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운 바위풀 Oct 16. 2021

작은 좌절감을 배우는 아이

전업 아빠 육아 일기 #10.

금요일 오후 하교 시간이었습니다.


숙제를 안 해도 되는 날이고, 다음 날은 토요일이라 학교도 안 가고, 거기다 닌텐도도 하는 날이라 좋아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어제는 조금 이상했어요. 선생님과 인사하고 교문을 나서는 큰 아이의 얼굴이 조금 슬퍼 보이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나? 살짝 걱정을 하며 평소처럼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잘 있었니? 무슨 재미있는 일 있었어?"


"응, 우리 오늘 슬리데린이 이겼어."


"아, 이번 주 점수? 그래서 선생님이 뭐 주셨어?"




지난 9월 초,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종이쪽지를 보여 주더라고요.


"이게 뭐야?"


"응, 선생님이 이거 집에 붙여 놓으래. 나는 오늘 그리핀도르가 됐거든. 모자에서 뽑아서. 선생님이 잘하는 팀은 포인트도 주고, 선물도 주신대."


반 아이들을 해리 포터의 기숙사 이름을 붙인 그룹으로 나누고 작은 포상 규칙을 만든 것이었지요. 한창 크고 있는 열 살 아이들이 재미를 붙일 법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번 주는 아이가 있는 그룹이 이기질 못한 거죠. 하지만 그동안 이긴 적도, 진 적도 있었는데 어째서 오늘은 조금 더 슬퍼 보였을까요?


         "아, 좀 아까웠겠네. 다음에 그리핀도르가 잘해서 또 이기면 되지 않을까? 오늘은 선생님이 뭐 주셨는데?"


"응, 해리 포터 매직 완드 주셨어."


"아, 마법 막대기 같은 거?"


"응, 진짜 완드. 거기 이런 종이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가져왔어".


상표를 보니 제대로 된(??) 캐릭터 상품인가 보더라고요. 


"나도 가지고 싶었는데."


목소리에서 많이 아쉬워하는 마음이 묻어났습니다.


"다음에는 그리핀도르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이 다른 상품은 뭐 있대?"


"응, 선생님이 무슨 오르골 같은 거도 있대."


"와, 진짜 해리 포터 음악 나오는 거? 그것도 좋겠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집으로 걸어오던 어제 오후. 


열 살 아이는 또 한 번 이렇게 작은 좌절감을 겪고 세상을 배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커가는 거겠지요? 아이가 커가고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 늘 원하는 대로라면 좋을 텐데 사는 것이 어디 그럴 수 있을까요. 


아빠는 그저 아이가 세상을 만나면서 너무 많이 힘들지는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자그마한 힘이나마 될 수 있도록 서 있어 주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올 것이 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