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냉장고

by 김진영

2016 방화동 김장

2018 백석동 밭 김장

2018 김치

2019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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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가은 엄마랑 딸 둘이 옆 동에 사는 할머니 집에 갔다 들어왔다. 뭐라 하는지 꼭 듣고 싶었다. 가은이 할머니가 새 김치냉장고를 샀다고 했다. 그것도 나처럼 앉은뱅이가 아닌 꼿꼿이 서 있는 것으로.

“가은아, 할머니 집에 물건이 새로 들어오면 아는 체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래야 물건을 산 사람이 기분이 좋지. 원래 그러는 거야.”

“왜?”

가은이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하긴 네가 뭐가 궁금하겠냐? 그게 정상이지.”

“엄마, 난 냉장고 문도 열어봤어. 내가 열어도 열리더라.”

옆에 서 있던 나은이 말에 가은이가 나은이를 째려봤다.

“왜 째려봐?”

“됐고. 방에 들어 가. 너희하고 싶은 거 해.”

가은이가 방에 들어가면서 나은이 팔을 퍽 치고 지나갔다.

“아야!”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자 가은 엄마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내 안에는 김치가 잔뜩 들어있다. 어떤 것은 먹을 수도 없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넣어두기만 할 건지 가은이 엄마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 불과 한 시간 전 일이다.


“오늘 안 바쁘면 조금 이따가 애들 학원에 가면 와서 김치 담그는 것 좀 도와줘!”

“알았어요.”

“김치 통 가져오는 것도 잊지 마!”

할머니는 전화로 가은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가은 엄마가 날 살피기 시작했다. 원래 다른 데는 욕심이 없는데 김치에는 유독 욕심이 많은 가은 엄마가 빈 김치 통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날 안 살필 수가 없을 거다. 난 어젯밤이 떠올랐다. 식탁에 가은 엄마와 아빠가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모습을.

“그래, 합평 모임인가 나가 보니까 어때?”

“묵혀두래. 무슨 글이 된장, 고추장도 아니고 왜 자꾸 묵혀두라고 하는지 몰라.”

“당신 글을?”

“어. 예전에 쓴 건데 그래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들어보고 싶어서 보여줬거든. 그랬더니 내가 사유가 부족하대.”

“당신 생각은?”

“나야, 난 늘 내가 쓴 글에 만족하지.”

내 안에 아주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김치 통에는 하얗게 자라고 있는 김치 곰팡이가 있다. 난 얼른 가은 엄마가 알아차리고 그것만이라도 걷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내 몸 전체에서 나는 이 김치 냄새를 좀 더 신선한 냄새로 바꿀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은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위에서 대충 살피더니 조금밖에 남지 않은 김치를 작은 통에 담아 내 안에 다시 넣었다. 후유~그래도 오늘은 가은 할머니가 새 김치를 담근다고 했으니 신선한 김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들이 다 방에 들어가고 나서 가은이 할머니의 새 김치 냄새가 내 코로 솔솔 들어왔다. 뚜껑을 열고 빈 공간에 날 집어넣고 뚜껑을 닫는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 같은 건 듣지도 못한다. 내가 내 안에 담긴 김치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돌보는지 가은 엄마는 모를 거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늘 김치 냉장고에 자리 잡고 있던 잡동사니를 가은 엄마가 치우기 시작했다.

“어, 무슨 일 이래?”

가은 엄마는 내 속에 들어 있는 김치 통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문제의 하얀 곰팡이 김치통도 어느새 열렸다. 가은 엄마가 하얀 곰팡이 부분만 걷어내 버렸다. 조금씩만 남아 있던 얼갈이김치는 한데 모아 두었다. 오늘 저녁에는 된장과 멸치 베이스에 지진 김치가 가은이네 식탁에 올라올 거다. 가은이는 절대 젓가락이 가지 않는 그 반찬을 말이다. 그때 가은이가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방에서 나왔다. 코를 손으로 움켜쥐고서.

“이게 무슨 냄새야?”

“김치 냄새.”

“엄마, 무슨 김치 냄새가 이렇게 고약해?”

“오래 묵어서 그런 거야.”

가은이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도 코를 손으로 움켜쥐더니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 문 닫는 소리도 이어 들려왔다. 가은 엄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김치통을 열어보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은이가 언제 왔는지 나와 서 있었다.

“엄마, 오늘 이거로 반찬 만들 거야?”

“어, 나은아.”

“입에 침이 고여. 나 그 반찬 되게 좋아하는데.”

“그래, 엄마가 맛있게 해 줄게.”

“응, 고마워. 엄마.”

그러더니 나은이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갔다. 나은이 뒤통수에 대고 엄마가 말했다.

“나은아, 언니 것도 챙겨야지.”

“아참, 깜빡했다.”

나은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어, 이게 언제 거야?”

가은 엄마가 김치통 하나를 열었다. 내 안에는 2016년 김장 김치가 들어있다. 이 김치로 말할 것 같으면 이상하다. 삼사 년이 지났지만 하얀 곰팡이 하나 피지 않고 멀쩡하다. 그뿐 아니라 점점 더 맛이 깊어가는 게 나에게도 느껴진다. 가은 엄마가 김치의 작은 이파리 하나를 떼어 입속에 넣었다. 가은 엄마가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아는 그 표정이었다. 결국 한 시간 남짓 가은 엄마의 손을 거쳐 내 속은 정리가 되었다. 좀 전에 말했던 익으면 익을수록 깊어지는 김치, 더는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과감하게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간 김치, 위에 하얗게 곰팡이는 피었지만 그것만 걷어내면 좀 먹을 만한 김치, 전의 모습은 말끔히 씻어내고 새롭게 재탄생해서 식탁에 올라갈 김치, 그리고 금방 지금 버무리고 담근 싱그러움 그 자체인 김치를 내 안에 집어넣기 직전이었다.

“나은아!”

나은이가 금세 엄마 앞에 섰다.

“방에 가서 견출지 좀 가져다줄래?”

“엄마, 견출지가 뭐야?”

늘 심부름을 똑 소리 나게 잘하는 나은이도 이번에는 모르겠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비닐장갑을 벗고 가은 엄마가 자리를 떴다. 그제야. 난 깊은숨을 쉬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당황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테이고 늘 무관심했던 나를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니 내가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가은 엄마가 종이와 펜을 들고 나타났다. 가은 엄마는 펜 뚜껑을 입에 물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2016년 방화동... 2018년 밭 김장..... 2018년 백석동 김치.... 2019년 김치. 이렇게 써서 김치 통 뚜껑 위에 떡 하니 붙였다. 그리고 김치 통을 하나씩 하나씩 넣었다. 내 생각에는 그냥 차곡차곡 넣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가은 엄마는 한참을 생각하고 넣고 다시 꺼내고 다시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은 엄마의 행주질을 끝으로 내 입은 다물어졌다.

“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 쾌적하고 산뜻한 느낌이!”

저녁에 가은 아빠와 가은 엄마가 언제나처럼 식탁에 앉았다.

“오늘 김치 냉장고 정리했어.”

“정말? 놔두었다가 나랑 주말에 같이 하지 그랬어.”

주말에 같이 했다가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간 김치 때문에 안 봐도 되는 눈치를 가은 엄마가 볼 거라는 걸 난 알고 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저녁 준비를 하던 가은 엄마가 멈췄다.

“무슨 생각?”

“김치가 꼭 글 같더라고!”

그러면서 가은 엄마는 식탁에 새롭게 재탄생한 된장에 지진 김치를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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