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가 또 하나의 전환점을 겪게 된 건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루벤스'와의 만남이었다.
루벤스는 단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이탈리아 미술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허락을 얻어 궁정화가로서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후 벨라스케스의 표현 방식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의 변화된 화풍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위 그림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이다.
알라 프리마(Alla Prima)라고도 부르는 이 기법은, 대상의 형태를 정확히 데생하고 정성스럽게 색칠하는 대신 순간적인 감각으로 물감을 바르는 기법이다.
또한 위 그림은 전통적인 초상화와 많이 다르다.
교황은 당시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스케스는 교황을 우아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도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품을 보며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교황이 다소 신경질적이고 교활한 모습으로 벨라스케스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엄청 대담한데?"
아내가 말했다.
"그치? 그래서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은 역대 초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해."
"그럴 만도 하네."
"그리고 그의 알라 프리마 기법은 나중에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어. 시대적으로 인상주의가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영향을 끼친 거지."
"그렇구나."
"그리고 이런 벨라스케스의 모든 노하우가 담긴 그림이 그가 말년에 완성한 <시녀들>이라고 보면 돼."
<시녀들> 벨라스케스, 1656 (출처 es.wikipedia.org)
"이 그림이 바로 그 작품이야."
"등장인물이 되게 많네?"
"맞아. 등장인물도 많지만 관람자를 헷갈리게 하는 여러 요소들도 있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해석하고자 하는 거야. 자긴 벨라스케스가 뭘 그린 것 같아?"
"작품명이 <시녀들>이라며. 중앙에 있는 공주랑 시녀들을 그린 거 아닐까?"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주와 시녀들을 비추고 있다.
"응. 마르가리타 공주를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야. 위 그림처럼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왜소증을 앓던 시중들과 강아지를 비추고 있거든. 보통 화가들이 빛을 이용해서 주제를 부각시켰기 때문에 공주의 초상화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그럼 다른 해석은 뭔데?"
"지금부터 조금 머리가 아픈 부분인데, <시녀들>에는 원래 회화 작품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뭔 것 같아?"
"글쎄... 뭐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바로 '거울'이야."
회화 작품 속 '거울'은 사실 일종의 방송 사고와 같다.
그 이유는 위 그림과 같다.
작품 속에 거울이 등장하게 되면, 거울이 화가와 그의 캔버스, 그리고 배경을 비추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화가가 캔버스에 담고자 했던 주제를 흐릴 수 있으며, 관람자의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거울은 회화 작품 속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러 거울을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약혼> 얀 반 에이크, 1434 (출처 en.wikipedia.org)
앞 장에서 살펴봤던 얀 반 에이크의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약혼>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꽤나 의도적인 위치인 중앙에 원형 거울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울 속에는 부부의 뒷모습과 화가, 그의 조수가 등장한다.
얀 반 에이크는 신성한 약혼의 증인임을 나타내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다.
그는 거울 속에 자신을 등장시켰고, "얀 반 에이크가 입회했노라"와 같은 자신의 서명을 통해 거울을 그려 넣은 이유를 명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