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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운 바위풀 Jan 31. 2018

잔병치레

쑥쑥 커 가는 아이들

월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꼼지락거리며 아빠에게 다가오는 둘째에게 말을 꺼냈다.


"윤이야, 오늘은 어린이집 가지 말고 아빠랑 집에서 놀자."


"왜에에? 싫어~"


질풍노도의 인생 사 년차를 보내고 있는 둘째는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일단 싫단다. 주말 동안 살짝씩 미열을 보이더니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을 때 밭은기침을 계속하는 것이 아무래도 전조가 좋지 않아 어린이집에 가지 말고 아빠와 하루 쉬자고 얘기한 참이었다.


싫어부터 외쳤지만 곧 상황 파악이 된 아이는 집에서 무얼 할지 고민에 빠져 들고, 아프다고 결석한다는 동생이 내심 부럽기만 한 큰 아이는 마지못해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둘째는 오늘부터 큰 무리 없이 어린이집에 갔다.)


양 손 가득히 - 정확히는 한 카트 가득, 이 아니라 넘치도록 - 짐을 들고 아이들과 이곳에 온 지도 다섯 달을 꽉 채웠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혼돈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생활 패턴도 생겼고 적절히 내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것을 할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특히 두 아이들이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여 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차도 정반대에 말까지 다른 곳에 오게 된 것이 이래저래 쉽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린이집에서 아빠와 헤어질 때마다 눈물, 콧물을 빼던 둘째 아이도 이젠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눈웃음을 주고받고 애교를 부릴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고마운 건 지난 몇 달 동안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튼튼하게 지내 준 것이다. 처음 도착하여 예방 주사를 맞은 큰 아이가 하루 정도 열이 올랐던 것이 한 번, 그리고 둘째가 살짝 열이 올라 집에서 아빠와 쉬었던 것이 두, 세 번. 그 외에는 병원을 간 적도, 특별히 약을 먹은 적도 없이 둘 다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보험이고 뭐고 다 있다 해도 역시 낯선 곳에서 병원을 가는 일이 아이들, 어른들 모두에게 진이 빠지는 일이라 생각하면 더욱더 아이들이 고맙다.


가까이 지내다 보면 오히려 잘 모른다고 하지만 가끔씩 느껴지는 아이들의 성장은 깜짝깜짝 놀랄 정도이다. 처음 왔을 때 화장실 전등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았던 둘째는 이제 까치발을 하고 불을 켜고 끌 수 있게 되었고, 첫째 아이는 어느새 엄마의 가슴 근처까지 키가 자랐다.


요즘 한국은 절정의 한파를 기록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다행히 이곳의 겨울은 생각보다는 춥지 않다. 영하 2, 3도로만 내려가도 춥다고 중무장을 하고 나가는 생활이니 서울에서 들으면 우습다고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조금만 추워도 아이들 건강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어서 이 겨울만 무사히 지나면 아이들 건강 걱정도 좀 줄고, 더 많이 밖에 나가 뛰어놀며 체력도 기를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나면 순식간에 봄, 여름, 그리고 곧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부디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물론 아빠 말도 조금 더 잘 듣는다면 더 좋고...)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노는 것이 역시 제일. / Jan. 2018. / NYC. / iPhon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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