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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북부에서 일하기6

요크목 탐구생활

by 장윤서

요크목(Jokkmokk)에는 서울 같은 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삶이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사람들이 없어 한적한 것이 너무 좋았다. 서울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이곳은 오히려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어 사람이다’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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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목의 풍경들. 요크목 곳곳에는 사미 깃발이 걸려있다.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일요일에는 요크목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다.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기는 하나, 교회에는 가지 않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만 기도를 하는 간헐적 종교인인데 외국에 나가서 종교에 관계없이 교회든 사원이든 방문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 예배도 본다.


예배드리는 방식이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여행을 돌아보는 기회이자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에 감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때로는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예배의 순서에 따라 영혼을 맡기기도 한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예배를 봤다는 것이 신기했다. 앞에 나와있는 숫자를 보고 눈치코치로 찬송가 페이지를 찾아 부르는 등 남들 2배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것 또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크목 교회.jpg 요크목 교회.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예배가 끝나고 이동하려 하는데 요크목 주민 분들이 커피를 마시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이곳은 매주 예배가 끝나고 다과와 커피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로컬들과의 교류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진정한 여행의 묘미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것이리라. 주로 50대 후반에서 70대까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특별한 날에만 교회를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연세가 많으신 모든 분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스웨덴 작은 마을에 방문한 이방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는 것에 놀랐다. ‘어디서 왔니, 요크목에는 뭘 하러 왔니, 여행객이니’ 등의 질문을 보아 나는 그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리브와 지미의 이름을 언급하며 사미 아트 센터에 일을 하러 온 워크어웨이 봉사자라고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며 이번에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독일 출신이지만 요크목에서 3년 동안 살고 계신 분, 손주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 이야기를 하시는 분, 나의 어색한 스웨덴어 발음을 교정해주신 오르간 연주자 등 요크목 교회에서 주민들을 만나는 경험은 굉장히 따뜻하고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요크목을 떠올리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면서 정이 많고 따뜻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오후에는 봉사자 친구들과 휴일을 맞아 작은 바비큐를 하기로 했다. 친구들은 집에서 소시지와 마시멜로를 챙겨오고 나는 호수 근처에 있다는 바비큐 장소를 찾는 것이 임무였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어 호숫가에 앉아 명상을 하며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오전에 교회에서 본 주민 한 분과 재회하게 되었다. 호수에 수영하러 나온 카린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카린에게는 니카라과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에서 겨울에는 서핑과 요가캠프를 운영하고 여름에는 노르웨이에서 피오르 투어를 진행하는 워커홀릭인 조카가 있는데, 일본인 여자친구와 아이를 가져 곧 열릴 가족모임에서 그녀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 등 굉장히 구체적이고 사적인, 주로 가족 이야기를 나누면서 카린과 친해졌다. 그녀는 바비큐장의 위치를 알려주며 만약에 못 찾게 되면, 본인의 집에 와서 바비큐를 하라며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카린과는 지금도 가끔씩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참 좋았던 점을 뽑자면, 외국에서는 친구를 사귀는 장벽이 없다는 것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어리다고 절대 낮잡아 보지 않는다.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친구들을 사귀면서 갖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도 하고 연륜 있는 친구들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호숫가.jpg 호숫가에 앉아.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카린의 도움으로 호수 근처 캠핑장 몇 군데를 찾았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바비큐를 하였다. 스웨덴에서는 바비큐가 굉장히 흔한 활동인 것 같다. 스카이데 축제에 참여하면서, 또 요크목에서도 바비큐를 여러 번 하였고 바비큐 장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폭포 옆, 호수 옆, 숲 속 등 곳곳에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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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발견한 바비큐장.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요크목 생활은 바비큐, 마을 탐방, 딥토크, 파티 등 공사일 외에 소소하지만 재밌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요크목에서 작업 현장인 사미 아트 센터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는 항상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일할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하루는 이동하는 길에 북극권을 표시하는 표지판을 만나 잠시 멈추어 구경을 했는데 ‘Arctic Circle’ 표시를 보니, 내가 진짜 극지방에 와있구나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한 달 전만 해도 극지방에 와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사람 일 정말 모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극권 표시.jpg 북극권을 알리는 표지판.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다른 휴일에는 옆 마을인 루리오(Lulea)로 놀러갔다. 리브와 지미가 일이 있어 루리오로 간다길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먼보이 루이스와 함께 리브, 지미의 차에 올랐다. 루리오는 요크목에 비해 훨씬 사람도 많고 상업활동도 활발한 소도시였다. 루이스와 루리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루이스가 조금 어려웠는데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 건설 근로자로서의 커리어, 이상적인 가족관 등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루이스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요크목에서 루이스와 방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루리오에서 이야기의 물꼬를 트면서 자기 전에 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장난도 스스럼없이 치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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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오에서의 저녁과 아름다웠던 풍경.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요크목을 떠나는 전날 밤, 봉사자 5명은 마당에 텐트를 치고 다 같이 잤다. 5명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동안의 소회를 나누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그날 밤, 같이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지개가 떴는데 하늘에 떠있는 무지개를 보며 누군가 우리는 무지개 가족이라고 말했다.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성적 지향도, 나이도, 직업도 다른 우리들이 한 곳에 모여 무지개 가족으로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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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목에서 보내는 마지막날 밤, 마주한 무지개. (c) 2025. 장윤서 All rights reserved.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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