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

밤, 사라진 아이

by 토사님

《밤, 사라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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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바람이 불지 않았다. 구름은 흘러가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공원 가로등 불빛은 축축하게 땅에 붙어 있었다.

박정우는 한 손에 줄을 쥐고 있었다. 그 줄의 끝이 허공으로 향해 있는 걸 인지한 건, 몇 걸음을 지난 뒤였다.

“초롱아.”

목소리는 낯설게 떨렸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돌렸다.벤치 아래, 나무 그루터기 옆, 운동기구 주변.어둠은 너무 얌전해서, 무언가를 삼켜버릴 만한 구석도 없어 보였다.

“초롱아…!”

두 번째 부름에는 확실히 떨림이 섞였다. 그는 성급히 발을 옮겼다. 땅을 비추는 가로등의 빛 사이로, 허공이 부드럽게 갈라졌다. 눈앞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가슴 안에서는 뭔가가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풀숲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나. 누가 데려간 건 아닐까. 차에 치이진 않았을까.

그는 몇 번이나 “초롱아”를 불렀다.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졌다. 마지막에는 겨우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사라진 건지, 그의 오랜 죄책감이 다시 떠오른 건지,구별되지 않았다.

공원의 동그란 가로등 불빛 아래,그 는 문득 주저앉았다. 숨이 가빠지거나 눈물이 솟은 건 아니었지만, 허공이 너무 가벼워서, 앉지 않으면 어딘가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뒤였다.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철제 수거함 뒤편에서 조그만 소리가 들렸다.

낑. 작고 젖은 목소리.

박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거의 숨도 쉬지 않으며 다가갔다. 비닐봉지 사이에 초롱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눈은 두려움으로 젖어 있었고, 앞발은 제 몸을 끌어안듯 말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앉아,그 작은 몸을 껴안았다. 초롱이는 처음에는 떨리다가, 곧 조용히 그 품 안으로 스며들었다.

한참 동안, 박정우는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겨우 존재만으로 안심이 되는 감각,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초롱이를 안은 채,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이전까지는 몰랐던한 생명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다시 얻은 무언가를 잃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으로 남았다.


《초롱이의 생일》

창문 너머로 봄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바람결이 살며시 커튼 끝자락을 흔들었다. 박정우는 식탁 위 작은 케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름 10cm 남짓한 조각 케이크.마트에서 고른 가장 작은 사이즈였다.그 옆에는 삶은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담은 초롱이의 접시가 놓여 있었다.

‘딱 3년.’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세어보았다. 처음 초롱이를 만났던 그 겨울 아침부터 이렇게 매년 오늘을 생일로 삼아왔다.

사람들은 생일이 언제인지 몰라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에게는 이 날이 처음 품에 안았던 날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초롱이는 담요 위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를 살짝 세우고, 머리를 기울였다.

박정우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초롱이를 불렀다.

"생일 축하한다, 초롱아."

그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방 안 가득 번져갔다.

초롱이는 천천히 다가왔다. 짧은 발이 조심스럽게 바닥을 디뎠고, 그의 무릎 앞에 멈춰 섰다.

"오늘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걸 준비했지."

박정우가 작은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초롱이는 머리를 숙여 삶은 닭고기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씹을 때마다 그 소리가 조용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박정우는 케이크 위 작은 초를 바라보았다. 촛불은 켜지지 않았다. 불어줄 사람도, 노래를 불러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속으로 조용히 흥얼거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목소리는 바람결처럼 희미했다.

초롱이는 식사를 마치고 박정우의 품으로 천천히 몸을 올렸다. 가볍게 숨을 고르며 그의 가슴께 얼굴을 묻었다.짧고 따뜻한 숨결이 그의 손등으로 스며들었다.

박정우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주며 속삭였다.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그 말은 벽에 부딪히지 않고 방 안 어딘가로 스며들었다.

바깥에서는 봄비가 살짝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 젖어드는 벚나무 가지가 조용히 흔들렸다.

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작은 생일. 그러나 둘만의 시간 속에서는 충분히 크고 따뜻한 축복이었다.


《 시간 경과 몽타주》

시간은 소리 없이 흘렀다. 봄은 열두 번 피고 졌다.

1년차

봄날 공원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펼쳤다. 초롱이는 여전히 짧은 다리로 박정우의 무릎 위를 오르내렸다. 작은 입으로 닭고기를 조심스럽게 집어 먹었다.

박정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아이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

3년차

초롱이의 털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눈빛은 한층 온순해졌다. 산책을 나서면 이웃 아주머니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초롱이, 이제 정말 가족 다 됐네요. ""네. 이젠 서로 없으면 못살죠."

박정우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그 말 속에는 자신도 모를 의존이 스며 있었다.

5년차

초롱이의 속눈썹에 희끗한 털이 섞이기 시작했다. 박정우의 무릎에도 무게가 더 실렸다. 공원 산책은 전보다 조금 느려졌다.

저녁마다 마시는 따뜻한 보리차. 그 옆에 몸을 둥글게 만 초롱이의 숨결. 작고 조용한 온기가 그의 옆구리를 데워주었다.

7년차

병원 진료에서 처음으로 노령성 관절염이라는 말을 들었다. 관절 보조제, 소화기능 사료, 비타민.박정우는 약 봉투를 하나 둘 늘려갔다. 그 대신 장을 볼 때 고기나 간식을 줄였다.

"조금 덜 먹어도 괜찮아. 이 아이 약값이 먼저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9년차

초롱이는 계단을 내려올 때 몸을 살짝 뒤뚱거렸다. 박정우는 안아 올렸다. 가벼운 무게가 손에 익숙해졌다.

그의 허리도 자주 뻐근했지만, 초롱이를 안을 때마다 힘이 났다. 초롱이 역시 품 안에 파묻혀 조용히 숨을 쉬었다.

10년차

거울 속 박정우의 머리카락은 많이 희어져 있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도 조금 흐려졌다.

초롱이의 얼굴에도 흰 털이 많이 섞였다.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숨소리는 조금 얇아졌다.

아침마다 준비하는 닭가슴살은 여전히 부드럽게 찢었다. 초롱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작은 꼬리를 흔들었다.

그들은 여전히 매년 봄마다 공원으로 소풍을 나갔다.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 속에 오래 앉아 있었다.

박정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가 내 옆에 있어서…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 있었다.’

어느덧 또 한 해의 봄이 열렸다.벚꽃이 피고 있었다.

다시 흩날리는 꽃잎 아래, 두 생명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