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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Jul 26. 2022

전화 벨이 울리면 - 콜 포비아

콜 포비아






전화가 울렸다 끊긴 게 벌써 두 번째다. 전화는 지치지도 않고 세 번째 울음을 시작했다. 늘 정신없이 바빴던 소규모 광고대행사 사무실은 여름휴가철이라 자리 곳곳이 비어 한산했다. 남은 직원들 역시 휴가 간 직원들의 업무 공백을 메우랴, 광고주 미팅과 각종 회의 처리하랴 분주했기에 아무도 자리에 없었다. 벨 소리는 비어있는 공간과 벽에 부딪혀 더 크게 공명했다. 세 번째 전화벨이 끊기자마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혼자여서 다행이다.      






 CD(Creative Director)님은 휴가를 떠나기 며칠 전 내게 업무지시를 내렸다. 


 “김 대리, 다음 주에 보기로 한 업체들 일정 변경 전화 쫙 돌려. (내가 휴가는 꼭 가야 해서) 우리 쪽 스케줄이 좀 타이트하네.”


속사포로 말을 뱉은 후 그는 다른 미팅을 위해 재빨리 사무실을 나갔다. 대답할 새도 없었다. 아니, 대답을 들을 가치가 없는 지시다. 일정 변경을 스태프들에게 전하는 것뿐이니까.



처음으로 맡게 된 TV 광고였다. 그동안 예산 규모가 작은 일들을 맡아왔던 나는 굳이 외부와 연락을 할 일이 없었다. 반면, 규모가 큰 TV 광고는 연예인 에이전시,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사진작가와 프로덕션 등 여러 회사의 협업으로 제작된다.



10여 개 업체의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도저히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버튼을 누르려할 때마다, 심장은 명인이 신명 나게 두들기던 북처럼 떨었다. 며칠 동안 다른 업무는 손도 대지 못했다. 전화기를 쥔 손에서부터 귀까지 둥둥 울리던 북소리만 확인했을 뿐이다. 결국 CD님은 스태프들의 일정이 아직 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휴가를 떠났다.      






회의를 끝낸 직원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다시 자리를 채웠다. 내 전화가 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프지도 않은 배를 움켜쥐고 냅다 화장실로 뛰었다. 그걸 본 동료 직원이 전화를 돌려받았다. 잠시 자리를 비웠으니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라고.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를 수행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화장실 문틈을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왔다. 뛰는 심장을 달랜 후 벌건 얼굴을 감싼 채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았다. 더는 회사에 다닐 수 없겠구나. 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황당했다. 대체 이게 무슨 병이지?



자리로 돌아와 이 기이한 증상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전화를 못 하겠어요’라고 치니 짝사랑 남녀가 상대에게 전화를 못 하겠다던가, 친구랑 싸워서 전화를 못 하겠다는 등의 애정 어린 사연들이 나왔다. ‘전화를 못 하는 병’을 검색하자 ‘기억을 못 하는 병’,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병’ 따위가 나타났다. 여러 차례 엉뚱한 정보만 얻다가 마침내 ‘전화 공포증’이란 단어를 찾았다. 연관된 검색어에 사회 공포증, 사회 불안증이란 병명이 보였다. 아니. 이게 왜. 내가?!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지만 꽤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술자리에는 꼭 감초처럼 끼던 내가 사회 불안증이라니.      



 어쨌든 ‘전화를 못 하는 병’보다는 조금 더 납득 가능한 병명이었기에 회사 대표님께 바로 찾아갔다. 그리고 ‘사회 불안증’ 때문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며칠간 전화로 인해 지체된 업무들에 대해서도 이실직고했다. 회사에서 한창 잘 나갈 때였지만, 전화 없이는 어떤 업무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짐을 싸고 회사 출입문을 나오던 날, 햇빛은 세상의 모든 티끌을 드러내려 작정한 듯 쨍했다. 두피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퇴사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차마 ‘병가’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정신 질환은 정확한 치료 기간조차 가늠할 수 없는 병이었고, 나조차 언제 괜찮아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보통 평범한 직장인처럼 ‘병가’에 대한 소박한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출근길에 적절히 비싼 차에 적절히 치여 다리나 팔 정도를 적절히 다친 후, 보험금으로 적절히 처리되는 병원에 몇 주 입원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드라마나 웹툰을 몰아보는 꿈. 정신은 말짱할 테니 신나게 뇌를 놀게 해주고 싶었는데, 사지는 멀쩡한 채 정신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퇴사 후, 매일 병에 대해 검색했다. 증상은 전화만이 아니었다. 지하철만 타면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번번이 중간에 내리기 일쑤였다. 월급 대부분이 광역 택시비로 날아갔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겼으나 술이 항상 곁에 있어야 했다.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무지했기에 이미 있던 증상들과 전화 공포증을 연결하지 못했다.



 예민해서, 긴장을 잘해서 그런 줄 알았다. 예민함과 긴장은 ‘불안’을 끌어왔다. ‘불안’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마성(魔性)을 지녔다. 늘 불안에 휩싸여 밤샘 근무와 주말 특근을 마다하지 않고 업무에 매진했다.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몸은 예전부터 신호를 보내왔지만, 몸의 주인은 성격을 탓하기만 했다. 그런 내게 전화가 알려준 것이다. 너 이제 그만해.      



 모든 계획이 멈췄다. 병을 인지하게 된 이후, 증상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밖으로 나가는 게 무엇보다 힘든 일이 되었으며, 사람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은 무리로부터의 이탈을 죽음으로 여긴다. 그해 여름, 나는 사회적 동물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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