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친구들과 줄을 맞춰 교실로 걸어가는 둘째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어린이집을 나서면 어느새 시계는 9시를 향해 가고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몇 시간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간다.
몇몇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때우거나, 또는 가끔씩 카메라를 들고 나서 잠시간의 산책을 즐기고 나면 어느새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자, 신발 벗고, 양말 벗고. 잠바도 벗고. 손 먼저 씻어. 뛰지 말고.”
“내가 먼저 씻을 거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날아가 떨어지는 옷가지와 신발들을 주워 담고 가방에서 간식 도시락을 꺼내 정리하며 묻는다.
“간식 뭐 먹을래?”
“난 죠리퐁!”
“음, 난 내가 가서 보고 고를래!”
쉴 새 없이 재잘대는 두 입들을 위해 주전부리를 챙겨 주고 하루 두 편씩 빼놓지 않고 보는 만화를 틀어 준다. 그 사이에 다시 남은 짐들을 정리하며 잠시간 숨을 돌린다.
만화 시청이 끝나면 목욕 시간이다.
“자, 오늘은 누가 먼저 목욕이지?”
두 달쯤 전이었나, 서로 먼저 목욕하겠다고 크게 싸운 이후로는 아예 몇 달치의 목욕 순서를 적어 놓은 달력을 만들었다.
“아빠 몇 분 있다 올까?”
“5분!”
먼저 들어간 녀석이 욕조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동안 갈아입을 옷을 꺼내 놓고 밖에서 놀고 있는 나머지 녀석에게 신경을 써 주다 보면 이번엔 비누칠을 해주러 갈 시간이다.
“춥다,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
목욕이 끝나고 나면 깨 벗고 집안을 뛰어다니려는 녀석들을 이불속으로 밀어 넣고, 바르기 싫다고 징징대는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혀 주면 이젠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자, 오늘은 생선 구워 먹자.”
“에이, 난 싫은데.”
“난 좋아!”
워낙 각자의 취향이 명확하여 같은 의견이 나오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반대 의견을 낸 녀석은 살살 달래 주어야 한다.
“아빠가 내일은 다른 거 해 줄게.”
그렇게 저녁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정리의 시간이다. 그릇을 정리하여 식기 세척기를 돌리고, 세척기에 돌릴 수 없는 것들은 간단히 설거지를 마친다. 그동안 아이들은 내 옆에 와서 어슬렁 거리기도 하고 거실에서 각자의 놀 거리를 찾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큰 아이는 요즘 혼자서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작은 램프를 하나 더 달아 주었다. 덩달아 동생 녀석도 편안히 배 깔고 드러누워 자기만의 놀이를 한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간단한 간식을 꺼내 놓고 나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남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아 봐야 한 시간 남짓일까. 종일 같이 있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정작 많지 않다. 같이 책을 읽거나, 레고를 하거나, 또 다른 무언가를 하거나, 여하튼 그날그날 애들이 부르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8시가 되어 간다.
“자, 이제 치카치카 하자.”
“에이, 벌써?”
“난 싫어~”
시작부터 터져 나오는 반발을 무마하고 볼 일까지 보게 한 후에 침대에 눕고 나면... 그렇지,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오늘도 꽃게 이야기해 줘. 오늘은 꽃게가 어린이집에 가서 문어네 놀러 간 이야기!”
얼마 전 엄마가 처음 시작한 꽃게 이야기는 매일 밤 다양한 주제로 변주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면 자기 싫다고 칭얼대는 둘째를 달래며 조용히 누워 있는다.
십 분쯤 지났으려나. 아빠 손을 꼭 잡고 있던 첫째의 손을 살며시 놓아 봐도 반응이 없고, 팔 베개를 하고 있던 둘째의 머리를 조심히 들어 옮겨 놓아도 낑낑대지 않으면 모두 잠이 든 것이다.
거실로 나와 시계를 보니 아홉 시. 평소보다는 좀 늦게 잠들었구나.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하루다.
짝꿍은 회식이 있는 날이니 혼자 놀 거리를 좀 찾아본다. 양푼 그릇에 과자를 좀 담고, 내일은 어린이집 학예회가 있으니 음주는 자제해야 하는데... 그래도 벌써 음주를 안 한지 오일째이니 가볍게 와인 반 병 정도는 괜찮겠지.
주섬주섬 먹을거리를 챙기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전 산책 중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정리하고,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브레이킹 배드>의 마지막 시즌을 튼다. 명작 드라마이긴 한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 감정의 무게가 무거워 좀 보기 힘들긴 하다.
막 드라마를 틀려하는데 짝꿍이 들어왔다.
“어! 내 와인 잔도 준비해 줘!”
… 그러니까 아빠에게 일을 시키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2017년 12월 12일, 오지게 추웠던 하루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