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나는 채식을 한다. 이유가 무엇이냐면, 첫 번째로는 현재의 축산업을 통한 육식의 건강 문제, 두 번째로는 채식 자체의 건강상 장점, 세 번째로는 환경 문제, 네 번째로는 동물권의 차원에서이다.
때는 작년 4월, 건강에 관심이 많은 나는 쌍둥이에게 채식과 육식 식단을 주고 건강상의 변화를 비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체지방률, 콜레스테롤 수치, 염증도 등 많은 항목에서 채식의 장점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도 뇌리에 박혔던 것은 동물들의 사육 환경이었다. 좁은 우리 안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돼지와 닭, 분뇨가 가득한 바닥, 동물들은 그것을 밟고 몸에 묻히고 심지어는 먹기도 한다. 가축을 기르는 데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장호르몬제를 맞추고 먹이에 화학물질을 섞고, 케이지 안에 가둔다. 수요가 많은 닭가슴살을 공급하기 위해 호르몬제를 주입하여 비정상적으로 비대하진 가슴 때문에 일어서있기조차 힘들어하는 닭을 나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아졌다.
채식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호르몬제와 화학물질을 입에 넣고 싶지 않아서였다. 양식업을 하는 물고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바다 위에 어망이 있다 한들, 어망 안의 물고기들은 출퇴근길 서울 지하철과 다름없는 인구밀도, 아니 어구밀도를 보였고, 촘촘한 그물망 사이로 바닷물 순환이 잘 되지 않은 채 물고기들은 사료인지 배설물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무엇을 먹고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이었고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보여준 축산업의 관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기억과 맞물려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건강한 식품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확립하게 되었다. 물론, 모든 동물 농장과 양식장이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드넓은 초원에 소들을 풀어놓고 인위적 사료가 아닌 자연에서 온 깨끗한 먹이를 주며 키우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단지 수적으로 비교했을 때 자연 방목보다는 실내 사육이 많고, 특히 땅의 좁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일이라는 것이다. 고기를 구매할 때마다 어디 농가에서 나온 것인지, 인위적인 유도를 최소화하였는지를 따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고기를 먹을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작년 4월부터 채식을 시작하였고 해외에 나가있는 2달 정도는 육식을 하기도 했지만 현재 1월까지 채식 식단을 이어나가고 있다.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에는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을 제한하는 비건을 지향하지만 유제품을 때에 따라 먹기도 하는 락토 베지테리언이었다. 이후에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현지 음식을 체험해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잠시 채식을 멈추고, 한국에 귀국해서 비건을 지향하지만 유제품과 달걀, 물고기를 때에 따라 먹기도 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하고 있다.
약 8개월 정도 채식을 하면서 달라진 건강상의 변화는 우선 3kg 정도 체중이 빠졌다는 것, 육식을 했을 때보다 몸이 가볍다는 것, 원래는 약한 수준의 고무줄 몸무게였는데 며칠 동안 채식 범위 내에서 과식을 해도 체중이 잘 변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반대로 부작용으로는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중성지방과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굉장히 낮게 나왔다. 중성지방과 총콜레스테롤이 지나치게 낮은 경우에는 갑상선 항진, 영양결핍, 흡수 장애, 만성 간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채식과 관련한 많은 연구에서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상의 측면에서 좋겠다고 현재로서는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채식은 아직 ‘유별난 일’이고 누구보다도 가족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기에 내심 채식이 건강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결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 관련 다큐 애청자로서 장내 미생물의 종류를 늘리고 유익균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야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고등학생 때 영어 교과서에서 소를 키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숲과 나무를 베고, 소가 방귀와 트림을 통해 방출하는 메탄가스가 환경 오염에 큰 영향을 준다는 본문을 읽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더 어렸을 때에는 햄버거의 소고기 패티를 만들기 위해 환경이 오염되니 햄버거 섭취를 줄이자는 캠페인도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동물을 섭취하는 것이 환경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우리의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더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또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을.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동물을 먹이고 키우는 데에는 수년간 많은 농작물이 필요하다. 식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고기를 먹기 전에, 햄버거를 먹기 전에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며 식탁에 온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인간이 육식을 하는 행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육식동물도 있고, 초식동물도 있는 것처럼 인류는 오래전부터 잡식생활을 해왔다. 동물성 단백질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영양소도 있고, 인류의 오랜 기원을 거스를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사육 과정에서 동물에게 행해지는 비윤리적인 행동에 반대한다. 움직일 공간 없이 겨우 서있을 정도의 좁은 우리에서 성장촉진제를 맞으며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교배되어 태어나고 죽임을 당하는 ‘수단’으로써의 삶은 동물이라고 해서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점은 식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동물과 반려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먹는지, 나의 식생활을 소개하고 싶다. 사실 ‘채식’이라는 표현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모든 사람들은 이미 채소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어떤 범위에서 육식을 하는지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항상 샐러드만 먹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일반식 메뉴에서 고기를 제외하고 먹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나는 파스타를 매일 먹고 싶어할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데, 소스에 고기를 넣지 않고 만들면 된다. 비건 파스타를 만들자면, 크림 파스타 대신 토마토 파스타로, 해산물과 치즈는 넣지 않고 만들어도 맛있는 파스타를 완성할 수 있다. 한식에서도 고기 반찬 대신 나물을 먹는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다.
나의 식생활에서 포인트는 포커스를 ‘채식’이 아닌 ‘육식하지 않는 것’으로 맞추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닭볶음탕이 나오면 닭은 먹지 않지만 같이 들어간 감자와 당근은 먹는다. 고기에 닿은 식기도구조차 씻어 사용하는 채식주의자들이 나를 보면 쟤는 채식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는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길을 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건강하게만 먹는 사람으로 그려진 것 같은데 과자도 먹고, 라면도 먹고, 디저트도 먹고, 가끔씩 술도 마시는 평범한, 단지 고기 없는 생활을 한다. 건강한 생활과 앞서 언급한 환경과 동물의 권리 측면에서 나는 채식을 선택한 것이고 건강을 위한 선택은 많기에 고기가 아니라 술을 끊겠다는 다짐을 할 수도, 단 음식을 줄이겠다는 다짐을 할 수도 있다. 그 다짐을 실천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추가로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저는 고기를 안 먹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여태까지는 고맙게도 모든 사람들이 존중해주었다. 식당과 메뉴 선정에 있어서 배려받았다.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육식을 지양하는 사람들이 배려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그리고 채식이라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며 밝히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비건 옵션이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어떤 식당을 가든 육식을 하는 사람과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 평소에는 육식을 하지만 비건요리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 붉은 고기는 안 먹지만 닭고기는 먹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