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t Feb 16. 2024

 가끔은 "자발적 격리”가 필요하다.

자발적 격리가 필요한 이유

살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자기 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 속에 소중한 것도, 잊고 싶은 것도 있다. 기억 혹은 경험이라 부르면서.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같은 경험을 하고 하필이면 그것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면---. 21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그걸 “팬데믹”이라 부른다. 2020년 초 발발한 코로나19로 모든 이들은 팬데믹이라 부르는 3년 간 최악의 경험을 공유했고 그 기간 새롭게 익숙해진 단어가 “자가격리”다. 자가격리는 전염병 확산을 위한 강제적 격리조치였다. 2023년 코로나가 수그러들며 이젠 잊힌 단어가 됐는데 최근 들어 이 단어가 머릿속에 자주 들락거린다.  내 머릿속을 자주 들락거리는 동안 강제성이 짙은 자가격리보다 오롯이 내 의지로 마음의 공간, 마음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므로 ‘자발적 격리”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수정이 됐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자발적 격리라는 말에 꽂혔을까?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나 자신을 격리시키고 싶은 걸까? 답을 찾아야겠다.


자의적 선택으로 시작한 직장 생활, 가정생활, 인간관계 등이 먼저 대상으로 떠오른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은 주관적이라고 하지만 직장, 가정, 인간관계 유지에 들인 그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이걸 유지해야 하고 그 안에 있어야 하고 연락해야 하고, 그래야만 내 존재가 증명되고 뭔가 하고 있다고 느껴온 긴 시간이다. 너무 익숙해 마치 그것에서 멀어지고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이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인 것이다. 이제 그 시간, 공간에서 나를 빼내어 다른 곳에 격리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왜?


사실 자발적 격리라 해도 이것이 직접적으로 물리적 이동을 포함한 나만의 폐쇄형 시간, 공간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아직 매여 있어야 하기에. 어쩌면 자발적 격리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방법을 찾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직장에서 며칠 휴가를 내고 가정에서 멀어져 혼자 만의 여행, 시간을 갖는 것은 물리적 한계가 있는 그런 격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속성이 없다면. 그리고 꼭 짚어봐야 할 것은 자발적 격리가 사회적 회피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상황이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불편하거나 불안을 유발할 때, 자발적 격리는 회피 행동의 일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발적 격리는 “더” 보다 “덜”을 추구해 보자는 것이다. Less is better. 뭔가를 더 얻으려고, 더 올라가려고, 더 잘하려고, 더 사려고, 더 만나려고, 더 알려고 하는 그 수많은 것들을 줄이고 덜어낸 그것들을 폴더에 저장하고 더 이상은 꺼내 보지 말자는 것이다. 어쩌면 그 폴더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 제대로 된 자발적 격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런 자발적 격리의 시작을 자주 실행하는 것이다. 덜어낸 그 자리에 제대로 된 자발적 격리를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 봤다. 

같이 하면 좋을 것들을 생각해 봤다.  


먼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관계를 이어 가려 공을 들이지 않는다. 그간에 만난 사람들, 카톡/전화번호에 있는 이름들 중,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 전화 통화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계속 지우는 중이다. 새로 소개를 받아도 크게 공들이지 않는다. 알고 있다. 서로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을 거라는 걸. 더불어 사람 만나 술 한 잔, 수다 그런 것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만나는 것 자체도 지양한다. 서로 힘들고 지친다. 어느 나이가 되면 친구를 그만 사귀어도 된다. 

두 번째 하는 것이 조금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해 본다. 말이 명상이지 사실 멍 때리기다. 머릿속에서 생각 자체를 지워내는 것이다. 쉽지 않다. 온갖 잡생각이 방해공작을 하지만 버티며 해내려 한다. 내면의 안정 단계에 이르기는 아직 미숙하지만 마음 집중은 된다. 

다음으로 필사를 한다. 시간 날 때 짬짬이 책을 읽는다. 다 읽은 책 들 중, 정말 다시 읽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책을 골라 필사를 한다. 뭘 기억하고 알고자 하는 것보다는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함과 동시에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래 간직해 온 만년필을 꼭 사용해 정성 들여 필사를 하고 나면 아주 긴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본 그런 느낌이다. 

이 외에도 이른 시간에 걷기나 가까운 산을 찾아 조용히 한 발 한 발 걸어본다. 그 시간이야 말로 자발적 격리를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다. 

물리적으로 자발적 격리가 어려울 때, 정서적 만이라도 자발적 격리를 계속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브랜드 전략 수립과 렘브란트 자화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