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함과 에너지로 살아가기. 5장. 철학속의 용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두려움과 무모함 사이
스토아 철학의 평정심 (아무 일도 아닌 것에 흔들리지 않는 법)
동양 철학의 담대함 (노자·장자의 무위와 중심 잡기)
우리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 과학을 찾고, 소심함을 극복하기 위해 심리학을 붙잡는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철학 속에서 용기를 배워왔다.
철학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대화였다.
두려움 앞에 선 인간의 질문
사람은 누구나 두렵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 앞에서 철학자들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단단히 붙들 수 있을까?
소심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철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삶을 위한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를 “중용의 덕목”이라 불렀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는 우리 손에 없고, 해석과 태도만이 우리 손에 있다”고 가르쳤다.
노자와 장자는 세상의 평가와 억지 힘을 내려놓고, 자연과 흐름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지혜를 노래했다.
이들의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철학은 먼 옛날의 고전이 아니라, 두려움에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주는 삶의 도구다.
철학이 주는 위로
심리학은 뇌와 마음의 과학을 알려주지만, 철학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더 근원적인 답을 건넨다.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삶의 무게 속에서도 인간은 스스로의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철학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선물한다.
그것은 전투의 함성 같은 담대함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솟아나는 살아낼 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을 “중용(中庸)”이라 불렀다.
그에게 덕이란 언제나 극단 사이의 균형이었다.
용기 역시 마찬가지다.
두려움의 극단과 무모함의 극단
한쪽에는 겁쟁이가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기회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
다른 한쪽에는 무모한 자가 있다.
두려움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뛰어드는 사람, 결국 자신과 남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용기는 두려움과 무모함 사이의 올바른 균형에 있다.”
담대함은 균형의 예술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되, 그 속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 힘이다.
겁쟁이는 두려움에 무너지고, 무모한 자는 두려움을 무시한다.
그러나 담대한 자는 두려움과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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