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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능 Mar 03. 2024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술 작품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가 누구일까.

이와 같은 질문에는 선뜻 답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가 누군지 묻는다면, 답은 '파블로 피카소'일 것이다.

피카소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더 부지런했다.

약 80년간 화가로서 활동하며, 30,000~50,000 점의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 대략 계산해 봐도 그가 하루에 한 개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이런 그의 작품을 하나당 10억이라고 가정 시 총합이 30~50조 정도인데, 이는 인류 역사상 개인 창출해 낸 경제적 가치 중 단연 으뜸일 것이다.


<'시녀들' 오마주 작품들> 파블로 피카소, 1957 (출처 museupicassobcn.cat)


일흔을 훌쩍 넘어 모든 부와 명성을 거느렸던 피카소가 몰두했던 작업이 하나 있었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한 일이었다.

그는 위 그림과 같이 <시녀들> 속 인물, 구도, 등을 분석하며 자신의 입체주의 미술과 접목시켜 무려 58점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피카소는 왜 이 작품에 몰두했던 걸까.


왼쪽 <시녀들> 살바도르 달리, 오른쪽 <카를로스 4세의 가족> 프란시스코 고야


사실 피카소 이외에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영감을 받은 화가들이 있다.

초현실주의 대표적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낭만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들이다.

이들 역시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위 그림과 같은 자신들의 작품에서 이를 내비침으로써 <시녀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대체 무슨 작품이길래?"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85년 영국의 잡지사 '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서 비평가들과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었다.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클로드 모네, 빈센트 고흐, 파블로 피카소 등의 작품이 선정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상을 빗나갔다.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꼽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아내가 말했다.


"응. 나도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해."

"왜?"

"내가 자기한테 화가의 인생이나 시대적 배경들에 대해 얘기해 주잖아? 미술 작품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기 좋으니까. 근데 <시녀들>은 작품 자체로써도 많은 것들을 차고 넘치도록 감상할 수 있거든. 작품을 해석하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날지도 몰라."

"벨라스케스가 누군데...?"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렸을 때부터 회화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0살을 조금 넘겼을 무렵, 그는 스승 프란시스코 파체코로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왼쪽 <세비야의 물장수>, 1620 / 오른쪽 <점심>, 1618 ,벨라스케스 (출처 es.wikipedia.org)


그의 초기작을 보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바로크 미술의 개화를 알렸던 '카라바조'이다.

벨라스케스 작품 속에도 바로크 미술의 특징들이 녹아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렬한 명암 대비와 세속적인 인물들, 역동적인 표현들을 볼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초기작을 보면 그가 분명 준비된 화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기회를 맞게 된다.

스물네 살 무렵 그가 국왕 펠리페 4세의 임명 하에 궁정화가가 된 것이다.


왼쪽부터 펠리페 4세, 후안 데 파레하(노예), 세바스티안 데 모라(광대)의 초상화


이후 벨라스케스는 위 그림과 같이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펠리페 4세를 비롯하여 궁정 안에 있던 왕족들, 광대, 시녀, 심지어는 그의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도 남아있다.

그가 그린 초상화의 특징은 인물을 신분이나 직위와는 관계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데 있다.


마르가리타 공주 초상화

이런 사실적인 그의 초상화는 역사적 사실의 증거로 쓰이기도 한다.

펠리페 4세가 속한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속된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병에 시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벨라스케스의 초상화에서 마르가리타 공주의 외모가 병으로 인해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 이노센트 10세 초상>, 벨라스케스, 1650 <출처 es.wikipedia.org)


벨라스케스가 또 하나의 전환점을 겪게 된 건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루벤스'와의 만남이었다.

루벤스는 단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이탈리아 미술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허락을 얻어 궁정화가로서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후 벨라스케스의 표현 방식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의 변화된 화풍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위 그림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이다.

알라 프리마(Alla Prima)라고도 부르는 이 기법은, 대상의 형태를 정확히 데생하고 정성스럽게 색칠하는 대신 순간적인 감각으로 물감을 바르는 기법이다.


또한 위 그림은 전통적인 초상화와 많이 다르다.

교황은 당시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스케스는 교황을 우아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도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품을 보며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교황이 다소 신경질적이고 교활한 모습으로 벨라스케스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엄청 대담한데?"
아내가 말했다.


"그치? 그래서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은 역대 초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해."

"그럴 만도 하네."

"그리고 그의 알라 프리마 기법은 나중에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어. 시대적으로 인상주의가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영향을 끼친 거지."

"그렇구나."

"그리고 이런 벨라스케스의 모든 노하우가 담긴 그림이 그가 말년에 완성한 <시녀들>이라고 보면 돼."


<시녀들> 벨라스케스, 1656 (출처 es.wikipedia.org)


"이 그림이 바로 그 작품이야."

"등장인물이 되게 많네?"

"맞아. 등장인물도 많지만 관람자를 헷갈리게 하는 여러 요소들도 있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해석하고자 하는 거야. 자긴 벨라스케스가 뭘 그린 것 같아?"

"작품명이 <시녀들>이라며. 중앙에 있는 공주랑 시녀들을 그린 거 아닐까?"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주와 시녀들을 비추고 있다.


