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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능 Mar 10. 2024

"그림 같다."

17세기 네덜란드

아내와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우린 밥을 먹다가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그리고는 항공편, 숙박시설 등을 알아보고, 1년 치 달력을 훑어보며 언제쯤 휴가를 갈 수 있을지, 또 여행 경비는 어떻게 모아야 할지 등 계획을 세우다 잠에 들기도 한다.


과거 여행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길 때도 있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오감(五感)은 어느새 아내와 나를 그때의 시간으로 데려다준다.

다양한 경험과 탐험, 새로운 장소와 문화, 그리고 낯선 이들이 주는 설레임.

이따금씩 미술관에 들러 거장들의 작품 앞에 서서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손길과 생각.

그리고 흐르는 역사가 만들어낸 그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

디지털 신호들에 불과한 사진들은 별도의 변환 과정도 없이, 지난날의 다섯 가지 아날로그 감각을 깨어나게 한다.


이과생 아내,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왼쪽), 스페인 마요르카의 작은 마을, 발데모사(오른쪽)



찰칵.

생각해 보면, 감동의 순간에는 대부분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함께였다.

이과생 아내 또한 그러한 멋들어진 자연을 좋아한다.

그리고 절경 앞에 선 아내 가끔 내가 꽤나 좋아하는 알쏭달쏭한 표현을 쓴다.


"그림 같다."

아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앞에 두고 종종 '그림'같다고 말한다.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에 갔을 때도, 스페인 마요르카의 작은 마을인 발데모사에 갔을 때도 그랬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 대체 무슨 그림을 말하는 걸까?"

엉뚱한 생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림 같다'는 말은 굉장히 이상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며 구체적인 그림을 떠올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법은 대게 직관적이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의 빨간 입술을 보며 "앵두 같다."라고 말한다면, 듣는 이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앵두의 이미지 보편적으로 공통된 형태와 색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 같음'은 어떠한가?

'그림'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우리에겐 공통된 '그림'이 없으며, 아무도 매번 구체적인 그림을 떠올리며 "그림 같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같다는 말의 의미가 너무나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는 앵두가 빨간색을 품고 있듯, 여기서 '그림'은 저마다 품고 있는 개념적 아름다움을 전하는 훌륭한 매개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 우거진 숲을 보며 "와~ 클로드 로랭의 그림 같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명확한 것처럼 보이는 이 표현은 오히려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띄울 뿐이다.


여기서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추상적인 비유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미술사에서 그림 같다는 의미인 'Picturesque(픽쳐레스크)'는 후기 르네상스의 전기 작가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Picturesque'는 당시 주류였던 고전주의에 반하는 '비고전주의'를 뜻하는 단어였다.

그림이 개념적 아름다움의 매개체가 되기 전,  누군가 그림 같다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던 순간에는 구체적인 작품도, 그리고 실제 장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짐작하건대 답은 이곳에 있다.

바로 17세기 네덜란드이다.




<Still Life with a skull and a writing quill> Pieter Claesz,1628 (출처 en.wikipedia.org)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미술이 진행되던 와중에도 네덜란드 화가들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작품처럼 그들은 다채로운 사물을 주제로 삼았으며, 이탈리아 거장들이 중요시했던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신성한 주제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이러한 태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덜란드에서는 신교가 점차 우세해졌으며 이에 따라 종교화, 그리고 자칫 우상 숭배처럼 보일 여지가 있는 초상화의 인기가 더 시들해졌다.


종교화, 초상화를 의뢰할 후원자들이 줄어들자 그림 제작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듯, 일부 화가들은 먼저 그림을 그려놓고 팔기 시작했다.

이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거장들이 의뢰인을 상대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대중들을 상대해야 했다.


화가들은 하나둘씩 점포에 그림을 진열해 놓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림은 하나의 '상품'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에 따 비즈니스 곁들여졌다.

점포의 위치부터 작품의 가격, 영업, 등 작품 이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났고 이러한 수고를 덜고 싶었던 화가들은 중간 상인, 즉 화상을 찾아가기도 했다.


초기에 그들 전쟁화를 비롯하여 풍속화,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 등 여러 종류의 그림을 전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들 중 유독 잘 팔리는 그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자신의 전쟁화만 잘 팔리는 현상을 목격한 화가가 한 명 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더 이상 풍경화나 정물화 등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전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전쟁화에 열중했고 더욱이 그가 전쟁화에 집중하자 작품은 더 많이 팔려나갔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대중들은 분야 별로 유명한 화가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는 화가들로 하여금 저마다 전문성을 가지게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라파엘로보다도 뛰어나다고 부하며 네덜란드 미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찾던 순간은 이 시기 즈음일 것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Het lijkt een schilderij(그림 같다)."

