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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색은 무슨 색일까

색을 잃는 것과 더하는 것

by Funny

스몰 토크라고 하는 가벼운 인사말과 대화를 미국사람들은 자주 한다고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질색을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스몰 토크를 시작하거나 주도하지는 못해도 꽤나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스몰 토크는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강아지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인데, 대부분 강아지에 대한 변명이긴 하다. 입마개를 한 강아지는 다람쥐를 쫓아다녀서 입마개를 하고 있고, 흙을 열심히 파다 내 발 앞까지 흙먼지를 일으킨 주인은 사과를 한다.


한국에서라면, 저 사람 왜 우리 강아지 입마개 쳐다보지? 열심히 보살핀다고 입마개를 했더니 위험해 보인다고 더 쳐다보내, 그럼 어쩌라는 거지 하라는거야 말라는 거야, 이런 생각들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추측하는 대신 내가 강아지를 쳐다보면, 우리 강아지가 다람쥐랑 좀 다툼이 있어서 말이지! 하며 너스레를 떤다. 유쾌하고 농담조의 이런 변명은, 응? 나는 개가 귀여워서 쳐다 본 건데? 하면서도 아, 그렇구나 미리 조심하시는 구나, 라며 새로운 정보에 안심하게 된다.


뭔가 이부분은 일본의 반대 작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는 행동을 하고 사람들의 반응 겪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반발을 한다면, 일본에서는 아에 그 상황까지 예측하고, 상대방이 반발을 마음속 만으로 할 경우라도 반발을 불러올 행동은 하지 않는다. 반면에 미국은 행동을 하지만, 미리 부딛힘이 있기 전에 인간관계 스킬을 사용하여 변명하고, 설명한다. 미리 예측하고 행동하지 않는 일본도 피곤하지만, 미리 사람들의 시선만으로 변명하고 설명해야 할 미국의 삶도 아주 편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설명하는 사람들의 말투가 밝아서인지 좋아보인다. 하루에 한마디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서로 가벼운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다.


미국 사람들의 스몰 토크는 어디 서나 계속 된다. 특히 내가 많이 겪는 스몰 토크는 마트에서 계산할 때인데, 그 들은 늘 나에게 말을 건다. 좋은 하루다, 다 괜찮냐? 뭐 이런 말이지만 사실 나는 아직 다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다. 카드의 비번을 잊어버려 아, 나는 못사는 건가 하는 위기가 온 적도 있고, 처음보는 cash back이라는 게 떴을 때 이게 뭐지? 하며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트레이더 조의 토트 백이 유행이라 길래 선물로 사고 싶은데 없을 때에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뭔가를 묻고 상호작용을 하는데 미국 점원들에게는 묻기가 쉽다. 점원의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듯이 즐거운 말투로 정말 괜찮아, 얼마든지, 라고 하는 말이 폐를 끼치면 안될 텐데, 라는 나의 생각을 잠재우고, 마음이 몽글몽글 즐거워진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캐쉬백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 모르는 제도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고 점원의 대답이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위로 받았다…!)


유튜브 쇼츠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스몰 토크를 바보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진실되지 않은 언어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며. 나도 더 어렸을 때는 한국의 인사치례를 거짓말로 간주하며 말은 진실을 말해야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 때는 극진실을 말하다가 반항한다고 교무실에 불려가기도 했고,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서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 들을 겪다 보니 이제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냥 하는 말은 그냥하는 말이 아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약속이고, 그 말에 진실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해도 내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약속을 행할 수 있는 사회성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가지고 있으니 의미가 없지는 않다. 물론 밥 먹었어? 가 진짜 밥을 먹었는지, 안녕하세요가 정말 당신의 안녕에 관심은 없는 것처럼 언어 그대로의 진실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내가 너에게 말을 건네고 관심을 사회적으로 표하고 싶다는 그 정도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회사에서 상사들에게 거짓말로 위기와 상황을 모면할 때도, 속으로는 동물 친구들과 사이좋은 꾸러기 같으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입으로는 상사의 훌륭함을 말하고 위로하면서, 사실 나의 기분도 더 나아진다. 사람을 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말 큰 리스크이고 부정적인 사건이기에 이 상황을 잘 모면한 것에 대한 기분이 올라가고, 나쁜 말을 뱉지 않은 것 또한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며, 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보면, 거짓말 속의 진실에 눈치채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면만 가지고 있는 사람과 상황은 없어서 동물 친구들에 더 가까운 이기주의자 상사도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있고, 이해할 여지는 있으며, 무언가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긍정적이고 이해될 만한 부분을 거짓말로 더 부풀려서 이야기하다 보면 싸잡아 욕하는 것보다 다면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강제로 하게 돼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용인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미국의 칼과 총을 꺼내기 전에 우리 서로 잘 지내보아요, 라며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은 피곤할 순 있지만 사는 느낌을 주어서 나는 좋아한다. 아침에 산책을 하면 공원관리자 아저씨들이 장비를 들고 이동하시며 작업하시는 데, 눈을 제대로 마주치면서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느껴져서 빈소리든 아니든 기분이 좋다.


중국에서 살았던 경험과 너무 싫었던 중국에서의 기억들이 미국에 대한 거리감을 극 초반에는 가지고 왔었다. 거대하고 드넓은 토지와 도로를 겪으며, 사람들의 호방한 태도를 보며, 여러가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잡다한 문제들을 이상하게 방치하는 것을 보며, 이런 대국에서 조밀하게 세세한 것들을 신경쓰고 살아온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까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그에 대한 지금 당장의 대답은, 중국과 미국의 존중에 대한 차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행복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을 부품, 도구로 생각하며 그것에 대하여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회분위기에서 중국이 힘들었는데, 미국에서는 서로가 눈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 상호작용을 해서 사람으로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가식적인 것들 의미는 하나도 없이 입만 나불댄다고 불평 할 것 같기는 하다.)


미국의 이런 문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서로에 대한 태도는 자연의 풍부함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미국의 자연은 상상한 것 보다 훨씬 더 엄청나서, 자연하면 떠오르는 캐나다와 인접한 만큼 엄청난 호수와 하늘과 나무와 풀받을 거대하게 가지고 있고 더 엄청나고 다양한 기후와 자연이 방치되어있을만큼 넘쳐난다. 너무나 거대해서 비치를 만들어 내는 호수의 호수변욕장을 걸으며, 이렇게 퍼주는 자연속에서 자연과 공간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호방하고 긍정적일 수 있겠다는 것이 자연히 느껴진다.

IMG_3606.HEIC 미국의 호수욕장
믿기지 않지만 해수욕장이 아니다


미국사람들은 이러한 자연과 환경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라며 이해하는 순간이 늘어 갈 수록, 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티끌정도의 유럽 색깔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미국 색이 섞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그 중에서도 한가지 도시의 하나의 구 색깔만 가지고 있던 내가 일본이라는 색깔로 이분되었을 때는 나는 무슨 색일 까? 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중국의 색이 섞이고 다시 한국의 최근 색도 섞고 유럽색도 보면서 색의 변화에 무뎌져 가다 새로운 미국 색을 만나니, 이제는 약간 잡탕색인데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색도 너무 많이 섞으면 더이상 예쁘지 않고 똥색이 되는데, 나는 지구색이 되어가는 걸까 개성없는 똥색이 되어가는 걸까.


잡탕밥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틀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있겠지만 이왕이면 잡탕밥보다는 아름다운 색깔의 결정을 가진 여러색의 집합체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알아차리고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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