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우물

by 김진영

“띡띡띡 띡디디띡”

언제나처럼 비밀번호를 누르고 가은이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할머니지만 가은이와 나은이는 똑같이 인사를 한다. 그건 할머니가 매번 올 때마다 인사하길 바란다는 걸 아이들이 알아서이다. 요즘 들어 할머니는 부쩍 옛날이야기를 많이 풀어 놓는다. 가은 엄마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 같은 걸 말이다.




우물이 있는 곳엔 늘 일이 있었다.

마을엔 우물이 세 개 있었다. 하나는 마을 어귀에 공동 우물이 있었고 대추나무집과 우리 집에 우물이 하나씩 있었다.

“나가 저 물을 다 먹을 수 있으려나?”

“글씨?”

종호 옆에 선 만식이가 똑같이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명 더 있으면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거 같은디?”

만식이가 아이들 몇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셨다. 그날 이후 온 동네 아이들은 배앓이를 심하게 해야만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물은 어른들만 찾는 곳이 되었고 음산하고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스름 저녁 무렵 김방구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다. 김방구 아저씨 집은 바로 우리 옆집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우물을 공동으로 쓰기 위해 아저씨 집과 우리 집은 한쪽 벽을 헐어 개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거서 뭐하요?”

“아따 속에 불이 들었는가 더워 죽겄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방구 아저씨는 두레박으로 우물을 길어 연신 잠방이만 걸친 맨살에 들이부었다. 여름이라지만 차가운 우물물을 쫙쫙 들이붓는 소리는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였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김방구 아저씨가 언제부터 김방구가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도 딱히 없었다. 어쩜 김방구 아저씨가 아이들을 꽁무니에 매달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키키, 아저씨, 뭐 먹을 거 없어요?”

한 아이가 물었다.

“묵을 거? 아따 이거나 묵어라!”

하면서 아저씨는 ‘빵’ 소리가 나게 방구를 뀌고 그대로 먹여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좋다고 낄낄거리는데 아저씨는 금방 안색이 달라졌다. 뭔가 속에 늘 구린 게 있는 듯 보이는 아저씨는 아이들이 귀찮게 따라오면 버럭 성깔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날도 공동우물에 아낙네들이 모였다. 사방으로 낸 수로는 약속처럼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우물하고 가까운 곳은 보리쌀을 씻고 먼 곳에서는 빨래를 하게 되어 있었다. 이 역시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선희야, 거서 빨래하면 어떻햐? 빨래는 저짝에서 해야제. 여기는 보리쌀 씻는 곳이여.”

걔 중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선희는 아랑곳 않고 빨래를 했다.

“어른이 하는 말이 안 들리는겨? 대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여?”

그날 김방구 아저씨 딸 선희가 여기 오기 전 엄마에게 지청구만 듣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빨래를 하던 손을 멈추고 선희는 우락부락 아줌마를 째려보았다.

“오메, 저 눈깔 좀 봐.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네.”

그쯤 돼서야 옆에서 보리쌀을 씻던 아줌마 몇이 분위기가 심각해짐을 감지했다.

“어른이 어른다워야지.”

불콰해진 얼굴로 선희가 쏘아붙였다.

“뭐라고? 시방 한 말 다시 혀 봐. 뭐가 어쩌고 어쨌다고?”

우락부락 아줌마가 달려들듯 선희를 향해 말했다.

“첩자나 하는 주제에.”

모두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우락부락 아줌마 얼굴의 입언저리가 심하게 떨렸다.

“너, 시방 뭐라고 했냐?”

“그렇게 우리 마을 일 일일이 다 꼰질러서 받아먹은 돈으로 보리쌀 팔아먹으면 배 부르.”

선희가 말을 끝마치지 못했던 것은 보리쌀 세례를 받아서였다. 바가지의 보리쌀을 모조리 쏟아 뿌린 아줌마는 씩씩대고 있었고 선희는 얄미운 손짓으로 몸의 보리쌀을 털어냈지만 머리카락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낙들은 싸움을 말리는 척만 했다. 사실 우락부락 아줌마가 마을 첩자라는 건 마을 조무래기들과 지나가는 똥개 빼고는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명희야!”

