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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리노이, 새로운 시작

#옥수수밭러닝의추억

by Lucia

미국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어바나 샴페인(Urbana-Champaign)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보냈다. 학교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기억의 타임 머신이 나를UIUC(University of Ilinois at Urbana-Champaign)로 데려간다. 그 캠퍼스를 걸으며 느꼈던 바람과 햇살의 온기가 아직도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어떤 공간과 경험의 의미는 그곳에 머문 시간의 양과 꼭 비례하지 않는다. 스물한 살, 그 때 만난 사람들과 경험은 지금도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옥수수밭 러닝


UIUC는 ‘어바나’와 ‘샴페인’이라는 두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된 캠퍼스였다. 말 그대로, 대학이 마을의 근간이자 경제 활동의 핵심이었다. 캠퍼스 밖으로 나가면 광활한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마치 마을을 벗어나려해도, 옥수수밭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학교 내 러너스 클럽을 발견했다. 캠퍼스 주변 옥수수밭을 매일 달리는 클럽이었다. 관심사가 비슷했던 용준이 오빠와 함께 가입했다. 우리는 3km, 5km, 7km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매일 달렸다.

처음엔 서양 학생들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한참 뒤처지면 러닝 무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낯선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길을 읽을까 봐 아찔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과 함께 달리며 대화도 나눌 정도로 체력이 늘었다. 단순히 러닝을 즐기는 것뿐 아니라, 영어 실력까지 향상되니 이보다 더 유익할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호스트


외국 학생들을 지역 가족과 연결해 주는 ‘호스트 제도’가 있었다. 내 호스트는 작은 이벤트에서 무대 의상을 제작하는 아주머니였다. 아마 내가 의상학과 전공인 점을 고려해 연결해 준 듯했다. 호스트 아주머니와는 매주 한 번씩 만나 파머스 마켔에 가거나 그녀의 작업 공간을 방문해 다양한 의상을 구경했다. 만날 때마다 그녀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는데, 매시드 포테이토에 스테이크, 그리고 그 위에 뿌리는 그래이비 소스를 처음 맛본 것도 이때였다.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호스트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냈다. 산타 모자를 쓰고,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딸 가족과 함께 조지아 주의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잘해주었을까? 최소한의 의무가 아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과 배려를 아낌없이 나에게 쏟아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녀의 친절 덕분에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베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병도 선배


교환학생으로 도착했을 당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었다. 학교에서 제공하기로 했던 기숙사 예약이 취소되면서, 우리는 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빠듯한 예산으로 냉동 피자를 나눠 먹으며 지내야 했고, 방 세 개 짜리 집에 여덟 명이 함께 숙식하며 여러 날을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병도 선배가 나타났다. 일리노이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낯선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었다. 정착을 도울 수 있도록 집 구하는 법, 생활 정보 등을 아낌 없이 알려 주었고,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친해졌다. 그 시기 나는, 병도 선배 덕분에 처음으로 검도도 경험해 보았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어떤 인연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왜 그렇게 아낌 없는 도움을 주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병도 선배는 미국의 명문대 연구실에서 슈퍼 컴퓨터를 다루는 센터의 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돌아오는 겨울에 한국을 방문하는 는 선배와 다시 만날 예정이다.


기억속에 새겨진 시간들


미국 일리노이에서의 1년은 단순히 외국 생활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친절과 배려는 나를 성장시켰다. 그 시간을 통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싶어졌다.

그 캠퍼스를 걷던 나의 모습은 이제 과거지만, 그때의 경험은 여전히 나의 현재를 비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오늘도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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