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S] 브랜드는 가치를 판다
어린 시절 엄마의 화장대에서 맡았던 기분 좋은 분 냄새, 처음 가본 도시에서 새벽 조깅 중 언뜻 느낀 상쾌한 공기의 냄새, 여름 방학 할머니 집에서 나던 가마솥 굴뚝의 매캐한 연기 냄새…. ‘향’은 색깔도 형체도 없지만기억 속에 분명히 자리잡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문득 ‘향’과 ‘브랜드’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향’이 그러하듯이 브랜드도 하나의 물건을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번 호에서 이야기할 주제는 이처럼 무형의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나만의 것을 만드는 ‘향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시장에서도 [Diptyque], [Jo malone], [LE LABO], [BYREDO] 등 니치 향수들이 속속 대중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데요. 코로나의 여파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소비 문화의 성숙으로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중요성과 라이프 스타일이 중요해지면서, 최근 등장하는 중국의 향 브랜드들은 조금은 다른 뉘앙스로 쇼퍼들의 니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패션으로서의 향’ 보다는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향’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죠.
[DOCUMENTS 闻献]
[DOCUMENTS]는 상하이의 크리에이티브 그룹이 런칭한 향수 브랜드입니다. 오픈 전부터 감각적인 블랙의이미지로 이목을 사로잡았었는데요. ‘개인의 표현과 다양성의 공존’을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DOCUMENTS]는 첫 번째 시리즈로 인간 본성 중 ‘단점’을 탐구하는 향 시리즈 “初熟之物 NAIVE”、“柔韧荆棘 MEAN”、“夜漠回声 OFF”、“腹语之术 SHY”、“体物入微 SENSITIVE”、“妥协尽头 STUBBORN” 를 선보였습니다. 보통 지금까지의 향 브랜드들이 어떤 지역(ex, 여행지)의 영감을 얻거나, 어떤 소재(타바코, 꽃, 풀, 가죽 등)에서 영감을 얻은 향을 제안한 것에 비교해볼때, [DOCUMENTS]의 향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추상이야말로 나에게로 왔을 때 충분히 내 것으로 스며들게 되죠. 내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네이밍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document는 ‘기록, 서류’의 의미입니다. [DOCUMENTS]의 중국어는 ‘文献wénxiàn’인데요, 文wén(문학)과 같은 발음의 闻wén(냄새 맡다)로 한자를 변형하여 네이밍의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고 있어요. ‘献xiàn’이라는 글자는 ‘헌정. 바치다. 남겨두다’의 의미로 문자로 기록하고 남겨두는 文献(=document)처럼 향으로 기억되는 闻献wénxiàn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뷰티나 향수 카테고리를 떠올리기 쉽지 않은 네임입니다. 다소 건조하고 중성적인 네이밍이죠. 하지만 요즘 젠더리스의 뷰티 트렌드를 떠올려본다면 동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로서 타겟들의 취향을 잘 보여줍니다. 또 이렇게 어떤 연상이 강하게 들지 않는 무미한 네이밍은 소비자들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기에 더 적합하기도 합니다. 브랜드 자체가 너무 강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을 때, 개개인의 소비자들은 그것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디자인은 중국의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중국 사찰 기둥의 이음새, 건축으로부터 온 모티브는 구조적인 느낌이 시선을 끌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합니다. 기존의 향수 브랜드들이 과도하게 포장된 완벽한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에 반해 [DOCUMENTS]는 더 진솔하고 본질에 가까운 절제된 미학을 통해 개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입시키도록 하였습니다. 마치 추상화를 볼 때 처럼요. 중국 전통 공예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라인에서도 전통 공예의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절제된 추상으로 공예를 시각화시킴으로 개개인에 따라 많은 생각이 들도록 유도합니다.
향 브랜드의 본질이 ‘향’에 있다면, 그 본질을 소비자들에게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은 ‘공간’일 것입니다. 감각의 총체인 향 뷰티에 있어 공간은 향에 대한 기억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줄 수 있는 확실한 요소이죠. [DOCUMENTS]는 상하이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그 체험을 열어갑니다. ‘사원’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은 박물관처럼 엄숙하고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사원의 관용적인 분위기로 향과 내면에 집중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100개의 스포트라이트로 구성된 조명, 흘러나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따라 걸어갈 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블랙의 공간에 하나의 빛으로 구성된 공간은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미술관이나 사찰을 거닐 때 가능했던 나에게로 집중된 자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중국 시장이 워낙 크다보니 아직까지 제품과 판촉이대세이기는 하지만 빠르게 성숙하고 변화하는 소비자들은 이미 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진정한 브랜딩을 알아봅니다. 제품의 내용물, 네임, 로고, 패키지, 디자인 뿐만이 아닌 ‘소비자의 마음 속에 가치있게 느끼게 하는 일련의 경험’ 이런 경험을 위해 애쓰는 행동들을 ‘브랜딩 brand -ing’이라고 할때, 무형의 ‘향’을 이야기하는 향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라면 그 경험은 누구보다 강력하고 중요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DOCUMENTS]는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브랜딩’을 ‘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잘 보여줍니다. 무형의 것에서 어떤 경험을통해 나만의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 그것이 향과 브랜딩의 공통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