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스며든 영혼을 만나다

존 시르 - <현상 트레이>

by 최다운 바위풀

<뉴욕, 사진, 갤러리>의 출간에 발맞추어 일화를 조금씩 풀어 봅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님은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의 손에 쥐인 연필은 그가 써 내려간 처절함 감정을 느꼈을까? 어쩌면 떨리는 현이 내뱉던 노래를 기억하진 않을까 하고요.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쓴 사물에 주인의 영혼이 깃든다는 설화 같은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소설가의 연필이 그와 비슷하진 않을까라는 상상을 한 거지요.



소설가에게 연필이 있다면 사진가에게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 손때 묻은 카메라일 수도 있고요. 혹은 다 해어진 가방일 수도 있지요. 그들은 사진가와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함께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자나 깨나 가슴에서 떼어놓지 않고 생의 모든 순간을 기록했을 수도 있지요. 그래요. 그것들이라면 분명 사진가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또 무엇이 사진가의 마음을 품고 있을까요?



혹시 현상 트레이를 아시나요? 필름 카메라를 써보셨다면 알겠지만 아날로그 사진은 촬영과 현상, 그리고 인화의 과정을 거치는데요. 현상 트레이는 필름에 빛을 통과시켜 노광한 인화지를 현상할 때 쓰는 장비입니다. 장비라고 했지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각 접시입니다. 여기에 약품을 붓고 인화지를 넣어서 화학 작용을 일으키지요.



이스트 빌리지의 엘리자베스 휴스턴 갤러리에서 만난 존 시르의 프로젝트는 바로 이 현상 트레이들을 찍은 것입니다. 안셀 애덤스, 샐리 만, 마이너 화이트와 애론 시스킨드처럼 전설과도 같은 사진가들이 사용했던 도구를 프레임에 담았죠.



시르가 찍은 트레이들 위로 마치 사진가들의 영혼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어요. 샐리 만의 트레이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애덤스의 트레이에선 요세미티의 웅장한 풍경이 보였지요. (시르의 트레이들은 책에서 만나보세요. ^^)



일 년, 이 년, 십 년… 이십 년. 사진가와 도구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깊어졌을 거예요. 그저 손에 익은 장비에 불과했을 트레이가 어느새 자신의 삶을 간직한 분신이 된 거죠.



현상 트레이라는 사물의 유형학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는 시르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원래 아날로그 인화 전문가로 오래 일을 했어요. 암실에서 무수한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최적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겠죠.



이처럼 아날로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한 시르였기에 다른 사진가들의 트레이도 찍을 수 있었을 거예요. 약품 막대에 부딪히고 인화지 집게에 긁히며 만들어진 상처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죠. 그 흔적 위에 그것들과 함께한 사진가들의 마음이 새겨져 있었어요.



시르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현상 트레이라는 도구를 찍은 것이 아니에요. 그의 작업은 희미해져 가는 아날로그 사진 시대의 유물을 기록한 것이며, 그들이 일궜던 영광에 바치는 헌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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