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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03. 2022

나의 해방은 광역 콜택시

지하철 공포증




 경기도는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나의 해방 일지>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며 계란 흰자로 살던 오래전 나의 모습을 명징하게 그려냈다. 주변에서 서울 중심으로 흐르는 삶들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밝을 때 퇴근했는데 밤이야. 저녁이 없어.         

밝을 때 퇴근하는 일이 드물었던 나는 드라마 속 인물들보다도 더 고단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온종일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느라 시큰거리던 눈 때문에, 택시 창으로 보이던 한강 변의 청초한 새벽 풍경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녘의 택시 승차객들이 그렇듯 나 역시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었고, 떡이 진 머리는 택시 진동에 맞춰 힘없이 흔들거렸다. 피로 때문에 차멀미를 더 심하게 느꼈지만,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현실에 속이 더 울렁거렸다.






야근하다 자정을 넘기면 회사에서 택시비가 나왔다. 야근이 많은 직업 특성상 야근비를 주면 회사 운영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에 택시비라도 주지 않으면 퇴사 릴레이가 펼쳐질 게 뻔했으므로 궁여지책으로 제공하는 비용이었다.

 

몇 차례 지하철 탈출을 감행하고 나니, 지하철역 근처만 가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계단 아래 지하철 역사의 시커먼 아가리를 볼 때마다 하데스와 염라의 지옥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지옥 입구를 지나 열차에 탑승하면 승객들의 얼굴이 내부의 푸르뎅뎅한 조명에 반사되어 핏기를 잃었고 그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몸은 자동으로 공포 반응을 보였다. 심장이 온몸을 흔들자, 모공은 다시 수도꼭지를 열었다. 궁리 끝에 나는 회사의 훌륭한 복리후생(?)을 이용하기로 했다.


굳이 자정까지 업무를 할 필요가 없는 날에도, 업무시간 중에 커피를 홀짝이며 평소보다 여유롭게 일을 진행했고, 2층 건물이었던 사옥 위아래층을 돌아다니며 이 팀 저 팀 구경을 다니다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이후에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름도 멋진 ‘시안 A’ 왕자님에게 ‘작업’을 하며 손가락 춤을 추다 보면 동화 속 괘종시계처럼 스마트폰이 자정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고, 나는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을 메모와 함께 개인 책상 위에 다소곳이 벗어놓은 채 은빛이 감도는 세단 호박 마차와 함께 사라졌다. 당시 스마트폰이 막 출시되어 아직 카카오 택시 같은 대형 앱은 없던 환경이라 다양한 콜택시 업체가 있었다. 서울 택시 기사들은 밤이 늦을수록 계란 흰자로 향하는 걸 매우 싫어했는데, 경기도에서는 빈 택시로 나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의 푸념을 몇 번 들은 이후, 나는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데 특화된 <광역 콜택시>를 주로 이용했다. 외로운 싱글의 핸드폰 통화기록에는 1588로 시작되는 광역 택시 번호가 주로 남아있었다.






퇴근 시간 교통비를 회사 택시비로 충당하기는 했지만, 자주 이용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특히나 업무가 많지 않은 날에 저녁을 굳이 먹으러 가면, 눈치 빠른 재무팀 이사님이 다가와서,


“김 대리, 오늘 일이 그렇게 많은가?”


라며 넌지시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택시 영수증을 제출하는 횟수가 빈번했고, 거리도 멀어 편도 4만 원대의 택시비가 나가니 회사 차원에서 나는 돈이 꽤 많이 드는 직원이었다. 그렇다고 거의 모든 인류의 퇴근 시간인 러시아워에 매일 택시를 이용하는 건, 로또를 맞아야 가능할 것 같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고통은 고스란히 지출로 이어졌다. 야근할 필요가 없는 직원은 저녁을 자비로 사 먹어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 내로 다시 들어가 시간을 때우며 러시아워가 끝나길 기다렸다. 이사님이 다시 다가와 내가 무얼 하고 있나 뒤에서 슬쩍 나를 훔쳐보았다. 나는 대놓고 열려있던 인터넷 쇼핑 창을 쓱쓱 스크롤하며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이사님은 너무 과로하지 말라고 친절한 말투로 압박을 한 후 퇴근했다.


저녁 8시 반 경, 식곤증과 함께 늘어져 있던 나는 사비로 광역 호박 마차를 불렀고 이미 VIP 고객이었던 내게 그들은 신속하게 차를 대령했다. 가끔 세련된 LED 실내조명과 푹신하고 부드러운 가죽 쿠션이 구비된 제네시스가 나를 모시러 오기도 했다. 서비스인가 싶어 괜히 기분이 좋다가도, 내가 그동안 지출한 택시비용을 생각하니 다시 우울해졌다.





 

출근 시간에 최소 앉아서 갈 수 있는 좌석버스에서는 지하철에서 겪은 증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좌석의 배치가 모두 뒤통수를 보고 있어 시선이 마주칠 일이 없어서 지하철보다 편했다. 그러나 꽉 찬 버스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거리다 옆에 선 승객의 콧바람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자, 호흡이 가빠지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다음 역까지 길어도 십 분 정도만 참으면 내릴 수 있었지만, 꽉 찬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는 탈출할 수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증상을 겪으며 겨우 버티고 있던 나는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만원 버스에서 처음 발작을 겪고, 다시는 러시아워에 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이 모두 필요했던 통근길, 나는 두 대중교통 전부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출퇴근 길을 광역 택시로만 다니자, 월급 대부분이 택시비로 들어갔다. 가끔 통장 상태가 너무 심각할 때는 버스를 두 번 이용하기도 했는데, 시내버스 역시 자리가 있어야 했고, 광역 버스도 남은 좌석이 있어야 했다. 버스 앱에 좌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당시엔 표기가 되지 않아서 나는 맨눈으로 버스가 올 때마다 일일이 확인을 했다. 여러 대의 버스를 그냥 떠나보내야 했다. 집에 가는 데 네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길거리에 그렇게 시간을 버리면서도 이직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보통 그 정도로 출퇴근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비교적 가까운 직장으로 이직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장거리를 불사하며 회사에 다녔던 건,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야근 택시비를 그렇게 대고도 회사 측에서 그다지 큰 잔소리 없이 넘어가는 이유다. 

다른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으면 되지 않냐고 주변 친구들은 이직을 권했다. 불행하게도 인간관계 지능은 조류와 비슷한지, 한 번 각인 효과가 일어나면 처음으로 긍정적 경험을 하게 된 사람이나 장소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강변북로에 월급을 뿌리고 다니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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