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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와 하늘과 문턱

완전몰입·무념무상·트랜스 훈련 이후, 몸과 뇌와 삶에 생기는 변화들.

by 토사님

이 책을 시작하면서.....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어떤 거창한 계시가 아니라 한 가지 모순에서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집중”을 말하면서도, 집중을 의지로만 다뤘습니다.
더 참아라. 더 버텨라. 더 밀어붙여라.
그런데 이상하죠.
정작 최고의 순간—정말로 일이 살아나는 순간—은
이를 악물 때가 아니라 힘이 빠질 때 찾아옵니다.

저는 그 모순이 오래 걸렸습니다.

어떤 날은 분명히 몸이 지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흩어졌고,
어떤 날은 마음이 고요한데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원하는데 안 되는 날”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더군요.
노력은 부족했고, 재능은 없었고,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
그런 결론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문이 열리는 날이 있었습니다.

잠깐의 호흡, 잠깐의 고요,
다음 한 문장만 쓰겠다는 작은 약속 하나로
갑자기 시간이 사라지고, 손이 정확해지고,
생각은 떠오르지만 나를 끌고 가지 못하는—
그 묘한 “자동성”의 밤들이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집중은 성격이 아니라 상태라는 것을요.
그리고 상태는 운이 아니라 설계라는 것을요.

하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 문을 설명하려고 하면, 세상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한쪽은 말했습니다.
“그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 말은 대개, 질문을 닫았습니다.

다른 한쪽은 말했습니다.
“그건 영적인 힘이야. 뭐든 가능해.”
그리고 그 말은 대개, 사람을 과장과 환상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그 둘 다가 아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은 분명 존재하는데,
한쪽은 문을 폐쇄하고
다른 한쪽은 문 앞에 허풍의 깃발을 꽂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신비를 조롱하지 않되,
신비를 팔지도 않는 방식으로.
전통의 체감을 존중하되,
검증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루틴과 훈련법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 책은 그래서 태어났습니다.

완전몰입(Flow)을 연구한 사람들이 붙인 이름,
무념무상을 오래 걸어온 사람들이 남긴 몸의 언어,
트랜스/최면의 임상과 역사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기술—
그것들을 한데 모아 **‘삼중문(레이저-하늘-문턱)’**이라는 구조로 정리하고,
누구나 자기 일상에서 시험해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효과”를 말할 때
사람이 쉽게 상처받는다는 걸 압니다.

누군가는 통증 때문에,
누군가는 불안 때문에,
누군가는 삶이 무너져서
“제발, 나도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문 앞에 서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기적을 약속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되돌아오는 길을 약속하겠습니다.

7일 후 어떤 변화가 올 수 있는지

21일 후 무엇이 안정되는지

90일 후 자동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드물지만 생길 수 있는 역효과와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방법까지.


“대충 좋아진다”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기록하게 하는 책,
그게 제가 쓰고 싶은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결국 한 줄을 위해 쓰였습니다.

“나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도 깊어질 수 있다.”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고요해지고,
당신의 손이 조금 더 정확해지고,
당신의 마음이 조금 덜 흔들리기를.

그 바람이,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프롤로그

레이저와 하늘과 문턱

당신도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을 만난 적이 있을 겁니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은 뒤늦게 따라오며,
시간은 얇은 종이처럼 찢겨 나가—
어느새 “끝”이 눈앞에 와 있는 순간.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방금… 뭐였지?”
“내가 한 건가?”
“아니면… 그냥 ‘된’ 건가?”

어떤 밤, 어떤 창작자는 원고 앞에서 다 타버린 촛불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단어는 분명히 아는데 문장이 안 나오고, 문장은 분명히 있는데 살아 움직이지 않았죠.
그는 스스로를 다그쳤고, 다그칠수록 텅 비었습니다.

그때 그는 아주 이상한 일을 합니다.
노트 한 칸에 단 하나의 문장만 씁니다.

“지금 나는 다음 한 문장만 쓴다.”

그리고 숨을 길게—딱 여섯 번 내쉽니다.
내쉬는 동안 “잘 써야 한다”는 욕망도,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공포도,
잠깐은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공기처럼 얇아집니다.

그는 다시 펜을 듭니다.
그 다음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문장이 “생각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올라와서 놓이는” 느낌.

그가 ‘의미’를 붙이기도 전에, 문장은 이미 자리를 잡고
인물의 말이 그의 입 안에서 먼저 발음됩니다.
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다만 눈이 조금 젖습니다.

그 순간은 완전몰입입니다.
그 순간은 트랜스입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 순간에는 무념무상이 함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는, “내가 하고 있다”는 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 순간을 미화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을 재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쓰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몰입을 “의지”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의지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의지는 뜨겁지만, 금방 타버립니다.