"응. 마르가리타 공주를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야. 위 그림처럼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왜소증을 앓던 시중들과 강아지를 비추고 있거든. 보통 화가들이 빛을 이용해서 주제를 부각시켰기 때문에 공주의 초상화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그럼 다른 해석은 뭔데?"

"지금부터 조금 머리가 아픈 부분인데, <시녀들>에는 원래 회화 작품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뭔 것 같아?"

"글쎄... 뭐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바로 '거울'이야."


회화 작품 속 '거울'은 사실 일종의 방송 사고와 같다.

그 이유는 위 그림과 같다.

작품 속에 거울이 등장하게 되면, 거울이 화가와 그의 캔버스, 그리고 배경을 비추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화가가 캔버스에 담고자 했던 주제를 흐릴 수 있으며, 관람자의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거울은 회화 작품 속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러 거울을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약혼> 얀 반 에이크, 1434 (출처 en.wikipedia.org)


앞 장에서 살펴봤던 얀 반 에이크의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약혼>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꽤나 의도적인 위치인 중앙에 원형 거울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울 속에는 부부의 뒷모습과 화가, 그의 조수가 등장한다.

얀 반 에이크는 신성한 약혼의 증인임을 나타내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다.

그는 거울 속에 자신을 등장시켰고, "얀 반 에이크가 입회했노라"와 같은 자신의 서명을 통해 거울을 그려 넣은 이유를 명확히 했다.

(참고 : 9화 <북유럽 르네상스 : 붓 터치에 담긴 비밀> https://brunch.co.kr/@bb02810c2cd7432/10 )


국왕 부부가 보이는 <시녀들> 속 거울, 그리고 붓을 들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벨라스케스.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경우, 조금 얘기가 다르다.

작품 속 거울에는 화가가 아닌 '국왕 부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만약 <시녀들>이 공주의 초상화를 그린 그림이라면 벨라스케스가 거울 속에 비췄어야 한다.

그러나 뜬금없게도 거울 속에는, 국왕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더욱이, 벨라스케스는 작품 속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것을 또 하나 그려 넣었다.

바로 '화가'이다.

화가인 벨라스케스는 위 그림처럼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서있는 모습으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이로 인해, 그림의 주인공과 화가의 물리적 위치가 바뀌어버렸다.


결국 이러한 해석도 가능해진다.

'벨라스케스는 국왕 부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 소실점


국왕 부부를 그리고 있다는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아래 파란색 벨라스케스 : 작품 속에 팔레트를 들고 있는 벨라스케스 / 아래 초록색 벨라스케스 : 작품 밖에 있는 현실의 벨라스케스)


벨라스케스는 분명 무언가를 보며 붓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벨라스케스는 위와 같이 소실점을 화면의 살짝 오른쪽에 위치시킴으로써 관람자에게 벨라스케스의 캔버스에 무엇이 그려지고 있는지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관람자는 사실 거울이 벨라스케스의 캔버스를 비추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며 깨닫는다.


"아 국왕 부부를 그리고 있구나!"


또한, 벨라스케스는 미래에 이런 해석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각도 상 캔버스를 완전히 가릴 수도 있는 왼편의 시녀를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주에게 음료수를 건네주기 위해 앉아있고, 덕분에 관람자는 캔버스에 그려지고 있는 국왕 부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국왕 부부가 주인공인 걸까?

아니면 소실점 끝에 서있는 남자의 시선으로 이 모든 광경을 그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등장인물들이 일제히 관람자를 쳐다봄으로써 "주인공은 바로 관람자 당신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처럼 <시녀들>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뽑히기도 했으며, 수많은 후배들이 이 작품을 오마주 하기도 했다.

펠리페 4세도 이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작품 속 거울에 희미하게 등장할 뿐이지만 그림이 완성되자 자신의 집무실에 배치했다고 한다.

게다가 벨라스케스 <시녀들>을 완성시키고 2년 뒤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 그는 궁정 서열로 3위 정도의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고 한다.


벨라스케스 자화상, 1640 (출처 es.wikipedia.org)


작품의 해석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고려해 볼 점이 있다.

바로 벨라스케스가 '화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궁정화가로써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으며, 실제로 그의 작품은 대부분 초상화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벨라스케스는 '초상화 기술자'였다.


말년에 그가 높은 지위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쩌면 그는 죽는 순간에도 화가로서의 성공을 열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왕궁에 보관되었고, 대중에게 그의 작품이 공개되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탈리아 유학을 갔을 때, 네덜란드 바로크 거장인 루벤스를 만났을 때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선배 거장들의 다양한 주제와 표현 기법 등을 공부하며, 또 같은 궁정화가였지만 외교관으로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루벤스를 보며 자유로움을 갈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하다.

"벨라스케스가 의도적으로 보는 이를 혼돈 속에 빠뜨리고, 동시에 '시녀들'이라는 주제 뒤에 화가로서의 '성공'과 '자유의지'를 갈망하고 있는 자신을 작품 속에 담아내려 했다는 것."


<시녀들> 벨라스케스, 1656 (출처 es.wikipedia.org)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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