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작은 섬 레위니옹에 간 적이 있어요. 지도에서 찾으려면 눈 크게 뜨고 열심히 들여다봐야 할 만큼 작은 곳이지요.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시간을 틈타 낮에 보아둔 바닷가로 향했죠. 30분의 장노출로 구름과 별과 파도를 담았어요. 흐릿해진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한줄기 흰 선이 그어졌죠.
그 장면을 보고 장혜령 시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세계 속 존재 그 이미지의 근원”에 다가가는 듯하다고요. 시인이 써준 감상평을 읽는 일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듯한 기분이었죠.
그리고 시인의 말씀은 첼시에서 만났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 주었습니다. 로버트 만 갤러리에서 본 호주 사진가 머레이 프레데릭스의 전시 <Vanity>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들은 호주 아웃백에 있는 소금 호수 레이크 에어를 찍은 프로젝트예요. 프레데릭스는 십여 년에 걸쳐 호수를 둘러싼 변화무쌍한 풍경의 변화를 담았는데요. 제가 만났던 작품은 그중에서도 거울을 활용한 ‘미러’ 시리즈였습니다.
프레데릭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방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사위에 내려앉은 적막함이 숨 막힐 듯 잔잔한 인상을 그려내죠. 하늘에선 별과 구름이 흘러가는데 마치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그곳에 한 장의 거울이 있어요. 사각의 거울은 그 모든 고요를 일순간에 깨뜨리죠. 아주 작은 흠집 하나 없는 렌즈 알 같던 풍경의 표면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카메라의 프레임 안으로, 원래 그곳에 있을 수 없는, 바깥의 시간이 흘러들어오면서… (책에서 나머지를 확인하세요. ^^)
프레데릭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거울’이라는 사물을 다시 보고 싶었다고 해요. 거울은 흔히 허영과 욕망의 상징으로 그려지곤 하잖아요? 공주를 질투하던 계모의 거울처럼 이요. 그런데 작가는 ‘거울’은 그저 자신 앞의 순간을 비춰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거울이 욕망과 질투의 화신이 될지, 정반대로 순백 같은 순수의 상징이 될지는 우리가 무엇을 비춰주냐에 달린 거지요.
저는 사진 속 거울이 시인이 말했던 “이미지의 근원”에 다가가는 길처럼 느껴졌어요. 그곳으로 한 발짝만 발을 디디면 ‘태초’의 시간에 닿을 수 있을 듯했지요. 어쩌면 사진가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은 텐트를 거처 삼아 홀로 지내며 온몸으로 호수의 시간을 껴안던 그때 깨달았을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