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우리들>은 또래보다 조금 더 작고 마른 주인공, ‘이선’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시작한다. 바삐 움직이는 주변 아이들의 바스트가 잡히는 동안 카메라는 꾸준히 선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이 카메라의 시선처럼, 이 영화를 통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먼저 동성의 우정을 다룬 또 다른 영화인 <벌새> 그리고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통해 영화 <우리들>을 짚어보려 한다.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들>에서는 선이와 지아의 만남이 그러했다. 선이를 좋아하지 않는 보라는 자신의 생일파티를 하던 날, 선이를 초대하는 척 교실 청소를 부탁한다. (그러면서 거짓 파티 주소를 알려 준다.) 홀로 남아 청소를 하던 선이는 우연히 자신의 반으로 전학을 온 지아를 만나게 되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분명 그 방학식 날은 보라가 선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청소를 시킨, 나쁜 일이 닥친 날이었지만 지아를 만나게 된 기쁜 날이기도 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 두 친구는 깊어진 갈등을 “나도 네가 미웠어.”라는 솔직한 고백을 통해 풀어낸다. 그 말은 과연 ‘우정’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잘 설명하는 말이었다. ‘우정’은 따뜻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깊어진 우정만큼 복잡한 본성과 감정이 뒤얽힌 단어가 없다. 상대가 미울 만큼.
선이와 지아의 우정도 그랬다. 방학 내내 둘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며 속내를 나누기도 했지만, 점점 서로가 가진 것을 보며 스스로의 결핍을 느끼기 시작한다. 선에게는 ‘부’가, 그리고 지아에게는 ‘엄마’가 그랬다. 감정은 속절없이 우정에 금을 만들었다. 그 금은 서로의 행동에 대한 서운함과 왠지 모를 거리감으로 조금씩 깊고, 길어졌다.
그리고 결국 각자의 방어기제가 날카롭게 서로를 향하게 된 개학 이후의 학교 생활. 보라 패거리와 얽히면서 둘은 계속해서 서로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상처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을 때쯤, 선이는 동생 웅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선: 너 자꾸 친구한테 그렇게 맞기만 할래? 걔랑 놀지 말랬지!
웅: 아냐~ 이번엔 나도 때렸어. 또 때리길래 내가 또 때리고 걔가 또 때렸어.
선: 그래서?
웅: 그래서.. 같이 놀았지!
선: 같이 놀았다고? 왜! 그럼 너도 또 때렸어야지!
웅: 음.. 그럼 언제 놀아? 때리기만 하면 언제 노냐고.
다음날, 나란히 서게 된 선과 진아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한동안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진심과 고백의 말. ‘나도 네가 미웠어.’ 화해와 고백의 방법에는 꼭 언어만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 엔딩이었다.
우리는 크나 작으나 사람들을 사귀며 각자만의 이야기로 관계를 만들어간다. <우리들>, <벌새>,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모두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각각이 우정을 나누는 방법이 달랐고, <우리들>은 특히나 어린아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였다. 좀 더 정확하고 순수한 대화의 형식이 있었고, 어른을 배려하는 아이만의 마음과 시선이 있었으며, 관계 개선을 위한 과감한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어른이 된 이후 잊어버리고 말았던, 어린 시절의 행동과 생각 방식을 다시금 마주하게 해 준 영화라서.
고유의 문제를 온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하는 멋진 주체가 아이들임을. 애꿎은 복수심으로 하나 더 갚아주는 것보다, ‘함께함’에 무게를 둘 수 있는 대인배가 아이들임을. 선이와 진아의 우정을 통해 이해하고 알 수 있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