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걸려도 40년이 걸려도 발견된다면 없지 않다
그래도 아주 적지는 않은 나이를 살다 보니, 미국 대학원을 다니다 보니, 미국에 친구들이 좀 있다. 이미 여행 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있다. 원래 있던 곳보다 조금 작은 도시도 갔고, 지금은 미국에서 소위 시골이라고 말하는 장소에 와있다.
다른 도시와 시골을 몇일 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미국은 생각한 것과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 살면서 전국을 돌면서 여행도 다니면서 환상적인 자연도 봤고 지역의 특징이 달랐던 것도 재미있었기에 각각의 도시와 지역 간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각각의 지역 간의 자연환경이 다르거나 먹는 것이 다르거나 차이점이 존재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차이가 역사적인, 전통적인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상당부분이 획일적이고, 먹는 음식도 가는 가게도, 입는 스타일도, 무엇보다 생각하는 방식과 가치관이 상당히 균일해진 것 같다.
시골과 도시의 삶도 그렇게 많이 다르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시골에 살더라도 의무교육을 받고, 대학에 가고, 도시에서 취업을 하며, 도시간의 차이는 서울이나 도쿄처럼 큰 거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라면 사투리 정도 랄까?
미국은(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중국에서 느꼈던 지역 간의 차이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도시의 계획자체가 다르니 건물의 크기도 도시의 구성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운전 방식, 먹는 것, 살아가는 가치관, 직업, 꿈, 목표, 많은 것이 달랐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에서 제 2외국어가 크게 성행하지 않는데 에는, 미국만 살고 있어도 State를 옮기면, 혹은 State내에서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옮기면, 마치 다른 나라에 간 것같은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도 있을 것 같다. 외국에까지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외국에 나간 효과를 경험하고 있는데 굳이 외국에 까지 나갈 필요성과 메리트가 다른 나라들 보다는 적을 것 같다.
사실 미국의 대도시도 어떤 면에서는 시골처럼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편의점이 거의 없고, 택배는 늦게 오며, 그나마 오는 택배도 쉽사리 분실되고, 표기되는 것과 다른 시간이나 날짜에 온다. 대중교통은 좋지 못한 위생상태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무서운 사람들로 가득 차있고, 스크린 도어도 없어서 한번 한번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무섭다. 도시라면, 특히 대도시라면 당연히 택배가 당일택배나 익일도착에, 택배는 당연히 도착하며, 그보다 편리한 여러가지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시행중이고, 대중교통은 편리하며 주거 공간 내부는 깨끗한 물과 전자제품들이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상당히 다르다.
특히 놀랐던 점은, 미국의 도시에 있는 상당수의 집들이 한국의 집,심지어 일본의 집보다도 작고 열악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필라델피아에 머물면서 지냈던 에어비앤비의 숙소는 미국 생활과 한국의 생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했는데, 집이 너무 작고, 낡고,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했다. 하지만 이 집은 에어비앤비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그 말인 즉슨, 미국인에게는, 혹은 최소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숙소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점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사진에서 보던 방의 상태는 괜찮아 보였지만 실제의 집은 너무 달랐고 화장실이 아랫층에 있어서 화장실에 갈때마다 내려와야 했으며, 해충이 생기기 때문에 절대로 음식물을 방안에 두지 말길 경고하고 있었고(음식물이 없다고 해도 해충이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방은 습했으며 빛은 잘 들어오지 않았고 계단은 삐걱거리는 소리에 급경사라 매번 목이 부러지진 않을 까 걱정이 되었다. 너무 열악해서 나는 불을 끄고 잘 수 없엇다. 벌레들이 당장이라고 불을 끄면 나를 덮칠 것 같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세금을 걷는 방식이 집의 넓이에 연관되어 있어서 좁고 안쪽으로 긴, 그래서 창문이 작고 불편하게 설계된 집의 기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이 이상한 형태의 매우 불편한 집은 그 당시에도, 현재에는 더더욱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많은 미국사람들은 불만 없이 (혹은 불만을 가져도 되는 부분이라고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듯 한 것이 매우 신기하다.
