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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Feb 19. 2024

도서관 이야기 #1-구산동도서관마을

구산동에서 21세기 르네상스를 만나다.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George Peabody Library에는 도서관과 관련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적혀 있다고 한다.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위치다.( The only thing that absolutely have to know, is the location of the library.”). 이 문구에 가장 잘 맞는 도서관을 다녀왔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이름부터가 독특하다. 도서관마을이라니.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유래부터 살펴보자. 


사실 이 도서관의 외관을 보면 살짝 추측이 가능한데 우리가 상상하는 well-made의 건물로서 “아 도서관이네”하는 상식을 일찌감치 버리게 한다. 돈이 들어가고 유명 건축가가 지은 그런 건물이 아니고 마치 여러 사람이 여러 채를 끼워 맞춰지은 그런 건물로 보이고 그 자체로서 작은 마을처럼 보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도서관 건물들이 이전에는 사람들이 살던 집, 오래된 연립주택 세 동을 리모델링해 도서관 하나를 만든 것이다. 3층, 4층 야외 공간을 나가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 내부 공간 배치, 구성도 여느 도서관과는 확연히 다름을 보여준다. 마치 이 동네 사는 구성원 각자의 “아 도서관은 이랬으면 좋겠어”하는 바람을 다 들어준 것처럼 보인다. 일단 기존 도서관이 지닌 잇서 빌리티 한 로비 없이 있었던 붉은 벽돌 건물과 새 건물이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고 천장까지 이어진 벽면에 “삼독”을 알리는 캘리그래피가 보인다. 커다란 열람 공간 같은 건 없다. 다만 5층에 걸쳐 누구나 본인의 목적에 맞게 책을 볼 수 있는 50여 개의 작은 공간들이 오목조목 갖춰져 있다. 스키풀 구조도 도입해 작은 복도,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잘 배치돼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외관 및 층별 구성 

용도에 맞게 작은 공간을 분리했는데 그 용도가 열람실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긴 하지만 각 자의 콘셉트가 명확하다. 시간의 분리, 공간의 분리, 용도의 분리, 사용자의 분리가 다 담겨 있다. 내 눈길을 끈 것 몇 가지 중 돋보이는 것이 ‘마을자료실’인데 이 도서관이 위치한 구산동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있고 한편에는 “만화방”이 있다.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슬램덩크>도 보이고 <바람의 검심>도 있다. “만화의 숲” 안에 역사, 고전, 어린이 코믹, 어린이 일상 등으로 잘 구분돼 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동네 도서관이 담기에는 어려운 상대인 “독립출판물실”이 있다는 것이다. 시중에 나온 모든 것들을 담을 수는 없지만 그 시도에 그 가치매김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인문학 강좌 등의 강의, 프로그램 등이 연간으로 펼쳐지며 동네 인문학 살롱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Contents와 Community를 묶어내 새로운 도서관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연장선 상에서 또 다른 connection 역할을 하는 “청소년 힐링캠프”, 도서관 방송, 일종의 팟캐스트 역할을 하는 방송실, 작지만 알찬 미디어교육실 등도 오롯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서관마을이라는 타이틀이 점점 더 이해가 간다. 미학적으로 조금 낯 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서울특별시 건축상 등을 수상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공간 구성 

아마도 초기 조성 과정에 참여한 책 읽어주는 엄마들의 공이지 않을까 한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주민 참여와 관공서의 인허가, 지원 등을 이끈 주민들의 노력이 놀랍다. 놀라움은 운영으로도 이어져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 협동조합(은도사협)이 만들어지고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위탁 운영하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도서관을 운영하니, 앞에 말한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 운영이 가능했고 주민참여예산도 도입했다고 하니 도시재생을 넘어 구산동에 피어난 르네상스를 보는 것 같다. 이들 구성원들은 모두 메디치이고 메세나인 것이다.


도서관마을의 가치는 글로만 떠도는 SDGs나 ESG가 아닌 실체를 지역사회 스스로 구현하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모델이다. 지역 사회 발전과 문화적 활동의 중심이 되어 구성원 모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사회적 연결과 활동성을 높이고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마을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도서관을 나오는데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일본 영화 “해피아워”가 동네 도서관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수작을 동네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 영화 러닝 타임이 5시간 17분이다. 중간 휴식 시간도 있다. 

참고로 나는 구산동 주민은 아니지만 명예동민이라도 되고 싶다. 


구산동도서관마을 https://www.gsvli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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