반대로, 상태는 다릅니다.
상태는 불꽃이 아니라 장치입니다.
한 번 설계해두면, 다음에도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세 가지 상태를 하나로 묶는 설계도입니다.


완전몰입은 레이저입니다.
대상이 선명해야 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딱 한 점으로 좁혀져야 합니다.


무념무상은 하늘입니다.
생각을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붙잡지 않습니다.
생각이 지나가도 하늘은 하늘입니다.


트랜스는 문턱입니다.
자아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자동성이 올라가며,
“할수록 더 되는” 문턱을 넘어갑니다.


이 셋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배치되면 서로를 강화합니다.

레이저가 깊이를 주고,
하늘이 흔들림을 없애고,
문턱이 ‘노력’을 ‘자동성’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셋이 겹치는 순간,
우리는 아주 이상한 일을 해냅니다.

“내가 집중한다”가 아니라
“집중이 나를 통과한다.”

물론, 여기에는 냉정한 이야기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무슨 수행을 하면 무엇이든 된다” 같은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집중과 트랜스가 모든 질병을 고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독자에게 빚을 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몸은 회복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고,
뇌는 주의를 재배치할 수 있고,
사람은 “상태”를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이 잘 되면, 우리가 바꾸는 것은
단순히 생산성만이 아닙니다.

불안이 오더라도 덜 끌려가는 힘

통증이 있어도 덜 흔들리는 품

한 문장을 끝까지 데려가는 뚝심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고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감각

이런 변화가, 아주 현실적으로 찾아옵니다.

이 책에는 세 종류의 이야기들이 함께 들어갑니다.


과학적 원리
뇌가 어떻게 산만해지고, 어떻게 조용해지는지.
주의가 어떻게 좁아지고, 어떻게 넓어지는지.
몸이 어떻게 긴장을 풀고, 회복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도사님들의 경험
이 책에서 말하는 ‘도사’는, 산속의 신선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길을 오래 걸어본 사람—
숨을 다루는 사람, 마음을 다루는 사람, 손끝을 다루는 사람, 말과 리듬을 다루는 사람—
그들의 체감 언어를 모아 “재현 가능한 기술”로 번역합니다.


역사 속의 사례
선(禪)이 왜 무심을 말했고,
도가가 왜 무위를 말했는지,
예술가와 장인들이 왜 “그냥 된다”는 순간을 기록했는지.
우리는 신화를 신화로만 두지 않고,
기술로 읽어낼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
가장 중요한 약속 하나.

훈련 이후 효과를 ‘느낌’으로만 남기지 않겠습니다.

이 책은 “좋아졌다”가 아니라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록하게 만들 겁니다.

7일, 21일, 90일—
당신의 몸과 마음과 삶에 생기는 변화를
체감과 행동과 지표로 나눠 측정하게 만들 겁니다.

왜냐하면, 측정은 차갑기 때문이 아니라
측정이야말로 자기기만을 막는 따뜻한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당신은 세 가지를 갖게 될 겁니다.

첫째, 들어가는 법
(레이저-하늘-문턱, 삼중문 진입 루틴)

둘째, 유지하는 법
(흔들려도 돌아오는 기술, 실패를 연료로 바꾸는 법)

셋째, 나오는 법
(깊게 들어간 만큼 안전하게 복귀하는 종료 루틴)

이 셋이 갖춰지면,
몰입은 사건이 아니라 습관이 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 하나만 남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한 문장을 끝까지 데려가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입니까?

마음이 너무 시끄러워 쉬는 법을 잊은 사람입니까?

집중이 필요한데 집중을 ‘억지’로만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미 어떤 문턱을 밟아본 사람입니까?
“아, 저기구나.” 하고.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이 책은 두 부류를 동시에 위한 책입니다.

처음 들어가려는 사람과
다시 들어가려는 사람.

문은 하나입니다.
다만 문손잡이가 여러 개일 뿐입니다.

이제, 손을 얹어 봅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먼저
“세 겹의 고요가 정말 다른가”를 분해해서 보여주고,
그 다음엔—
당신이 직접, 당신의 하루에서,
그 문을 열게 할 겁니다.

조용하지만 짜릿한 일은 대개,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숨이 길어질 때,
생각이 투명해질 때,
손이 정확해질 때.

당신의 레이저와 하늘과 문턱은
이미 어딘가에 있습니다.
이 책은 그걸 다시 찾아오는 지도입니다.


1부. 상태의 지도: 이름이 다른 같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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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완전몰입(Flow):

목표·피드백·도전-기술 균형이 열어주는 문


1-1. 몰입이란 무엇인가: “열심히”와 “흐름”을 가르는 한 줄

어떤 날은, 당신이 아무리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도
글자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머리는 바쁘고, 마음은 더 바쁘고,
끝나고 나면 남는 건 “나는 왜 이렇게 못하지” 같은, 쓸쓸한 말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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