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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Jul 09. 2024

책 읽는 보람 –또다른 <피에타>를 발견하고 찔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보았습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보았습니다. 

사라져가는 기억력을 붙잡고 최소한의 책값이라도 지켜보자는 강한 의지의 발로로 색깔 있는 포스트잇을 기억할 만한 페이지에 붙인다. 다 읽고 책을 들어보면 마치 무지개떡 한 덩이를 드는 느낌이다. 최근에 이런 루틴을 벗어난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었다. 아니 봤다. 


읽지 않고 봤다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을 고른 이유와 맞닿을 것 같다. 예술품, 박물관을 다룬 세상의 수많은 책과는 달리 개인적 이유로 “경비원”으로 전직하고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라 할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10여 년을 보내며 만난 작품을 본인의 일상과 버무리며 차분히 그려낸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책의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다. ‘경비원’은 그저 저자의 직업일 뿐이다. 어쨌든 책을 읽는 시간 보다 책 속에 묘사된 작품을 검색을 통해 들여다보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드문 경험이었다.  


책을 읽으며 작품명과 내 기억이 매치되는 경우, 스스로를 기특하다 생각한 적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작품은 가물가물해, 검색에 의지해야 했고 또 하나 특별한 경험은 유명하고 익숙한 작품들이 메트로폴리탄 소장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름 전 세계 유명 미술관, 박물관을 많이 섭렵했다고 자부했지만 돌이켜보니 ‘메트’를 가 본 적이 없다. 뉴욕을 여러 번 갔음에도 구겐하임, MOMA는 들렸지만 메트는 기억이 없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경비원이 보여 준 소중한 경험을 마주했다. 미켈란젤로가 등장한다. <피에타>와 함께. 그런데 메트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내가 아는 피에타는 바티칸 베드로성당에 있는데. 검색엔진에 의지해 경비원이 보여주는 피에타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무지하고 무관심한 인간에게 경비원이 보여준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 조각한, 전 세계 사람이 아는 피에타가 아닌 <론다니니 피에타>(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에 보관)의 조각 전, 드로잉 5점이었다. 더 알게 된 사실은 미켈란젤로는 평생 5개의 피에타를 남겼고 <론다니니 피에타>는 죽기 바로 직전에 작업에 들어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겨진 유작이라고 한다. 

구글을 통해 <론다니니 피에타>를 접하고는 익숙한 피에타와 다른 완성도, 이질감, 의구심 등 복잡다단한 감정이 한 번에 몰아친다. 죽음을 앞둔 시점이었다지만 시대의 천재가 남긴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미술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낯설다. 보통 천재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에는 ‘심혈’, ‘성찰의 완성’ 등의 미사여구가 붙는데 이 작품은 극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극적이다. ‘신의 손’으로 불려 마땅한 그가 남긴 기교도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는 미완성의 돌덩어리. 초벌로 남은 이 작품은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누구에게나 미스터리일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명성을 쌓아준 절은 시절의 피에타는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다. 예수의 죽음 이전에 아들의 시신을 안고 거대한 제단에 앉아 있는 어머니.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은 아들을 마주한 고통을 감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 시절엔 그걸 원했을 지도 모른다. 고전주의 시각에서 감상을 위한 피에타가 아닐까.


하지만 <론다니니 피에타>를 시작하던 시점의 미켈란젤로는 생의 끝을 생각하며 정리하는 시점의 70대 노인이었다. 50여 년의 영화를 뒤로 한 명장은 오롯이 자기 생각을 담은 자기 만의 피에타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미완성의 피에타는 죽은 아들의 몸을 부축해 들어올리려는 몸이 구부러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식도 없고, 물론 미완성이니, 오로지 어머니와 죽은 아들만 담고 있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그’의 어머니가 아닌 ‘우리’의 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경비원이 5장의 드로잉을 소환해 전하고자 한 것은 병으로 죽은 형과 그 형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말하고자 한 것 아닐까? 10여 년의 경비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는 아마도 광대한 메트로폴리탄의 작품 중, 본인을 잡아 끈 유일한 작품을 가슴에 담으며 자신을 이 곳으로 이끌었던 형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시도하는 것 같다. 


서 있는 경비원의 눈으로 바라 본 다양한 작품들을 읽는다는 차원을 넘어 보게 된 것도 이 책의 소중함 중에 하나지만 작품 이면에서 끌어 올려진 다양한 감성을 접한 것도 큰 이득으로 여겨진다. 


엄마에게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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