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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운 바위풀 Oct 02. 2017

오빠 노릇, 큰 아이 노릇

아직도 한참 아기인데.

놀이터에서 동생과 함께 땀 뻘뻘 흘려가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큰 애를 바라보다가 문득 든 생각. '아... 우리 주안이도 아직 정말 아기구나, 아기...' 그런데 그런 아기에게 아빠는 늘 오빠 노릇만 요구해 왔으니 그 작은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제 아침 어린이집에선 큰 아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아빠, 우리 가족이 전부 미국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미국 어린이집에 와서 미국 말을 하고 울지 않을 수 있잖아."


아침마다 펑펑 우는 제 동생이 안쓰러웠던지 꺼낸 이야기지만, 내심에는 새로운 생활이 쉽지 않은 스스로를 위안하려는 마음도 보인다. 우는 동생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아빠에게 마음껏 자기감정을 쏟지는 못하지만 힘들긴 동생이나 너나 매한가지겠지.


"아빠, 오늘 놀다가 헌터랑 부딪쳐서 여기가 살짝 아팠는데 선생님한테 얘기는 못 했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하굣길에 들려주는 그날의 일상도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 그 속내가 어땠을까 하는 마음에 측은해진다. 정작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얘기하지만 그 마음이 정말 그러하겠는가. 아마 서울이었다면 이미 가서 선생님에게 얘기했을 텐데.


며칠 전엔 교실로 올라가며 손 흔드는 자기를 봤냐고 묻기에 동생을 챙기느라 미처 못 봤다니 살짝 서운한 기색이다. 그래서 바로 그다음 날부터는 큰 아이가 계단을 올라가 안 보일 때까지 동생과 함께 열심히 손 흔들며 인사를 해 주고 있다.


'더 많이 첫째 아이 편을 들어주고, 더 많이 기를 세워 주세요.' 둘째를 낳은 후에 질투가 많아진 첫째를 걱정할 때 참 많이 들었던 얘기다. '그래그래, 그렇게 해 줘야지'라고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 막상 돌아보면 이 어린 녀석에게 늘 오빠 노릇, 큰 아이 노릇만 요구만 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해진다.


미국에 온 지 이제 한 달 하고 일주일. 두 아이 모두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잘 적응하고 있지만, 특히 첫째 아이는 눈물보 둘째를 챙겨야 하는 아빠를 생각해 주며 혼자서 열심히 고군분투 중이다.


주안아, 아빠가 이젠 네 마음 조금 더 알게 되었어. 앞으론 한번 더 널 생각하고, 한번 더 널 바라봐 줄게. 그러다 보면 우리 또 같이 이 힘든 때를 지나갈 수 있지 않겠니... 


동생과 함께 하는 미끄럼틀 기차놀이. 동생은 기관사, 나는 손님. / NYC. / Sep. 2017. / iPhon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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