결단을 내린 후, 짝꿍에게 제가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말했죠. 한 마디를 덧붙이면서요.  


“그런데 하나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나는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행복하게 키울 자신이 없어. 내가 행복해야 우리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조금 이기적으로 들리시나요?


그런데 이건 제가 아이들의 주양육자가 되기로 하면서 생각한 신념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돌보는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다고요. 저를 희생하여 가족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저와 가족 모두를 위하고 싶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를 위한다고 해서 모든 걸 저 좋은 대로만 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도 없고요. 무엇보다 전업 아빠로서 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책임 -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 - 에 당연히 충실해야죠. 다만 오직 아이들만을 위해 내 모든 기운을 쏟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에너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길게 보면 그게 더 함께 오래 할 수 있는 길이라 믿었어요.


여하튼 이러저러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 저는 드디어 전업 아빠의 세계로 발을 디뎠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생활에 허덕이며 좌충우돌했냐고요?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난 맞벌이 시절부터 저희는 가사와 육아의 많은 부분을 함께했습니다. 요리는 짝꿍이 더 실력자지만 설거지와 빨래는 제가 주로 담당했고, 청소는 같이 했어요. 특히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쪽에는 제가 조금 더 일가견이 있었죠. 기러기 가족생활 일 년 동안 저와 아이들끼리만 지낸 시간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매 주말이면 아이들이 온전히 저를 차지했기 때문에 육아 스킬이 늘 수밖에 없었죠. 아마 이렇게 쌓인 경험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심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아주 쪼끔은 있었던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완벽한 주양육자가 된 건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간신히 챙겨주는 수준에 머물렀지요. 전업 아빠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슈퍼맨 아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그건 삼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아주 조금은 아이들을 잘 돌보게 되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여전히 매일 자신을 반성할 일이 생기거든요. 아마 이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깨닫고, 반성하고, 배우고, 또 깨달으며 아이들을 돌보죠. 그러면서 아이들도, 저도 함께 커 가는 기분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삼 년 전의 결정을 후회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해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을 들 수 있을 듯하네요.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이 확실히 줄었거든요. 그래서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긴 합니다. 반면 마음이 끌리는 곳에 조금 더 시간을 쓸 수 있게 된 건 좋은 점이에요. 흥미가 있던 분야를 깊게 파고들다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것이 꼭 회사의 ‘일’이라는 단어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저처럼 사는 것이 정말 좋아요’라는 말을 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다 다를 텐데 어찌 그러겠어요. 그저 이렇게도 살고 있고, 저렇게도 살고 있고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혹시 아나요? 이 글을 읽는 아빠 중 누군가는 전업 아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죠. :)




셋에서 넷이 되어 떠난 첫 주말여행.


이제는 셋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Fujifilm X-Pro2 + Voigtlander Color Skopar 21mm.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전업 아빠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