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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Jul 29. 2022

눈치 100단

타인의 시선




기억에서는 깡그리 사라져 버린 시절이지만, 바랜 사진 속 나는 몽땅 썩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맞벌이 부모님은 태어난 지 100일 된 나를 어쩔 수 없이 조부모님에게 보냈고, 나는 깡촌에서 4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아무도 나를 훈육하거나 혼내지 않아서인지 사진 속 퉁퉁한 얼굴엔 한 점의 그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단지 손녀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매일 끝없이 요구르트를 제공했다. 유치가 다 썩어버렸지만, 손녀는 그저 행복했다. 



 인생의 전성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부모님에게 돌려보내 졌다. 너무 어릴 때 부모와 떨어진 터라 정서적으로는 입양아나 마찬가지였다. 슬픔, 결핍, 외로움과 억울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밤마다 할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할아버지는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잘 지내라는 말뿐이었다. 그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걸 알아버렸다. 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든 잘 지내야 한다고 각성을 하자, 불안이 자라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버림받을 것 같아 온몸의 안테나를 세웠다. 



내가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태어났다. 바보 천치 같은 동생이 부모님의 관심과 시간을 모두 앗아갔기에 그들이 내게 쓸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라 짐작했다. 나는 눈치껏 자신을 스스로 돌봤다. 눈치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처럼,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기’ 위해 나의 시선은 온통 ‘남’을 향해 있었다. 그렇게 <눈치 100단>의 삶은 시작되었다.






보통 책벌레들과 다르게 <눈치 100단>은 관심을 받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어른들이 물을 때마다, 책이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읽고 싶은 책도 있었겠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의 기특해하던 눈빛이었다. 보통 초등학생 같지 않게 참 성숙하구나, 너란 아이는 나중에 뭐가 돼도 되겠구나, 라는 긍정적인 감정이 그들의 눈에서 읽혔다. 그 시선을 받아먹으며 사춘기가 올 때까지 명절 선물과 생일선물로 책을 받았다. 



나의 자존감은 관심이라는 물만 뿌려주면,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다. 관심을 받기 위해 나는 상대의 특징과 성향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이용해야 했다. 의사소통의 70%를 차지하는 인간의 <비언어적 행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눈썹의 움직임, 어조의 변화,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 눈동자의 동태, 입꼬리의 씰룩거림 등, 나의 뇌는 미세한 표정과 변화를 포착하고 분석하며 대응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로 인한 에너지 소모도 상당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 작업은 무릎반사처럼 일어났다. 사람을 만날수록 무릎반사는 점점 심해졌고, 나는 점점 피곤해졌다.



 회사 내 인간관계의 덕목은 무던함과 무난함이다. 비난을 받아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무던함, 너무 튀지 않는 무난한 태도. 비난에 취약한 예민함과 주목받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숨긴 채, 성격 좋은 강아지처럼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오전 9시 출근이면, 8시까지 가서 오늘 할 일을 준비하고 비서 언니와 함께 상사들의 커피를 내렸다. 그들의 미소와 칭찬을 양분 삼아 자존감을 키웠다. 역시나 일관성 있게 콩나물스러운 나의 자존감은 밤새 쑥쑥 자라기도 했으나 다음 날 아침에 쑹덩쑹덩 뽑혀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완벽해야 했다. 완벽해져야 얼마 남지 않은 콩나물을 지킬 수 있었다. 한 번 일으킨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기 위해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시뻘건 눈을 모니터에 박고 새벽까지 일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함은 수만 광년의 별빛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나”는 허상을 좇느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화 공포증이 오기 일 년 전 여름, 휴무 없이 기계처럼 일하던 나의 뇌가 고장 나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경기도 남부에서 홍대에 있는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 거리였는데, 버스와 지하철을 모두 이용해야 했다. 운 좋게 자리를 잡아 헤드뱅잉을 하며 졸던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지하철역으로 냅다 뛰었고, 가까스로 문이 닫히기 직전 탑승에 성공했다. 



사람 많기로 유명한 2호선 출근 시간, 꼭꼭 눌러 담은 고봉밥 속 찰진 쌀알처럼 승객들과 끈적하게 밀착되어있던 그때 갑자기 사람들의 눈초리, 숨소리, 목소리 등이 한꺼번에 내 오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갑자기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내 팔에 붙어 겨우 통화를 이어가는 아주머니도, 나를 등지고 서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남자도, 나와 등을 맞댄 채 서둘러 화장을 고치는 여자도, 저 멀리 좌석에 앉아 입을 벌리고 자는 아저씨도. 그 누구도 나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내 뇌는 그걸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무방비로 난타당한 뇌는 공포 반응을 일으켰다. 심장이 정신 나간 듯 뛰기 시작했다. 온몸에 열기가 돌고, 땀이 났다. 얇은 여름옷은 금세 축축해졌다. 당황한 나머지 연신 땀을 닦아냈지만, 심장은 더욱 힘차게 육수를 쭉쭉 뽑아냈다. 이러다 돌연사하는 거 아냐? 더럭 겁이 났다. 티셔츠는 푹 젖은 무 쌈처럼 반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숨을 가삐 내쉬며 다음 역만 기다렸다. 치이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놀란 고라니처럼 뛰어나갔다. 



환풍구 밑 벤치를 찾아 앉았다. 환풍구의 바람이 코로 들어오자 제대로 숨이 쉬어졌다. 숨을 가다듬고 땀을 식히는 동안 지하철 여러 대를 보냈다. 지하철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넋 나간 듯 바라보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과장님으로부터 온 문자다. 김 대리 어디야. 왜 안 와. 그제야 출근 시간이 30분 이상 지났다는 걸 알았다. 과장님의 화난 눈썹, 목소리, 눈동자, 입꼬리가 떠올랐다. 아, 뭐라고 그러지… 생소한 증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상대의 눈치만 살폈다. 그저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커피를 한 잔 더 들이켰을 뿐, 내 몸에는 철저하게 무심했다.







위에 나타난 증상은 극도의 공포감이나 강도 높은 불안으로 발생하는 공황발작이다. 공황장애와 혼동이 되기도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이 나타나는 공황장애 증상과 다르게, 사회 불안장애 환자는 특정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발생했을 때 - 무대에 서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등 - 발작 증상을 보인다. 


불안장애 환자에게 커피는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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