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공포증
여자는 뜨거운 콧바람을 내 얼굴에 뿜으며 집요한 시선으로 나를 살폈다. 서걱서걱 잘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그녀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가위질 소리에 맞추어 내 호흡은 거칠어졌다. 가운 아래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곧이어 이마와 목 뒤에서 흐른 땀은 가운 위로 똑똑 떨어졌다. 여자는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고객님, 많이 더우세요??”
한겨울이었다.
나는 여자의 질문에 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단 상황을 피해야 했다.
“아니, 저… 화장실 좀…”
가운에 붙은 머리카락을 화장실까지 흩날리며 뛰었다. 빈틈없이 목을 여민 가운에서는 긴장으로 인한 몸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했다. 가운 속 셔츠는 속절없이 땀에 절었다. 매번 일상생활에서 옷을 자꾸 소금물에 절이니, 자존감이 절인 배추처럼 힘없이 물러졌다. 게다가 땀은 항상 머리부터 흘러서, 굳이 분무기로 머리카락을 적시지 않아도 내 두피와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젖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가운을 목에 두르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심장부터 뛰었다.
특히, 남자 미용사가 배정되었을 때 증상은 가속화되었다.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게 분명한데, 상황과 관계없이 나대는 심장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 경험이 적은, 수줍은 처녀도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공격적으로 구애도 많이 했고, 남사친들과도 잘 어울렸던 강심장이 지금은 첫사랑에게 마음을 들킨 여고생처럼 행동했다. 남자 미용사에게 과도한 땀으로 감사를 표한 이후, 나는 미용실 예약을 할 때마다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여자 실장님으로 예약해주세요.”
그러나 여자 실장님으로 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새로운 미용실로 옮기게 되거나, 살짝이라도 덥다고 느껴질 때, 또는 다른 손님들이 많을 때 등등 긴장 상황은 다양해졌다. 그래서 보통 미용실을 하나 정하면 같은 여자 실장님에게 장기적으로 다녔는데 이쪽도 이직이 잦은 분야라 적응할 만하면 갑자기 실장님이 그만뒀다.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소중한 것이라며 감히 다치지 말라 하던 조선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나. 미용실을 옮겨야 할 때마다 마음이 착잡했다.
상대의 시선에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이 증상은, <시선 공포증>이라고 불린다. 사회 불안증 증상 중 하나인데,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정시 공포와, 시선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나 상황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횡 시공포 등이 있다. 지하철에서 겪은 공황 발작 역시 시선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시선 밖으로 보이는 승객들이 나를 본다고 느끼면서 몸은 공포/도피 반응을 일으켰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시선은 불편했다. 마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내 추잡한 마음과 불안을 레이저 포인터처럼 모두 꿰뚫어 보는 느낌이라 타인의 눈빛을 느끼면 즉시 눈을 내리깔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수에게 시선을 받는 느낌도 불편했지만, 내 신체와 밀접한 거리에서 오로지 한 사람에게 무차별적 시선을 받는 것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대표적인 장소가 미용실이었다. 의자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한 채 형벌을 받는 그곳은 내게 고문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고문실에서는 종종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