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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과 졸업식

태양이 사라진 것과 흐림과 화산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by Funny

수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개기일식이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얼핏 본 기사에서 일식이 지나가는 궤도에 내가 있는 도시가 들어가 있지 않아서 (혹은 너무 얼핏봐서 지레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개기일식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밖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슈퍼에서 안경을 사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럴리가, 하면서도 신나는 마음에 열쇠만 챙겨서 밖에 나왔다. 슈퍼에 갈 돈은 없다. 신나서 그냥 나왔기 때문이다. 다시 집에 들어가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다. 혹시 집에 갔다가 20년 뒤가 되면 어찌할 것인가. 개기일식이면 태양이 가려질건데 그냥 눈으로 조금이라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그냥 나갔다.


밖으로 나가면 어느방향으로 가야할 까, 어디가 동쪽일까? 남쪽으로 가야하나? 남쪽이 보이는 탁터진곳이 어디일까 고민했지만 로비로 나온순간 고민은 아무 의미 없었다. 아파트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모여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들 안경같은 것을 하나씩 가지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맨눈으로 하늘을 보니 엄청나게 밝은 빛으로 태양이 보였다. 눈을 깜빡할때 뭔가 좀 까만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푸른 창문같은 잔상이 남은지라 더는 보이지 않았다.


서로서로 말을 잘 거는 미국인들은 안경필요하니? 라며 안경이 없는 나같은 준비성없는 사람들에게 안경을 빌려주었고, 나는 1초 보고는 지레 미안해서 돌려주었다. 내가 맨눈으로 본건 평상시와 그다지 다를 것없는 너무 밝은 태양이었는데 태양을 볼 수 있는 까만 안경넘어의 태양은 달에 가려져 1미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렇게 거의 다 가려졌는데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밝아서 맨눈으로 쳐다볼 수 도 없을 정도라니 태양이란 엄청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의 사진을 찍었다. 그냥 태양사진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불쌍하게 돌아다니다보니 안경 필요하니 하며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았고 안경을 획득했다. 안경을 가지고 사진을 찍다보니 그대로 조금은 윤곽이 보이는 사진도 찍혔다. 프로가 아닌 아이폰과 영화관 3D안경같은 태양안경으로도 이런 사진이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20년만에 한번오는 개기일식도 10번 넘게 하늘을 쳐다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 없는 평생 처음보는 특이한 현상인데도 벌써 도파민이 다되었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안경이 필요해 보이는 눈을 하고 있는 중국인에게 안경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경이 필요했었던 나는 그 아이의 몸짓과 눈짓에 안경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안경을 줘서 감동받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개기일식을 볼 수 있어서 감개무량하다. 다른 도시의 친구가 드라이브해서 베스트 스팟에서 가족이랑 같이 볼 건데 같이 갈래? 하고 말 걸어줬을 때, 친구에 대한 고마움, 일식에대한 호기심보다, 아 드라이브 3시간은 에반듯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멀미쟁이라 그랬지만, 개기일식을 안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개기일식을 보기위해서 수십만원의 비행기표 값과 멀미라는 투자는 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앞에서 다른 두사람의 친절로 개기일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과거 행태를 생각해보면 또 생각해도 감개가 무량하다. 나는 나의 졸업식, 입학식에 잘 가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의 피해자로서, 중2 병이 세게 왔던 나는 주인공병에 심각하게 걸려있어서 에이 그까짓 입학식 졸업식에 무슨 의미가 있어 하며 나의 인생의 한 절이 끝나고 시작되는 일들의 의미를 폄하하고는 했다.


모두가 졸업식을 하고 입학식을 할 때, 때로는 지각을 하며 이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쿨한 사람을 연기했고, 때로는 아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영상 같은 것을 보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실은 입학식에 가고 졸업식에 가서 평범하게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나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감에 지레 겁먹고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을 뿐이다.


개기일식을 보러 가면서 예전에 졸업식에 갈 수 없었던 내가 조금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20년 만에 새로 오는 개기일식을 맞아 지구인으로서 지구의 축제에 참여하고, 준비가 부족해도 부족한 사람인 것이 부끄럽지 않고, 같이 누군가와 그 사람이 설사 모르는 사람이라도 내가 그사람에게 아무 존재가 아니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 안경을 넘겨주고 가는 사람의 친절한 마음에도 감사한 마음 뿐이다.


개기일식은 눈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았다. 밝은 날과 같이 밝은 빛이지만, 어두웠고, 흐린날 보다는 밝았다. 안경을 쓰고 아이폰이 3초동안 빛을 모아야 할 만큼 빛을 차단해야만 보였다. 안경이 없었다면,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그런 현상일 수도 있다. 빛나는 밝음이 변하지 않는 태양의 압도적인 빛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빛조차도 차단하는 구름과 비라는 자연 현상의 효과가 더 엄청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눈이라는 시각기관으로서는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밝게 빛나는 행성을 몇 개월이나 흐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산폭발 뒤의 화산재는 또 어떤 것일까, 상상도 가지 않는다.


개기일식보다 훨씬 더 태양이 보이지 않는 흐린날, 비오는 날에는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는다. 그냥 희귀하면 다 가치가 있는 것일까? 라는 삐딱한 생각이 아직 올라오는 나는 회의론적인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개기일식 때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되었고, 그 기회에 감사하기도 하니, 언젠가는 흐린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맑은 날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특별한 하루에 감사하는 날도 오지 않을 까. 인생에 한번 뿐인 특별한 그날조차 의미없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일상의 하루 한 순간도 모든게 특별한 그런 삶을 절절하고 아릴 정도로 선명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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