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희 May 17. 2021

구두를 졸업한다.


어제 지인의 딸 결혼식에 마지막 남은 구두를 신고 다녀왔다. 왕복 1시간 거리여서 걸어서 갔다 왔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10시간 등산도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를 힘겨워하는 건 구두라는 신발 때문이다. 일상을 운동화나 편한 신발 종류로 바꾼 것은 한참 전이다. 그래도 신발장에 구두 한 켤레를 모셔둔 것은 예의를 차려야 할 사회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서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운 것 같다.  발이 불편하면 다리는 물론 허리까지 그 통증이 몰려온다.  건강을 위해 차 운전도 그만둔 마당에 구두의 예의와 맵시에 나를 묶어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1990년대 초에는 스커트 정장이 골칫거리였다. 스커트를 입으면 스타킹을 신어야 하고 반드시 구두를 신어야 한다. 물론 그때도 하이힐은 시도한 바 없고 4,5센티 굽의 구두였지만 바쁜 아침에 스타킹 신는 절차는 왕짜증을 유발했다. 그런데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힐러리 클린턴이 등장하면서 여자들도 바지 정장을 입기 시작했고 외모를 꾸미는데 게으른 나는 이때 스커트를 졸업하고 바지 정장으로 갈아탔다. 일상생활도 한 여름에 시원하다는 이유로 원피스를 입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바지를 입고 생활한다.  지금은 여성들도 바지 정장이 더 대세인 것 같다. 


커피를 졸업한 건 갱년기 불면증 때문이었다. 15년 전 암수술을 받고 한동안 약을 복용해야 했다. 그 약의 부작용으로 갱년기가 급격히 일찍 왔고 다른 증상들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는데 새벽 1,2시면 잠에서 깨어 밤을 꼬딱 새우는 일이 정말 고역이었다. 커피를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한두 잔 정도 하면 집중도 잘 되고 해서 끊지 못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향기를 즐겼다. 커피를 끊었더니 한 밤중에 깨는 일은 없어졌다. 지금도 커피 향은 매혹적이지만 불면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기지는 못한다.


한 때 성악을 배웠고 클래식 감상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클래식은 어렵다.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티브이 쇼프로를 항상 보곤 했다. 그런데 그것도 랩 음악이 나오고 대중음악의 대세가 바뀌면서 졸업하게 된 것 같다. 요즘 쇼프로에 나오는 아이돌들의 음악을 보면 우선 가사가 자막을 봐야 들리는데 그나마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라 누가 옆에서 설명을 해 주어야 할 듯하다. 요즘 트로트가 역주행하고  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가수들(1980,1990년대)은 어디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명동이나 강남역 주변을 걸으면서 포장마차에서 파는 튀김이나 떡볶이 등 길거리 음식을 보며 젊은 때를 회상한다. 깔끔한 성격의 친구들은 절대로 길거리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험하게 커서 그런지 그런 금기는 없었고 다만 돈이 넉넉지 않았다. 젊어서는 사 먹을 돈이 없고 늙어서는 그런 것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건강이 없다.  아직도 바삭한 오징어 튀김의 식감을 잊을 수 없지만 몸을 위해 졸업했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은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