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으로 의미 없으면 또 어떠하리
이집트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에 다녀 왔다. 박물관은 대학 내에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이 도시의 정신인지 미국의 지역에 환원하는 문화인지 무료였고 10달러를 원하는 사람만 기부를 하는 형식이었다. 현금도, 카드비도 갚기 힘든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입장을 했고, 안은 생각보다 넓고 많은 유물이 있었다.
유물들에 써있는 년도는 거의 비현실적이 였다. 4000년전, 3000년전, 2000년전 진짜일까 이런 생각도 들면서, 지금 이정도 정교한 조각을 하려면 얼마가 들까? 애초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할 수 없지않을까? 그렇다면 돌조각의 아름다움만으로 생각하면, 지금은 훨씬 더 가난한, 그 당시에만 가능했던 낭만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압도적인 크기의 소머리 조각, 반인반수 조각이 건물을 지키고 있었을 것을 상상하면 그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크고 이렇게 웅장한데, 그 때 사람들은 석공으로 태어나고 석공으로 자라나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우리가 거대한 스카이라인을 보고도 그저 또 하나의 빌딩으로 인식하듯 했을까? 아니면 그 거대한 빌딩으로 출근하면서 웅장함과 크기에 감탄하기 보다는 퇴근하고 싶은 지루함과 권태 혹은 인간관계의 상징처럼 느껴지듯, 일거리처럼 일상적으로 보였을까?
석공이 아닌 나의 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크기와 위용에, 어떻게 그 옛날에 이정도 규모의 돌을 이정도로 정교하게 깍아 건물의 벽면으로까지 사용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불가해함과 크기 그 자체에 대한 놀라움에 압도 되었고 나도 몰래 놀라움의 의성어가 튀어나왔다.
목표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요즘, 이런 고대인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양가적인 감정을 들게 한다. 고대인은 행복했을까? 아니 행복했을 것같다. 그들은 석공으로 태어나 돌을 깍으며 매일 할 일이 있고, 매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며 다른 고민할 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나의 필요과 기능을 증명할 필요도 없으며, 가족과 직업과 사회 속에서 그냥 살아갔을 것이고, 그들의 삶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행복했을 것이라는 것은 놀라운 추측이 아니다.
현대의 나는 어떠한가. 나는 석공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그랬다고 해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살고 있지도 못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두가 나 개인의 책임이 되었고, 나에게 기인하는 그런 최초의 시대를 맞아, 혼란스럽고, 힘에 부치며,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예전의 더 어렸던 나는,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 맹신하고 있었다. 내가 개인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장 발전된 것이며 그를 막고 다른 집단으로서의 정해진 삶을 말하거나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미개하기 까지한 구시대적인, 시대착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정말 그런걸까, 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약하다. 강하지만 약하다. 개인에게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하기에 인간의 인생은 알수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고, 급변하는 시대속에서 자유의 즐거움보다는 불확실성에 의한 불안이 더 많은 것도 같다. 그런 불안들은 개인에게 확신을 가질 수 없게 하고, 확신이 없는 개인은 결혼도 할수 없으며 나약한 자신에 대해 점점더 자신을 가질 수 없는 루프속에 몰아넣는 듯한 기분이다.
물론 가끔은 즐겁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맛있기도 신나기도하고 뿌듯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들은 늘 나를 찾아오고, 앞으로 찾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개인으로서 존재하기가 점점 힘에 부친다.
그럴때 커다란 소의 머리처럼 절대적으로 크고 엄청난 것을 보며, 이런 존재가 나를 지켜준다고 나와 함께한다고, 돌처럼 정해진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참 든든 할 것 같다. 그게 나에게는 종교가 존재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이유인것 같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석공으로 태어나듯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우리는 자유를 행사하여 점점 더 많이 종교에서 벗어나고 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중학교 때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사람으로서 종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이해가 가며, 사이비 종교?에 1년 정도 있었던 사람으로서 너무나 힘든 사람들이 왜 얼토당토 없는 사이비에 빠지는 가도 너무나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다시 나에게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종교는 겁쟁이들이 도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 그렇다, 이 험난하고 피곤한 세상에서 매순간을 겁쟁이가 아니고 맞서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지치는 일이다. 혼자서, 개인으로, 스스로 온전히 살아가고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은 버겁고, 종교의 힘을 빌어 조금 기대고, 그힘으로 내가 정말 필요한 곳에서 당당하게 서고, 맞서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싶다.
종교를 갖는 것은 신을 믿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언제나 신, 혹은 신이라고 자주 불리우는 더 큰 무언가의 존재를 믿어왔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의 믿음이었을 뿐, 특정한 종교의 형태는 아니었다. 종교가 성립되려면, 교리, 종교 내에 존재하는 커뮤니티 등 그들의 방식에도 동화되어야 하기에, 아직까지는 그속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좋아보이는 종교도 없었다.
원래 9시는 교수님과의 미팅이 있는 시간이었다. 캘린더에 있어야할 스케줄이 보이지 않아 메일을 찾아 들어갔고, 사정이 생겨 미팅이 미뤄졌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시간을 조정하고 보니 친구가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알지 못했을 거고, 알았다고 해도 교수님과의 미팅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뭔가의 사인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종교와 신성에 대한 것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커뮤니티와 종교 학교에서 봉사하고 호스팅하고 교육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친구라 누구보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감해주며,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정말 종교적이고 욕심없고 아름다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친구의 종교는 나에게 의미가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종교에 대한 올라와 있던 차에 보게 된 소의 머리와 큰 반인반수 조각은 현대의 나로서 기대고 싶은 무언가 실질적인 모습이었고, 그 다음 도착한 예배당은 안심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유럽여행을 가면 질리도록 보게되는 교회지만, 관광이 아닌 공간으로서의 교회는 참 기분좋은 곳이었다. 원래는 가질 수 없었던 친구와의 대화, 무료였기에 갈 수 있었던 박물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냥 방문했던 예배당 일련의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어쩌면 그냥 우연이고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지만, 나에게는 기적이고, 그 기적에 감사하며 영감을 받는 것이 싫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