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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12. 2022

사람이 무서운 사람들

정신과 첫 방문






꼬박 몇 주를 검색했지만, 사회 불안증 전문 정신과나 상담센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후기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병원 광고와 의사의 약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 불안증이라고 하면, 주변 지인들도 그게 뭐냐고 물었다. 2012년의 사람들은 아직 사회 불안증이 낯설었다.




병원은 강남에 있었다. 쭈뼛거리며 문을 들어서자, 노란 조명이 비추는 실내에는 푸근한 소파가 듬성듬성 자리했고 은은한 클래식이 흘렀다. 일반 병원은 푸르스름할 정도로 차가운 흰 조명과 소독약 냄새, 분주한 간호사들, 환자를 호명하는 소리로 정신이 없었는데 이 병원은 병원이라기보다 조용한 카페 같아 긴장이 풀렸다. 데스크 안내 실장에게 사회 불안증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녀는 내게 몇 개의 테스트 항목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우울증 척도와 공황, 사회 불안증 증상 정도를 묻는 문항들이 보였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세련된 머리 스타일과 부티 나는 외모를 가진 흰 가운의 장년 남성이 인사를 했다. 살짝 거부감이 일었다. 성공한 장년 남성에게서 풍기는 고압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람을 쉬이 믿지 못했던 나는, 늘 성공 가도를 달려온 듯 보이는 저 의사 양반이 나 같은 지질한 사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암 전문의가 암에 꼭 걸려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과는 소통과 이해가 치료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이 의사에게 적합한 상대가 되려면 정상에서 성공을 한 번 누린 후, 갑자기 병이 와서 방문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병원에서조차 주눅이 들었다.




걱정과는 달리 상담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의사와 마주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눴다. 공황 발작 증상과 식욕, 수면 등, 신체적 증상에 관한 질문이었다. 내 상상 속 정신과는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는데, 환자는 보통 편안하고 거대한 소파에 똑바로 누워서 하고 싶은 얘기를 마구 지껄이기 마련이었고 의사는 환자의 머리맡에 놓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거나 뭔가를 노트에 열심히 적었다. 상상 속 장면이 펼쳐지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저런 방식의 상담은 아예 다른 종류의 치료방식이다), 의사와의 면담은 예상보다도 훨씬 건조하고 단순했다.




10분여의 상담과 약물 처방이 끝나고, 이곳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집단 *인지행동 치료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24개월 무이자 되나요. 안될 걸 알았지만, 그래도 물어볼까 망설이다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카드를 긁었다. 영수증을 받아 드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치료 시작일, 열 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였다. 민망하게도 의자는 원형으로 빙 둘러 배치되었다. 서로 시선을 피하던 사람들은 부끄러움과 불편함에 몸을 뒤틀거나 웅크렸다. 공기조차 뾰족한 것 같아 나는 눈을 자주 깜빡였다. 먼지 떠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나 역시 책상에 코를 처박고 노트에 낙서를 끼적이다가 조용히 눈을 굴려 이 사람 저 사람을 염탐했다. 어라, 저 사람은 대체 여기에 왜 온 거지. 단단한 체구에 멀끔한 슈트와 넥타이, 얼굴도 외향형 영업사원처럼 생긴 훈남 청년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면서 또 다른 사람을 흘끗거렸다. 아름다움을 온 얼굴로 외치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저 여자 얼굴이었으면 사회 불안증 따위에 절대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볼수록, 누구 하나 사회 불안증 환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험악한 인상의 남성도, 점잖은 풍채의 노신사도, 희고 갸름한 얼굴의 꽃미남도.




역시 나만 구린 거였어. 사회 불안증 환자 표식이 내 이마에만 드러난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자존감이 스스로 관을 짜고 들어가 누우려 할 때,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자자, 얼굴들 드시고, 다들 모임 싫어하는 것 잘 알아요. 싫어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의사 선생님은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왜 우리가 그렇게 공포 반응을 보이는지, 우리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다들 싫어하는 발표를 시키기도 했다. 서로의 상황을 나누고 나니, 저렇게 멀쩡한 사람도 나와 똑같이 공포를 느꼈다는 걸 알게 되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고 인사나 잡담 같은,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위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무서운 사람들은 매일 그렇게 어색하게 왔다가 뿔뿔이 헤어졌다.





*인지행동치료 | 환자의 왜곡된 생각 패턴을 파악하고 그로 인해 야기된 문제 행동 등을 바로잡는 치료. 과거를 들추거나 미래를 지향하는 치료가 아닌, 현재의 문제와 행동을 개선하려는데 중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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