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작업감성
의상학과 학생으로 매 학기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스무 살 그 당시에는 ‘포트폴리오’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포트폴리오는, 예를 들자면, ‘패션 드로잉’이라는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수강하며 내가 그렸던 그림들을 하나의 앨범으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일종의 나를 대변하는 물리적 결과물이었다.
학기 말이 다가오면 다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시즌이 되었다. 의상학과 동기, 후배, 선배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다. 공식적으로는 여태 작업한 작품들을 선별해 정리하는 작업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출 요구 사항을 맞추기 위해 부족한 작품 수를 채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더 나은 결과물로 대체하기 위해 새롭게 그리기도 했다.
사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말 그대로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다 보니, 대부분 욕심이 생겼다.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준비된 그림을 적당히 모아 적당히 제출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완성을 앞당기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곤 했다. 어떤 일들은 단시간 집중으로 끝낼 수 있지만, 포트폴리오 작업은 몇 시간은 지나야 머리도 손도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밤샘 작업 몇 번쯤은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야간 작업을 위한 신청서에 동기나 선배 이름이 올라와 있으면, 괜히 든든했다. 암묵의 동지애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학교 건물은 밤 10시 이후엔 출입이 제한되었다. 경비 아저씨는 철문을 쇠고랑으로 돌돌 감은 뒤, 커다란 열쇠로 야무지게 잠그고 유유히 퇴근하셨다. 1층 강의실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어 탈출은 불가능했다. 정말 나가고 싶다면, 2층이나 3층 배수구를 타고 내려가거나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람은 없었지만, 새벽까지 작업하다 보면 정신이 반쯤 나가 서로 농담처럼 말했다.
”진짜 그냥 뛰어내려서 집에 가고 싶다.“
야간 작업은 피곤했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작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좋아서였다. 밤이 깊어지면 졸음이 몰려오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언제 졸았냐는 듯 모두가 각자의 작품 세계에 몰입해 있었다. 어느새 수다는 사라지고, 깊숙이 자기 안으로 잠수하는 시간.
출출해지면 몰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우리는 잽싸게 1층으로 달려가 쇠창살 사이로 음식을 건네 받았다. 함께 나눠 먹는 야식은 피곤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세자리로 돌아가 작업에 몰두했다.
창작의 고통과 체력의 한계에 맞서며 탈탈 털어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책상에 엎드려 잠들기도 했고, 2미터 넘는 패턴 재단용 책상 위에 대자로 뻗어 잠들기도 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건, 접착식 앨범에 그림을 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었다. 한 땀 한 땀. 풀을 먹인 헝겊으로 종이를 엮어 책장을 만들고, 두꺼운 마분지로 커버를 직접 제작했다. 커버에 어떤 그림을 넣어야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심했다.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제출하는 수십 개의 포트폴리오 중, 어떻게 하면 눈에 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일까. 그런 고민도 했다. 이렇게 밤을 새워 만든 결과물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때로는 학점이 기대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충만함이 남았다.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더 기쁘겠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의 진정성과 치열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결과가 아쉬울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의 고민은 다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강하고 탄탄한 밑거름이 된다.
스무 살 초반에 만든 포트폴리오는 이제 너무 오래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쩍쩍 갈라진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때 받았던 학점의 좋고 나쁨은 별 의미 없다. 다만, 100%의 나를 담았다는 사실만큼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래서 그 포트폴리오는 지금도 창고 속 상자에 잘 보관되어 있다.
내 인생의 나만 아는 훈장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