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의 시야 흐려짐, 안경 교체
《박정우의 시야 흐려짐, 안경 교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있었다.아파트 단지 화단에도 조심스럽게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정우는 초롱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초롱이는 한결 조심스럽게 걸었고, 짧은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뱉었다.공기는 부드럽고 밝았지만, 박정우는 어딘가 답답함을 느꼈다.
공원 끝자락 나뭇가지 끝을 바라보는데, 잎눈이 흐릿하게 뭉개져 보였다. 햇살이 퍼지며 번지는 듯했고, 나뭇가지의 세밀한 선들이 또렷하게 잡히지 않았다.
잠시 뒤 시야 한쪽이 순간적으로 어지러워졌다. 박정우는 리드줄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잠깐 멈춰 섰다. 초롱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괜찮다, 초롱아. 조금만 쉬자."
숨을 고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그날 이후 신문 글씨도 희미하게 번지는 일이 잦아졌다.
며칠 후 안경점.
검안 기계 안으로 붉은 빛이 들어왔다. 검안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노안이 많이 진행되셨네요. 시야 굴절도 좀 심해지셨고요."
박정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바꿔야겠죠 뭐."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집에 돌아왔다. 초롱이가 현관으로 달려 나왔다. 짧은 다리가 조금 어색했지만, 꼬리는 힘차게 흔들렸다.
박정우는 웃으며 안경을 고쳐썼다.
"그래도… 이렇게 너 얼굴은 더 또렷하게 보인다."
초롱이는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무릎을 비볐다. 박정우는 조심스레 초롱이를 안아 올렸다.
창밖으로 봄 햇살이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빛이 서서히 길어지고 있었다.
《초롱이의 첫 노화 신호》
늦봄이었다.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게 내려왔고, 공원 나무들은 연초록으로 가득했다.
박정우는 늘 하던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왼손엔 리드줄을 잡고, 오른손으로 가끔 초롱이의 속도를 살폈다.
초롱이는 한 걸음, 두 걸음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짧은 다리가 조금 더 낮게 바닥을 스쳤다. 숨소리도 예전보다 얇고 짧아졌다.
공원 입구 작은 경사로에 이르렀을 때였다. 초롱이는 잠시 멈칫했다. 계단 몇 개를 앞에 두고, 뒷발이 살짝 흔들렸다.
박정우는 리드줄을 당기지 않았다. 초롱이가 스스로 계단을 오르려 몸을 숙였다.
첫 번째 계단을 올라섰지만, 두 번째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작은 몸이 한순간 흔들리다가 뒤로 주저앉았다. 짧은 숨이 헐떡이며 빠르게 새어 나왔다.
박정우는 급히 안아 올렸다. 초롱이의 몸이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팔 안에 안긴 무게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그 가벼움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괜찮다, 초롱아. 내가 안아줄게."
박정우의 목소리는 낮고 조금 떨렸다. 초롱이는 그의 품 안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날 저녁, 박정우는 노령견용 관절 영양제를 검색했다. 처음 보는 제품명들과 가격표가 화면 위에 줄줄이 떠올랐다 .₩32,500, ₩48,000, ₩57,900…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잠시 멈췄다. 결국, 가장 중간 가격대의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며칠 뒤, 작은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노란색 알약 냄새가 희미하게 번졌다. 그는 약 봉지를 열며 조용히 혼잣말처럼 말했다. “좋은 거였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게.”
초롱이는 코를 킁킁대며 다가왔다. 박정우는 조심스럽게 약 봉지를 열어 사료 위에 약가루를 뿌렸다.
"이거 먹으면 계단도 다시 잘 오를 수 있어."
그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초롱이는 고개를 숙여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번졌다.
그날 밤, 박정우는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초롱이의 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초롱이는 그의 손길을 따라 조용히 몸을 움찔였다.
박정우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빨리 늙어가겠지.’
그 생각은 바람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오래 머물렀다.
