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낭만적인 사랑 고백도, 절절한 이별도 없는 사랑 이야기다.
말로 표현하는 조제의 사랑
다리에 장애가 있는 조제는 쓰네오 덕분에 따뜻함을 느낀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할머니, 옆집 변태 아저씨와 다르게 쓰네오는 산책을 가자고 제안하고, 원하는 책을 구해다 준다. 조제를 등에 업고 밖으로 나가 세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조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깜깜한 바다 밑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던 조제에게 쓰네오가 다가와 옅은 빛을 비춰준 것이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쓰네오에 애정을 느끼면서 이를 계속 말로 표현한다. 좋아한다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쓰네오의 사랑
쓰네오의 사랑은 어쩌면 동정, 측은지심과 한 데 엮인, 복잡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헌책방에 가서 조제가 원하는 책을 찾아주고 낮에 산책도 해주고 집도 수리해주고 걱정이 되어 한달음에 달려간다. 옆에 계속 있어 달라는 조제의 말에는 일 년이 넘는 기간을 함께하며 모든 요청을 묵묵히 해준다. 그렇게 모든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쓰네오다.
하지만 끝내, 조제에게 좋아한다는 사랑 고백은 하지 않는다. 남녀의 로맨스가 있으면, 응당 절절한 사랑 고백이 나오기 마련인데, <조제>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왜일까.
조제는 쓰네오의 통해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었지만, 쓰네오는 아니었다. 조제는 쓰네오 덕분에 처음으로 호랑이도, 바다도 봤지만 쓰네오는 조제의 다리가 되어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점점 지쳐갔다. 그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났던 마지막 여행. 머지않은 헤어짐을 인지하는 조제가 여관에서 건네는 말들은 쓰네오가 자신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쓰네오는 조제에게 받은 게 없다는 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잠에 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현실적인 연애를 담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넓게 보면 사랑이 성립하는 조건을 다룬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연애를 할 때, 상대 덕분에 채워지는 무언가에 감동을 느끼곤 한다. 가령 잊고 있었던, 처음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든지 혹은 내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해준다든지 따위의 '상호보완'이 사랑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제와 쓰네오의 경우 일방적인 채워줌에 가까웠다. 그래서 쓰네오는 조제와의 헤어짐을 자신의 '도망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조제와의 관계에서 도망쳐서 담백하게 끝이 난 것이라고.
끝내 쓰네오는 ‘좋아해’라고 답을 할 수 없었고, 대신 홀로 흘리는 눈물로 관계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