그는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서 '그림'을 떠올렸다.




- Simon de Vlieger (1601~1653)


지몬 데 블리헤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이다.

그는 로테르담, 델프트, 암스테르담 등 도시를 옮겨 다니며 주로 바다를 남겼다.

아래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가 한동안 서있던 1600년대 네덜란드가 온전히 느껴지는 듯하다.

그에게 있어서는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이 사용했던 극적인 구도, 강렬한 명암 등 시선을 끄는 요소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화가는 단순히 눈앞의 광경을 매우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저 그의 세상, 그 일부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이만큼 경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Ship in Distress off a Rocky Coast> Simon de Vlieger (출처 en.wikipedia.org)
<Coastal Scene> Simon de Vlieger (출처 en.wikipedia.org)
<A calm sea> Simon de Vlieger (출처 en.wikipedia.org)


-Jan van Goyen (1596~1656)


얀 반 호이엔 또한 비슷한 시기의 풍경화가였다.

그는 헤이그에서 활동하며 소박한 마을 정경과 들판 등을 즐겨 그렸다.

그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놀랍도록 생생하다.

작품을 보면 마치 그가 현장에 있던 흙, 물, 공기를 그대로 뽑아내 캔버스에 붙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A windmill by a river> Jan van Goyen, 1642 (출처 en.wikipedia.org)
<Panorama landscape with a view of Arnhem> Jan van Goyen, 1646 (출처 en.wikipedia.org)
<Landscape with a Rainbow> Jan van Goyen (출처 en.wikipedia.org)


작품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1889 (출처 artsandculture.google.com)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최고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있던 당시 고흐가 얀 반 호이엔의 영향을 받았다는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무렵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창문을 통해 나는 반 호이엔의 밀밭을 볼 수 있다."

고흐 또한 창밖의 풍경을 보며 "그림 같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Jacob van Ruisdael (1628~1682)


야곱 반 루이스달은 검고 어두컴컴한 구름, 어두워지는 저녁 햇살, 흐르는 개울을 그리는 전문가였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루이스달에 대해 아래와 같이 썼다.

"클로드 로랭이 이탈리아 풍경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 화가였듯이 그는 북유럽 풍경의 시정을 발견해 낸 화가였다. 그 이전의 어떤 미술가도 자연 속에 반영되는 자기 자신의 정서와 기분을 루이스달만큼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사람은 없었다."

그가 스무 살 무렵 그린 나무들은 수액이 흐르고 있는 것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말년에 그린 풍경은 성숙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Dune landscape> Jacob van Ruisdael,1646 (출처 en.wikipedia.org)
<Dunes by the sea> Jacob van Ruisdael,1648 (출처 en.wikipedia.org)
<The windmill at Wijk bij Duurstede> Jacob van Ruisdael, 1670 (출처 en.wikipedia.org)


-Jan Havickszoon Steen (1626~1679)


얀 스테인은 평민들의 유쾌한 생활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는 유쾌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전문가였으며, 그의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차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작품 속 과거의 등장인물들은 오늘의 우리를, 또한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The dancing couple> Jan Steen,1663 (출처 en.wikipedia.org)
<Rhetoricians at window> Jan steen (출처 en.wikipedia.org)


-Jan Vermeer van Delft (1632~1675)


베르메르는 일생동안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작품 중에는 거창한 주제를 다룬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순박한 인물들과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질감, 색채, 형태들은 과거 르네상스 거장들을 능가할 정도로 치밀하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The milkmaid> Jan Vermeer van Delft (출처 en.wikipedia.org)
<The allegory of painting> Jan Vermeer van Delft (출처 en.wikipedia.org)
<Girl with a pearl earring> Jan Vermeer van Delft,1665 (출처 en.wikipedia.org)


이처럼 네덜란드 화가들은 일상 속에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는 이탈리아의 미술, 즉 신화나 기독교의 이야기를 소실점과 같은 과학적 원리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거나, 현장감 있고 극적으로 그리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 결과,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들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바다를 보며 '지몬 데 블리헤르'를 떠올렸지만, 아무도 바다를 보며 '카라바조'나, '마사초'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퇴근 후 컴퓨터 책상 앞에서 밤이 늦도록 앉아있는 나에게 가끔씩 아내가 와서 묻는다.

미술사를 왜 보는 건지, 무슨 도움이 되는지 말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무엇에 이끌려서 미술사를 보고, 이것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에게 이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언젠가 당신이 잊지 못할 한 장면을 아름다운 그림에 비유했듯,
우리들의 작품은 당신의 인생에 '그림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 준 답니다."

이들의 작품을 기억해 두자. 언젠가 '그림 같은' 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누군가의 작품이 떠오를 때, 그림 같다는 그 흔한 말은 비로소 특별한 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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