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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운 바위풀 Jan 24. 2018

아이들의 기억

Plan B-1의 추억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 30분, 그리고 2시 45분.

작은 아이와 큰 아이 어린이집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픽업을 갈 때 무엇보다 중요한 준비물은 집에까지 오는 동안 그 조그만 입들을 달래 줄 간식거리이다. 특히 작은 아이는 매일매일의 간식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갖는지, 아빠가 혹여나 실수로 간식을 안 들고 오는 날이면 큰 꾸지람을 하기 일쑤다.

지난 목요일에는 오랜만에 네 개의 막대 사탕을 골라 픽업을 갔다. (막대 사탕류의 고급(??) 과자는 드물게 주는 간식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상당한 레어템이다.) 수업이 먼저 끝나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 오빠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상인 작은 아이는 고심하여 고른 포도맛 사탕을 오물거리며 먹었다.

드디어 반 친구들과 함께 줄을 맞춰 나온 큰 아이도 선생님에게 인사한 후 아빠 손에 들린 사탕을 보고 고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중 하나를 집어 든 큰 아이가 말을 했다.

“아빠, 이 사탕. 우리 거기 놀러 갔을 때 삼촌이 준 건데. 난 이 사탕이 제일 좋아.”

“응? 우리 어디 놀러 갔을 때?”

“거기 있잖아. 아빠랑 일요일 저녁에 책 들고 놀러 가면 삼촌이 나는 이것 줬었잖아.”

큰 아이가 네 살일 때 아홉 달 정도 살았던 효자동 골목길 한 구석에 Plan B-1이라는 병맥주 집이 있었다. 점심은 장년 부부가 하는 칼국수집, 저녁은 젊은 삼촌이 하는 병맥주집으로 이부제 운영을 하던 특이한 곳이었는데 동네 골목길 굉장히 외진 구석이라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사실 내가 큰 아이와 갔던 몇 번 동안 다른 손님이 있던 걸 한 번도 못 봤다.) 제법 이것저것의 수입 병맥주를 구색을 갖추어 놓고 팔고 있었다.

당시 살던 집에서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고, 가게가 조용하기도 했던지라 시간 여유가 있는 평일이나 일요일 저녁이면 큰 아이와 둘이서 종종 들르곤 했었다. 아이는 항상 자기 책 몇 권을 들고 아빠를 따라나섰는데, 그곳으로 산책 가길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 삼촌이 주는 간식거리였다. 삼촌이 늘 손에 쥐어 주던 막대 사탕 두 개와 아빠 안주인데 항상 쟤가 다 먹던 프레첼, 강냉이 등등의 과자 주전부리. 그리고 그때그때 아빠의 컨디션에 따라 맥주 두 병 또는 세 병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길.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네 살 때의 일이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간 후에는 딱 한 번 더 갔었기 때문에 제법 오래된 기억인데도 불쑥 그곳을 떠올려 내는 아이가 새삼스레 놀라웠다.

가끔씩 느끼지만 아이들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단단하여 저 어릴 때 추억을 말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놀랄 때가 있다. 세 살 때 프라하의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저 혼자 내리지 못해 다른 층에 내렸던 기억이나 동생을 괴롭히는 저를 엄마가 크게 혼내었던 기억을 아직도 가끔 떠 올리며 얘기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올해로 한국 나이 일곱 살. 아마 앞으로 자라면서 어렸을 때의 추억은 점점 더 희미해질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 보면 보통 다섯, 여섯 살 전후가 성인이 되었을 때 기억할 수 있는 한계점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왠지 조금은 아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저 마음속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을 생각하면 한 순간, 한 순간을 조금 더 소중히 남겨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렷이 기억나고 보이진 않아도 제 가슴속에 아련한 따스함으로 남을 수 있다면 좋을 테니까.

덧. 오빠가 이야기할 때 “나도! 나도 알아!” 하면서 자기도 안다고 했다가  “넌 안 가 봤잖아!” 하면서 구박받은 둘째 이야기는 안 비밀. 이제 둘째 녀석도 점점 자기만의 추억을 쌓아 가겠지요. :)


Plan B-1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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