내가 지서 앞으로 명희를 만나러 갔을 때 명희는 다소곳이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어찌 됐는가?”

“울 아버지 징역 1년을 살아야 한다.”

명희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나한테 말을 죄다 털어놓았다. 그날 우물에서 명희의 첫째 언니 선희를 통해 모든 게 발가벗듯 벗겨진 우락부락 아줌마는 남편에게 달려가 죄다 얘기를 풀어놓았다.

“뭐여? 그 김 방귀 딸내미가 그랬다고? 좋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누군 모르고 있어 입 닫고 있었는가 알았나 보네.”

다음 날 우락부락 아줌마 남편은 지서에 갔다. 평소에 친분이 있는 지서장에게 김 방구 아저씨를 꼰질렀다. 조사가 필요한 인물이라고. 동네에서 도둑맞은 물건의 범인일 것이라고. 사실 그랬다. 난 저녁 무렵에 선희네 집에 불이 켜 있던 걸 본 적이 없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김방구 아저씨네 집은 새벽에 할 일을 위해 쉬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부터 파면돼야. 어른 서두르라고!”

파야할 것은 양파였다. 양파를 파는 사람은 동네 모질이인 종호와 만식이었다. 김방구 아저씨는 종호와 만식이가 김방구 아저씨 밭이 아닌 다른 밭의 양파를 파라고 해도 아무 말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 모질라서이기도 하지만 낮에 종호와 만식이가 본 영화를 도로 물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잘못했시오. 다 얘기 할기요.”

지서에 끌려간 종호와 만식이는 처음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다 귓방망이를 한 대씩 맞고 나서 모든 걸 다 털어놓았다. 저작거리에서 판 양파는 김방구 아저씨 밭 양파가 아니었다. 김방구 아저씨가 새벽마다 종호와 만식이를 데리고 남의 밭에서 몰래 훔치는 채소들은 꼭 김방구 아저씨 밭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종호와 만식이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없어진 물건이 있다면 그건 죄다 김방구 아저씨 집에 있을 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결국 덜미가 잡혀 1년 넘게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김방구 아저씨는 이사도 가지 않고 조용히 죽은 듯 자기를 기다린 식구들과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그거 복쟁이 아니어요?”

“우리 엄미가 선희 아부지 먹으라고 가져왔당게.”

금방 구멍만 나오면 닿는 우리 집 우물을 안 찾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공동우물에서 복을 씻고 있었던 사람은 선희 엄마였다.

“그 귀한 걸 선희 아부지는 좋겠시오.”

공동 우물에서 복쟁이를 씻었으니 김방구 아저씨가 저녁으로 복국을 먹을 거라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절도죄로 징역까지 살다 온 김방구 아저씨를 유일하게 같은 우물을 먹는다는 이유로 끼워준 나의 아부지는 혹시나 당신을 부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저녁이 되고 저녁밥을 다 먹고 나서도 김방구 아저씨는 우리 아부지를 찾지 않았다.

다음 날 김방구 아저씨는 온몸에 독이 퍼져 죽었다. 우리 집에서 우물물을 몸에 들이붓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몸속에 독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했다. 얼른 의원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그들은 재를 넘기도 전에 명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몸속의 독은 피와 함께 내뿜어졌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복쟁이 알이 다른 생선 알과 다르다는 걸 알기에는 너무도 아는 게 없고 먹을 게 없는 사람들 삶의 표피였다. 삼일장을 치르고 상여가 나가는데도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더운 여름날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그 집을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장모님이 주신 복쟁이를 먹고 저세상을 간 김방구 아저씨는 복에 있는 알이 청산가리보다 몇 배의 독이 있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떠났다.

그 후에도 나의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너그들, 마지막으로 우물에서 세수하는 사람은 들어올 때 비누 들고 들어 왓!”

아이들이 다 들어간 휑한 우물가는 쓸쓸함이 감돌았다. 얼룩달룩 얼룩이 있긴 하지만 터질 듯 새하얀 달은 무게를 못 이기는 듯 우물물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오동나무 한 잎이 비누 곽에 들어가 앉았다. 아직도 훤한 우리 집과 달리 옆집은 깜깜했다. 옆집 명희 네 알전구는 오늘도 언제 꺼졌는지 차갑게 식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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