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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Nov 18. 2022

나무가 좋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무를 좋아했다. 길거리에 우뚝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이상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를 지켜주는 장병 같았다.


열두 살 때, 태권도 학원과 미술학원을 갈 때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곤 했다. 그 아파트 단지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었다. 가로수가 길게 쭉 늘어선 곳이었다. 그곳을 걸을 땐 레드카펫 위를 걷는 배우들이 부럽지 않았다.


길게 늘어선 나무 중 한 나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인사였다. 나무에게 말을 붙이는데 흥미가 생긴 나는 고민거리까지 털어놓게 되었다.


“오늘 태권도에서 승급시험이 있는데 너무 떨려.”

“요즘 미술학원에서 유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내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학원을 가는 길이라서 길게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내 나름대론 나무에게 정을 꽤 주었다. 나무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나무속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텅 빈 공간처럼 조용한 것 같기도 했다. 거친 표면과 다르게 나무속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나무와 교감을 나눴다.


나무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았다.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마주하는 나무들에게 속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독한 자동차 매연을 정화해줘서 고마워.‘

‘우리에게 산소를 선물해줘서 고마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며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하고 혼자 설레곤 했었다.  


회사 근처에도 내가 애정 하는 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퇴근할 때 늘 보이는 나무이다. 퇴근하는 시간에 햇빛이 나무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잎들은 옥구슬같이 다채로운 빛을 뿜어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아 울컥해졌다. 그 나무는 나의 하루 끝을 위로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나머지 한 그루는 아주 특이하게 생긴 나무이다. 고동색 나무들 사이에 서리 맞은 것 마냥 혼자 하얗게 서있는 나무가 있다. 한 여름에도 주위의 나무들은 풍성한 잎을 자랑하는데 그에 비해 하얀 나무는 홀로 쓸쓸히 서있었다.


하얀 나무 머리 꼭대기에는 새들이 정성스럽게 지은 집이 있지만 그 집도 주인 없이 비워진 지 오래다. 주위 분들에게 들어보니 그 나무는 몇 년 전부터 썩어서 겨우 서있는 나무라고 했다. 너무 안쓰러웠다. 새도 찾지 않는 쓸쓸한 나무… 난 그 나무를 올려다보며 외로워하지 말라고 내가 너를 마음으로 챙기고 있노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던 중 올해 가을, 무시무시한 태풍이 몰아 쳤고 가엾은 하얀 나무는 결국 허리가 꺾이고 말았다.


힌남노가 예고된 밤, 나는 하얀 나무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했다. 꼭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고 아침이 밝았다. 출근하자마자 그 나무를 찾았다. 너무 다행스럽게 하얀 나무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힌남노가 한 차례 할퀴고 갔지만 너무나도 대견하게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였다.


하지만 몇 주 뒤 몰아친 태풍 난마돌에 결국 힘없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허리가 꺾인 채 앞으로 고꾸라진 나무를 보니 고추냉이를 엄청 먹은 것처럼 코 끝이 시큰했다. 마음이 싸했다. 텅 빈 하얀 나무의 내부가 어릴 적 힘들었던 나를 떠올리게 하여 마음이 더 아팠다.


지금도 그 나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나는 그 나무에게 그동안 버텨내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고 힘껏 껴안아주고 싶다. 지금은 비록 허리가 꺾여있지만 예전 너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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