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다가도 계속 모르겠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 기쁜 일도 함께 한다는 것. 계속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벌새>의 주인공, 은희의 삶이야 말로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복잡해 보인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 학벌주의 속에 살면서 친구도 몇 없어 보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처 투성이의 일들은 답도 없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래도 은희의 삶이 살만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위의 문장처럼 세상이 참 이상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살아보라며 나쁜 일과 기쁜 일은 함께 일어났다. 지환이가 떠났을 때는 유리가 찾아왔고, 오빠한테 폭력을 당하고 지숙과 틀어졌을 때는 영지 선생님이 옆에 있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에, 언니가 무사해서 다행이었지만, 그 사고로 영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참담할 때는 엄마의 전이 있었다.
또, 누군가와 무언가를 계속 나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술을 통보받은 날 아빠가 흘린 눈물, 상처 위 연고 같은 영지 선생님의 차, 솔직한 감정을 전한 지숙의 사과 따위가 은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이끌었다. 그래서 오랜 상처가 계속 덧나는 것처럼 따갑게 아프고 슬펐지만 어딘가 따뜻해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특히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부정과 긍정은 늘 함께였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과 나눈 무언가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과거의 관계에 후회가, 분노가 물 밀듯이 닥쳐오는 순간에는 지금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자고 되뇐다. 은희가 영지 선생님에게 떡과 책을 주려고 했던 마음도, 유리를 받아 주었던 마음도, 아픈 나에게 존재하는 지금의 소중한 관계를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죽음, 사랑, 일탈, 갈등, 우정, 상실, 분노 등 대부분의 감정을 처음 겪는 은희에게 인생을 조금 더 산 영지 선생님이 건네는 위로는, 앞으로의 삶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일러주는 듯하다. 남을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 폭력을 가한다면 절대 참지 말고 맞서라고, 스스로가 싫어질 때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선생님도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맞는 삶인지 모르겠지만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더라는 것들. 은희가 영지 선생님의 편지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