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운 바위풀 Dec 14. 2017

다시 일상

12월의 어느 날...

친구들과 줄을 맞춰 교실로 걸어가는 둘째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어린이집을 나서면 어느새 시계는 9시를 향해 가고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몇 시간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간다.


몇몇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때우거나, 또는 가끔씩 카메라를 들고 나서 잠시간의 산책을 즐기고 나면 어느새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자, 신발 벗고, 양말 벗고. 잠바도 벗고. 손 먼저 씻어. 뛰지 말고.”

“내가 먼저 씻을 거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날아가 떨어지는 옷가지와 신발들을 주워 담고 가방에서 간식 도시락을 꺼내 정리하며 묻는다.


“간식 뭐 먹을래?”

“난 죠리퐁!”

“음, 난 내가 가서 보고 고를래!”


쉴 새 없이 재잘대는 두 입들을 위해 주전부리를 챙겨 주고 하루 두 편씩 빼놓지 않고 보는 만화를 틀어 준다. 그 사이에 다시 남은 짐들을 정리하며 잠시간 숨을 돌린다.


만화 시청이 끝나면 목욕 시간이다. 


“자, 오늘은 누가 먼저 목욕이지?”


두 달쯤 전이었나, 서로 먼저 목욕하겠다고 크게 싸운 이후로는 아예 몇 달치의 목욕 순서를 적어 놓은 달력을 만들었다. 


목욕 순서 달력. 중간중간,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자기 생일을 잘 표시해 놓았다.


“아빠 몇 분 있다 올까?”

“5분!”


먼저 들어간 녀석이 욕조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동안 갈아입을 옷을 꺼내 놓고 밖에서 놀고 있는 나머지 녀석에게 신경을 써 주다 보면 이번엔 비누칠을 해주러 갈 시간이다.


“춥다,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


목욕이 끝나고 나면 깨 벗고 집안을 뛰어다니려는 녀석들을 이불속으로 밀어 넣고, 바르기 싫다고 징징대는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혀 주면 이젠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자, 오늘은 생선 구워 먹자.”

“에이, 난 싫은데.”

“난 좋아!”


워낙 각자의 취향이 명확하여 같은 의견이 나오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반대 의견을 낸 녀석은 살살 달래 주어야 한다.


“아빠가 내일은 다른 거 해 줄게.”


그렇게 저녁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정리의 시간이다. 그릇을 정리하여 식기 세척기를 돌리고, 세척기에 돌릴 수 없는 것들은 간단히 설거지를 마친다. 그동안 아이들은 내 옆에 와서 어슬렁 거리기도 하고 거실에서 각자의 놀 거리를 찾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편안히 배 깔고 드러 누워 보내는 저녁의 일상.


큰 아이는 요즘 혼자서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작은 램프를 하나 더 달아 주었다. 덩달아 동생 녀석도 편안히 배 깔고 드러누워 자기만의 놀이를 한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간단한 간식을 꺼내 놓고 나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남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아 봐야 한 시간 남짓일까. 종일 같이 있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정작 많지 않다. 같이 책을 읽거나, 레고를 하거나, 또 다른 무언가를 하거나, 여하튼 그날그날 애들이 부르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8시가 되어 간다.


“자, 이제 치카치카 하자.”

“에이, 벌써?”

“난 싫어~”


시작부터 터져 나오는 반발을 무마하고 볼 일까지 보게 한 후에 침대에 눕고 나면... 그렇지,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오늘도 꽃게 이야기해 줘. 오늘은 꽃게가 어린이집에 가서 문어네 놀러 간 이야기!”


얼마 전 엄마가 처음 시작한 꽃게 이야기는 매일 밤 다양한 주제로 변주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면 자기 싫다고 칭얼대는 둘째를 달래며 조용히 누워 있는다.


십 분쯤 지났으려나. 아빠 손을 꼭 잡고 있던 첫째의 손을 살며시 놓아 봐도 반응이 없고, 팔 베개를 하고 있던 둘째의 머리를 조심히 들어 옮겨 놓아도 낑낑대지 않으면 모두 잠이 든 것이다.


거실로 나와 시계를 보니 아홉 시. 평소보다는 좀 늦게 잠들었구나.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하루다.


짝꿍은 회식이 있는 날이니 혼자 놀 거리를 좀 찾아본다. 양푼 그릇에 과자를 좀 담고, 내일은 어린이집 학예회가 있으니 음주는 자제해야 하는데... 그래도 벌써 음주를 안 한지 오일째이니 가볍게 와인 반 병 정도는 괜찮겠지.


주섬주섬 먹을거리를 챙기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전 산책 중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정리하고,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브레이킹 배드>의 마지막 시즌을 튼다. 명작 드라마이긴 한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 감정의 무게가 무거워 좀 보기 힘들긴 하다.


막 드라마를 틀려하는데 짝꿍이 들어왔다.


“어! 내 와인 잔도 준비해 줘!”


… 그러니까 아빠에게 일을 시키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2017년 12월 12일, 오지게 추웠던 하루의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전업 육아, 전일제 아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