필라델피아에서 좋은 것들 흥미로운 것들도 많았지만 주거면에서는 행복과는 먼 경험을 하고 난 뒤 시골에 와서 보니 나의 편견과는 다른 부분이 참 많았다. 재미있게도 시골이 필라델피아의 그 방음따윈 되지 않던 집보다도 시끄럽다. 새소리가 잘 들린다는 장점과 좋은 소리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자동차 소리, 트럭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이 시골에 무슨 차들이 그렇게 다니는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도로를 관찰하니, 도시에서 택배를 받고 살고있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많은 트럭들이 이런 저런 것들을 육로로 운반하고 있다.
한번 치이면 세상을 하직 할 것 같은 거대한 트럭들이 쉬지 않고 시골길을 지나쳐 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자연인이 아닌 이상 미국의 시골들은 고속도로 혹은 물류에 이용될 만한 큰 도로와 접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 도로들은 도시의 도로처럼 깨끗하게 잘 정비되고 있으며, 도시의 도로들보다 매우 큰 차량들이 매우 많이 지나다닌다. 뭔가 고립되어있고 변화가 없는 시골을 상상하고 있었다면 실제의 시골은 매우 바쁜 동맥의 한줄기에 잘 연결되어 산소를 공급받고 연결되어 있었달까.
사람들의 분위기, 인구구성, 행복도(표정에서 추정되는), 활기도 달랐다. 내가 방문한 도시가 지금 가장 핫한 도시들이 아니고, 뉴욕처럼 가장 큰 도시가 아니라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에서 활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죽어있지는 않지만 7년전 살았던 중국의 도시들 처럼 활기에 넘치는 젊고 성장하는 도시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미국의 도시를 겉으로 처음 본 느낌이 꼭 상하이같다 였기에 빌딩이 많다, 빌딩이 오래되었다는 것 보다는 거기의 사람들과 가게들이 주는 느낌이라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도시의 가게들은 한국처럼 일본처럼 붐비는 곳은 없었고 이렇게 장사가 안되어도 유지가 될까 걱정될 정도로 였으며, 이것이 미국의 여유인가 싶다가도, 비어있는 건물과 상가를 보고 있으면 뭔가 쓸쓸하고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더욱 더 침체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골은 상상과 정 반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밝고, 젊고, 생각보다 많았으며, 집은 도시보다 넓고, 깨끗하고 잘 관리되어 있었고(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대마초 냄새가 오줌냄새로 찌들어있지 않았다. 내가 상상하던 한국의 시골과는 달리, 미국의 시골은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주가 되었다. 구전동화처럼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오지만 믿을 수 없었던 예전의 공동체가 서로를 돕고 사랑하던 한국, 예전의 활기찬 미국을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의 도시와 시골을 가보기 전이라면 시골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고 기술이 아니라 예전의 삶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 바보같은 일이고 뭔가 브레인 워싱을 당해서 불쌍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을 것이다. 나도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큰 집에서 풍요롭게 행복하게 가족들끼리 존중하며 공동체가 유지되어 서로 교류하고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과연 내가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도시의 삶이, 당연히 추구해야한 다고 생각했던 그런 삶이 더 인간답고 행복하고 편리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생겼다. 이 아름다운 삶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의견이 얼토당토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것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좀 너무 나아갔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이 계속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이들의 이런 삶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만으로 뭔가 이세상에 파랑새가 존재 할 수 있을 까가 아니라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딱한 나는 이들의 삶이 이렇게 유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의 시스템이 다른 곳에서 빠르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고, 물리학의 가장 기본 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이 이곳만 피해 갈 수는 없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다. 에너지는 외부의 개입이 없으면 흩어지는 쪽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외부의 개입이 긍정적이지 않고 실패한다면 아주 잠깐의 실패로도 에너지는 흩어질 것인데 그것이 한계를 넘어가게 된다면 결국은 다른 공동체들 처럼 붕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이 한없이 약하지만 생각보다 강하듯 다른 곳에서 이미 무너진 공동체가 아직은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이 곳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에 적응해 나갈지 궁금하다. 우리가 하루를 에너지를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도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혹은 다른 어떤 곳에 가서도 이번에 방문한 미국의 한 시골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파랑새가 될 것이다. 이 시골의 아름다움이 나와 우리의 도시에, 아름다움을 이미 잃어버린 곳에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 꼭 보고싶은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