《노인의 건강 징후와 병원 진단》
겨울 끝자락이었다. 바람이 덜 매서워졌고, 아파트 화단에는 흙냄새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정우는 초롱이와 천천히 산책을 하고 있었다. 짧은 리드줄 끝에서 초롱이는 바닥 냄새를 맡으며 조용히 걸었다.걸음걸이가 예전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는 초롱이의 보폭에 맞춰 발걸음을 조절했다. 몇 걸음 걷다가 잠시 멈추고, 다시 천천히 걷는 식이었다.
공원 끝자락을 돌 때, 갑자기 무릎이 꺾였다. 박정우는 순간 휘청하며 한쪽 손으로 벤치 난간을 붙잡았다. 숨이 가늘게 흔들렸다.
초롱이는 멈춰 서서 그를 올려다봤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작게 낑낑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박정우는 숨을 고르며 땅을 내려다봤다. 약간 어지럽고 귀가 먹먹했다 .이내 천천히 몸을 세웠다.초롱이는 그의 곁에 바짝 붙어 한 발짝 뒤따랐다.
며칠 뒤, 그는 병원에 들렀다.
진료실 안은 조용했다. 의사의 목소리도 낮고 담담했다.
"퇴행성 관절염이 꽤 진행됐습니다. 연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다리 근육이 많이 빠지셨고요."
박정우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의사는 컴퓨터 화면을 넘기며 덧붙였다.
"그리고... 혈압 수치도 좀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어지럼증은 혈압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요."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산책도 조금씩 시간을 줄이시는 게 좋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요. 혹시 혼자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위험합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의사의 말이 공기처럼 방 안에 퍼져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초롱이가 그를 바라보며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박정우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어설프게 떨렸다.
그는 리드줄을 짧게 잡았다.
"이제 조금만 걷자, 초롱아."
초롱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 여전히 환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박정우는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작은 발자국을 초롱이가 따라 걸었다.
둘의 그림자가 겨울 햇빛 아래 나란히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 끝에 봄의 빛이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초롱이의 첫 관절 이상과 추가 부담》
봄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바람 끝에 미세하게 꽃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박정우는 초롱이와 함께 짧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초롱이는 조심스럽게 걷다가 잠시 멈춰 섰다. 그 작은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박정우는 리드줄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괜찮아?"
초롱이는 고개를 들었지만,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눈빛이 어딘가 미안한 듯 흔들렸다.
그는 천천히 몸을 굽혀 초롱이를 안아 올렸다. 가벼운 몸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며칠 뒤, 다시 수의사 진료실.
의사는 진단서를 가볍게 내려놓았다.
"관절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어요. 소형견들은 나이가 들수록 무릎 슬개골 탈구가 잘 생기거든요."
박정우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의사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지금은 초기라서 약물치료와 영양제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운동량도 조금 줄여주시고요. 혹시 더 진행되면 수술도 고려해야 합니다."
의사는 책상 서랍에서 소형 병을 꺼냈다. 갈색 플라스틱 병에 관절 영양제가 들어 있었다.
"이 약은 매일 한 알씩, 꾸준히 먹이셔야 합니다. 처방사료는 계속 유지하시고요."
박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계산서가 건네졌다. 그는 그것을 천천히 살폈다. 병원비, 약값, 추후 예정된 정기검진 예약까지 적혀 있었다.
한숨이 나올 법했지만, 그는 숨을 길게 들이켰다가 그대로 가슴에 머금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약국을 들렀다. 작은 약봉지가 비닐봉지 안으로 미끄러졌다.
그는 잠시 비닐봉지를 내려다보았다.약병이 몇 개 더 늘어났을 뿐인데, 봉지 무게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초롱이를 이불 위에 눕히고 약을 준비했다. 알약을 부드러운 닭고기 조각 속에 감쌌다. 초롱이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박정우는 손끝으로 초롱이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잘했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롱이는 혀로 그의 손등을 한 번 핥았다. 짧고 따뜻한 혀끝의 감촉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는 손을 멈추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부엌 구석에 놓인 계산기 옆으로 시선이 흘렀다. 계산기 옆에는 여전히 열리지 않은 금반지 상자가 있었다.
그는 상자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조금만 더… 아직은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숨결처럼 작았다.
이불 위에서 초롱이가 가만히 몸을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